우연이 운명으로, 김민우 씨(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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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부평구 삼산동 삼산월드체육관 축구장에서 조기축구 회원들이 눈속에 축구를 즐기고 있다.
인천시 부평구 삼산동 삼산월드체육관 축구장에서 조기축구 회원들이 눈속에 축구를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추워진 날씨 때문에 어깨를 자꾸만 움츠리게 되는 요즘인데요. 푸근한 마음이 느껴지는 오늘의 주인공 덕분에 추위를 잠시 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브로커 일을 하다가 갑자기 탈북을 하게 된 김민우 씨의 이야기, 지난주에 이어 나눠 볼게요. 민우 씨와 함께 탈북했던 일행 중에는 두 아이도 있었는데요. 그 아이들이 지금은 김민우 씨의 사랑스러운 자녀가 됐습니다.

마순희: 네, 하지만 주변에서는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를 정도로 돈독하답니다. 사실 저도 애들 엄마가 이야기해서야 그 사실을 알았지 전혀 몰랐거든요.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들과 감정적으로 부딪치는 경우도 많다지만 민우 씨 가족에겐 해당사항이 없었습니다. 7살, 8살이던 두 아이는 어느덧 17, 18살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 가정에 또 경사가 생겼습니다. 최근 아들이 한 명 더 늘었다고 하네요.

김인선: 늦둥이라도 생긴 거예요?

마순희: 그건 아니고요. 북한에서 미처 데리고 오지 못했던 큰 아들을 금년 8월에 데려 온 것입니다. 민우 씨는 요즘, 이젠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평온해진 가정생활만큼 회사생활도 안정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정착 10년차인데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9년 연속으로 근무 중입니다. 김민우 씨는 고속도로 통행요금을 받는 요금소 직원인데요. 함께 근무하는 직원은 대략 80여 명입니다. 이들 중 탈북민이 10명이 넘고 민우 씨를 비롯해서 탈북 남성 4명이 근무 중이라고 합니다. 여성의 경우 주로 고속도로 이용요금을 받는 업무를 하고 남성의 경우에는 설비관리나 과적차량 단속 등의 업무를 합니다.

김인선: 벌써 9년째 근무 중이면 이젠 전문가가 됐겠네요.

마순희: 네, 처음에는 낯선 업무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이젠 연차가 쌓일수록 연륜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과적차량을 단속하다 보면 웬만하면 좀 그냥 넘어가 달라고 사정하는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큰 소리를 먼저 내는 사람들까지 각이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데요. 처음에는 말투도 다르고 용어도 잘 모르다 보니 어려움도 적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어떤 운전자가 단속에 걸렸는데 한번 후려치기하자고 하더랍니다. 누구를 후려친다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지만 기분이 엄청 나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후려친다는 말이 적당히 넘어가 달라는 말이었다면서 웃더라고요. 낯선 용어를 접할 때마다 진땀 흘리기 일쑤였는데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김민우 씨는 어느덧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어떤 설비나 업무도 막힘없이 처리하는 건 물론이고 후배 직원들에게 일하는 법을 전수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나 혼자만이 아닌 함께 잘 정착하고 있어서 함께 일하는 사원들의 호평도 대단하다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민우 씨는 일 처리도 잘하지만 돈 관리도 잘한다면서요?

마순희: 네. 관리라는 게 특별한 건 없고 그저 허튼 데 쓰지 않고 차곡차곡 잘 모았다고 하는데요. 민우 씨에겐 큰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정착 5년 안에 자기 집을 마련한다는 계획입니다. 고속도로 요금소는 교대로 일하기 때문에 다른 일에 비해 여유 시간이 많은 편입니다. 김민우 씨는 그 시간에 다른 부업을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고 하는데요. 같은 회사에 다니는 민우 씨의 아내도 똑같이 부업을 하면서 저축을 했기에 조금씩 돈이 불었습니다. 그렇게 5년을 모은 돈에 대출금을 보태서 민우 씨의 계획대로 한국 정착 5년 만에 자신의 명의로 30평 아파트를 마련하게 됐습니다.

김인선: 내 집 장만하기가 참 어렵다고들 하는데 그 어려운 일을 해내셨네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악착같이 일하고 짠돌이처럼 모았기에 5년 안에 내 집 마련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민우 씨에게 내 집 마련의 비법을 물었더니 장모님의 음식솜씨라고 하더군요. 그동안 장모님이 집에서 음식을 맛있게 해 주셔서 외식을 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고 생각도 안 했다는데요. 외식 한 번 안 하는 짠돌이 성품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서는 아끼는 것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찾아 갔던 날 막내아들이 먹고 싶어 하는 배달 음식을 시켰더군요. 장모님 먼저 챙겨 드리고 아직 집에 오지 않은 큰 아들 몫도 챙기는 민우 씨의 모습을 보면서 자상한 가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답니다.

아시는 것처럼 대한민국에서는 주택건설을 엄청 많이 하고는 있지만 집값이 비싸서 물려받은 유산 없이 제 힘으로 돈을 벌어서 내 집 마련하는 것이 쉽지는 않잖아요. 그래도 우리 탈북민들은 대한민국에 정착하면서 임대주택이지만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주택을 다 받아가지고 나오는데 그것만 해도 엄청난 혜택이라는 것을 처음엔 몰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느끼게 되는데요. 내 집 마련에도 혜택들이 많더라고요. 탈북민 특별분양 제도가 있어서 남한 사람들보다 기회가 더 많고 적은 비용만 지불하고 거의 평생 살 수 있는 국민임대주택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유리한 점도 있답니다.

김인선: 주택을 신청하려면 어느 정도의 자금을 마련하는 것과 함께 주택 분양에 우선순위가 주어지는 저축, 주택청약저축도 반드시 가입해야 하잖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김민우 씨처럼 한국 정착 5년 만에 주택을 장만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다 주택청약저축 덕분입니다. 분양을 받게 되면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주택가격의 40-60%까지 먼저 돈을 빌려주기 때문인데요. 물론 매달 이자와 원금을 함께 갚아나가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순수 제 돈으로 집을 사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그동안은 내 집 장만을 목표로 앞만 보고 살아왔다면 지금은 조금 여유를 갖자고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민우 씨는 여가활동도 시작했습니다. 새로 이사 온 동네에 조기축구 동아리가 있다고 해서 참가하게 됐는데 그 활동이 정착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탈북민은 민우 씨 혼자여서 서먹하기도 했지만 함께 운동 하고 땀을 흘리며 어울리다 보니 어느새 가까워졌습니다. 직업도 여러 가지고 연령층도 중년부터 청년까지 각이한 사람들이 망라되어 있기에 모임을 함께 하면서 친분도 쌓고 여러 가지 지식이나 정보도 공유하게 되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김인선: 순수하게 운동만 즐기는 동아리도 많지만 친목도모 단체이다 보니 운동 끝나고 밥도 먹고 때로는 술도 마신다고 알고 있거든요. 본인은 즐겁지만 주말마다 남편이 축구하고 술 마시고 오니 아내들은 싫어하더라고요.

마순희: 제가 착한 사례 취재를 위해 많은 탈북 남성들을 만나 봤는데요. 젊은 사람들인 경우에는 거의가 조기 축구회나 족구모임, 탁구 모임, 산악회 등 운동을 많이 하고 있더라고요. 우리 동네에도 조기축구회가 있는데요. 워낙 우리 지역이 서울에서도 탈북민들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보니 조기 축구회도 탈북민들로 조직하기도 했더라고요. 간혹 다른 팀들과 친선경기가 있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가족들이 모두 떨쳐나서 북한음식들도 만들어 가지고 가서 함께 응원도 하고 즐기기도 한답니다.

민우 씨의 경우엔 제가 아내 분과도 이야기를 나눠봤더니 동호회 활동을 민우 씨보다 더 환영하고 있었습니다. 항상 남편이 일 밖에 몰라서 안쓰러웠는데 그렇게라도 나가서 운동도 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 다행이라고 하더라고요. 평일에도 아침시간에 운동하고 와서 함께 출근하기 때문에 남편의 건강을 위해서도 너무 잘 하고 있는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김인선: 일과 개인생활의 균형을 잘 잡는 삶이 건강한 삶이라고 하는데요. 김민우 씨는 가정생활까지, 그야말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것 같네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올해 여든이신 장모님은 100세 시대에 걸맞게 아직 건강하시고, 처는 회사에 잘 다니고, 아이들도 바르게 자라니 김민우 씨는 더 바랄게 없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대출금 다 갚고 어머님과 세 아들이 행복할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장모님 모시고 맞벌이 부부로 세 아들까지 함께 대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민우 씨에게는 또 새로운 목표가 생겼겠지요.

김인선: 아마도 김민우 씨라면 세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또 아끼고 저축하지 않을까 싶네요. 다섯 식구에서 여섯 식구가 된 김민우 씨의 가정이 앞으로도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며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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