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성공시대를 빛낸 주인공(1)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0-12-24
Share
2020 성공시대를 빛낸 주인공(1) 사진은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소 모습.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2020년도 얼마 안 남았어요. 올해는 코로나비루스 얘기가 빠짐없이 등장했을 정도로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물론 그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았지만요. 성공시대 주인공들이 대표적이 아닐까 싶은데요.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그동안 소개했던 성공시대 주인공들을 다시 한 번 소환해 보는 건 어떨까요?

마순희: 좋지요. 올해 제가 소개해 드렸던 성공시대 주인공은 공무원부터 식당 사장님, 봉사단 대표, 청소미화원 등 한 25명 정도 될 것 같은데요. 올해는 요양보호사처럼 탈북민들이 선호하고 익숙한 직업 외에 처음 소개한 직업들이 등장했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인선: 맞아요. 성공시대가 직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처음 듣는 직업이라고 제가 말했으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부동산전문가 허명희 씨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부동산 분야는 저한테 너무나 어렵게 느껴지는 분야인데 탈북민 부동산 전문가라고 해서 더 기억에 남더라고요.

마순희: 네. 탈북민들에게는 다소 낯선 분야의 직업이기에 부동산중개업에 종사하는 탈북민 분들이 많지는 않아요. 제 주변으로도 명희 씨 외에는 없고요. 북한에서는 동산이라고 하면 마을 주변의 작은 산이나 언덕이라고 알고 있거든요. 저도 처음 한국에 와서 부동산이라는 가게 이름이 많이 보이는 게 이상했어요. 동네마다 편의용품을 파는 편의점만큼이나 많은 게 부동산중개소니까요. 하지만 한국 생활을 지속하면서 이제는 익숙해졌답니다. 토지나 건물, 수목을 의미하고 그 외의 재산은 다 동산이라 표현하는데요. 부동산이라는 것은 내 집이든, 빌려 사는 집이든 이사할 때 집을 내놓거나 내놓은 집들을 보러 갈 때 꼭 들러야 하는 곳이잖아요.

김인선: 맞습니다. 남한에서는 ‘부동산’이라는 이름으로 집을 사고 팔거나 임대해서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니까요. 부동산을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돼 있었던 북한에서도 2009년 주택법이 제정된 이후부터 ‘간접적 부동산 거래’를 할 수 있다고 했었잖아요?

마순희: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허명희 씨에 대한 성공시대를 준비하면서 북한에 그런 변화가 있다는 걸 한국에 온 지 오래되지 않은 탈북민들을 만나서 알게 됐거든요. 하지만 남북의 차이는 지금도 극명합니다. 남한에서는 토지나 건물, 수목 등 부동산을 팔거나 사는 업무를 대행해 주는 부동산 관련 회사도 있고 거기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북한에는 없으니까요. 북한에는 없는 부동산 관련 일을 남한에 와서 하는 사람이 바로 허명희 씨 입니다. 부동산중개회사에서 중개사로 9년째 일하고 있는데요. 한국인 부하 직원들도 여러 명 두고 있는 탈북민 부동산 전문가로 불리고 있어요.

김인선: 탈북민들은 한국 정부의 제공으로 돈이 거의 들지 않고 평생 임대되는 아파트에 거주할 수 있기 때문에 부동산 거래가 쉽지 않거나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분들도 많은데, 허명희 씨는 조금 남달랐던 것 같아요. 물론 경제에 밝은 탈북민도 있지만 자신의 명의로 주택을 마련하는 정도로 알고 있거든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하지만 명희 씨는 부동산을 통해 재산 증식을 하고 투자정보를 위해 부동산 관련 공부는 물론 많은 경제서적까지 탐독하면서 부동산 전문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명희 씨와 거래하는 투자자들 중에는 탈북민도 40여 명 정도 있는데요. 중개사를 하면서 10억원(90만 2천9백달러)의 자산가가 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제 일처럼 관리를 해 주기에 지금도 전무후무한 탈북민 부동산 전문가로 자리를 잘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때문에 사람들 움직임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이사 가야 하는 사람들은 있으니까요. 더구나 최근 남한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집을 팔려고 내놓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하더라고요. 손님 방문이 크게 줄었지만 명희 씨는 위기의 순간에도 유능한 사람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김인선: 많은 사람들이 어렵게만 생각하는 부동산 업계에 뛰어든 허명희 씨의 성공비결이 바로 ‘작은 생각의 차이’였습니다. 그 차이가 우리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명희 씨의 이야기가 많은 귀감이 됐는데요. 명희 씨처럼 남다른 생각을 했던 분이 또 생각나는데요?

마순희: 아마 제가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요. 먼저 전염병을 고치기 위해 중국에 갔다가 피복업체 사장과 마음이 통해서 가정을 이루고 13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온 이미선 씨 사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전문가 수준으로 잘 할 수 있는 미싱일 대신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사업을 하는 사회적 기업에 취직해 회계와 매장을 운영하는 일을 7년째 맡고 있는데요. 탈북민이 지역에서 잘 정착할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하나센터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미선 씨가 한국정착을 성공적으로 했지만 중국에 있던 남편은 한국에 와서 제대로 적응을 못했는데요. 남편을 탓하거나 원망하는 대신 생각을 달리 해 집안일, 주부일을 남편이 담당하도록 하고 미선 씨가 바깥 활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익숙한 일로 당장 편안함을 추구하는 대신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자신이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도, 자칫 남편과 불화를 일으킬 수 있는 부분에서도 충분한 대화를 통해 역할을 분담한 것도 작은 생각의 차이였습니다.

김인선: 맞아요. 사실 저는 다른 분을 생각했는데요. 마 선생님 얘기를 들어보니 이미선 씨의 사례에서도 ‘작은 생각의 차이’가 미선 씨의 삶을 더 특별하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두 번째 특별한 주인공은 누구일지 궁금해지는데요?

마순희: 음식 맛이 좋기로 유명한 전라도에서 겁 없이 음식장사를 시작한 김영실 씨입니다. 탈북민들은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지내면서 대한민국에 대한 안내책자를 통해 자신의 정착지를 결정하는데요. 영실 씨는 북한에 있을 때 화학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취업이 수월할까 싶어 큰 화학공장이 있는 여수를 선택했습니다. 화학공장에 입사하려면 기본적인 학력과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던 거죠. 예상과 다른 현실을 접하면 어떤 어려움이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겁을 내는데요. 영실 씨는 ‘나는 잘 정착할 수 있다’ 하고 생각을 고쳐 먹었습니다. 무작정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는데 가장 많이 눈에 뜨이는 곳이 식당이었던 겁니다. 영실 씨는 누구의 소개도 없이 스스로 식당에 찾아가서 일자리를 알아 볼 정도로 당차게 행동했고 6년간 여러 식당에서 일하다 한국정착 7년 만에 자신만의 식당을 차리게 됐습니다. 고향의 이름을 딴 ‘함흥매운탕’집을 올해로 5년째 운영하고 있는데요. 3월에 저희가 영실 씨의 사례를 소개할 때만 해도 괜찮았지만 이후 계속되는 코로나비루스 여파로 손님이 많이 줄면서 운영에 타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영실 씨 역시 작은 생각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람이잖아요? 나만 겪는 일이 아니기에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산다면 지금의 위기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 힘을 낸다고 하네요.

김인선: 맞아요. 영실 씨의 말처럼 위기는 나만 겪는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이 위기는 각자의 판단과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보이겠죠? 성공시대 주인공들이 자신의 삶을 통해서 보여준 것처럼 말이죠. 부동산 전문가 허명희 씨, 함흥매운탕집 사장님 김영실 씨, 사회적 기업에서 매장운영을 맡고 있는 매니저 이미선 씨까지! 작은 생각의 차이로 자신의 삶을 멋지게 바꾼 주인공들입니다. 2020년 성공시대를 빛내준 다른 주인공들은 다음 시간에 만나볼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