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명단에 빠진 김정은

워싱턴-전수일, 강철환 chuns@rfa.org
2019.03.25
election_result-620.jpg 북한 중앙선거위원회가 지난 12일 발표한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당선자 687명의 명단.이번 선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은 '제5호 갈림길선거구'에 당선됐다.
연합뉴스

매주 화요일 북조선 내부의 소식과 정보를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사건, 사고, 동태, 동향에 관한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청취자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설명할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와 이 시간 함께 합니다. 북한전략센터는 북한 내부의 민주화 확산사업과 한반도 통일전략을 연구하는 탈북자 단체입니다.

전수일: 지난 3월 10일 북한이 5년 만에 치른 제 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당선자 687명의 명단에 김정은의 이름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북한 정권 출범 이래 김씨 가족의 최고지도자가 대의원 명단에 빠진 일은 처음 있는 일인데요,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강 대표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강철환: 김정은은 집권 후 처음 치른 2014년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111호 백두산선거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고 북한 매체들은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사실 북한의 선거라는 것은 모두 알다시피 하나 마나 한 선거입니다. 노동당 간부부에서 후보자들을 내정해 김정은이 사인하면 인민은 알아서 투표만 해야 하는 그야말로 눈 감고 아웅 하는 가짜 선거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김정은의 이름을 뺀 것은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2016년 여름 주영 북조선 대사관을 탈출해 한국에 망명한 태영호 전 공사는 이번 결정이 김정은이 개헌을 통해 과거 김일성 시대처럼 주석제를 부활하려는 의도로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은둔형인 아버지 김정일이 만들어놓은 뒤죽박죽의 북한 권력체제를 정상화하려면 복잡한 권력 구도를 단순화시키고 정상국가로 만드는 것이 우선인데 우선 선거개편을 통해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권력체계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전. 김일성 시대에는 국가의 최고수반과 노동당 총비서 직을 최고지도자가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국가수반직은 최고인민회의의 김영남 상임의장이 맡고 있지 않습니까?

강. 그렇습니다. 명목상 북한의 국가 수반은 김영남입니다. 그러니까 최고인민회의라는 합법적 입법기관을 대표하는 국가수반인 셈입니다. 그래서 대외적으로 국가에 보내는 편지나 전달문은 김영남에게 갑니다. 김정은에게는 개인 자격으로 가거나 특별한 경우에 보내는 형식으로 주고받게 됩니다. 이러한 것은 정상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김정은이 이번 기회를 통해 무엇인가 바꾸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전. 그렇다면 김정은이 국가를 대표하는 주석이나 내각 수상과 같은 직책을 부활시켜 과거 자신의 할아버지 김일성이 했던 것처럼 국가수반과 당 총비서를 동시에 쥐고 국정 전반을 책임지고 하겠다는 포석인가요?

강. 지금 김정은은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군사와 외교 부분을 자신이 맡고 내각과 경제는 내각 총리가 맡는 형식으로 인민 경제를 회피해왔습니다. 1995년 선군정치를 발표한 이후 내각 산하 국방위원회를 국가의 최고 의결기구로 격상시키고 국방위원장이 사실상 최고지도자 위치로 올려 세웠습니다. 사실상 정상국가가 아닌 병영국가에서만 있을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국방위원회 체제는 김정일 시대부터 김정은 정권 중반까지 계속됐습니다. 지난 선거 때 국무위원회를 신설해 김정은 자신은 국무위원장으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사실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바꾼 것 외에는 큰 변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지도자는 군사 부분과 외교 부분에만 관심을 가지고 민생 부분은 아예 내팽개치게 되어 인민을 책임지는 지도자가 아니라 자기 권력만 책임지는 지도자로 각인된 것입니다. 지금 김정은이 하려고 하는 인민 경제를 자기가 제대로 챙기려면 국가체계를 제대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에 정상국가로서의 영상과 지도자가 경제를 직접 챙기겠다는 포석으로 아버지의 유산을 버리고 할아버지 김일성 체제로 다시 회귀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외피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상 개인숭배 독재국가로 이미 오래 전에 변질되어 있습니다. 최고 권력자가 어떤 이름으로 존재하든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김영남은 노동당 과장보다 힘이 없지만, 명목상 그는 국가수반입니다. 그런 김영남이 과거 김정일-김대중 정상회담 때 김정일 앞에서 90도 머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언론매체를 통해 보여준 것이 있습니다. 국가수반이 최고 권력자 앞에서 노예처럼 움직이는 모습은 사실 북한에서 직책이라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김정일은 스스로 권력과 현실적인 힘을 믿고 자기는 뒤에 숨은 측면이 있지만, 김정은은 서방세계에서 받은 교육 때문인지 몰라도 자기는 정상국가 지도자임을 각인시키려는 의지가 강해 보입니다. 정상국가에서 지도자는 어떤 식으로든 인민과 인민을 대표하는 대표자 회의에서 추대되어야 합니다. 아마 김정은이 선거명단에서 빠지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최고지도자는 민의를 대표하는 최고 인민 회의에서 선출된 대의원들이 직접 선출하는 방식으로 헌법을 바꾸고 거기서 최초로 선출되는 지도자로 각인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해 보입니다.

전. 그렇다면 이름뿐이었던 국가 최고수반 김영남의 역할도 이제는 끝나는 것인가요?

강. 김영남은 김일성 시대부터 3대의 독재자들을 모시면서 한 번도 혁명화를 가지 않은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독재자 앞에서는 간과 쓸개까지 다 바치면서 충성심을 보이는 철저하게 위장된 아부의 화신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90살이 넘도록 허수아비이지만 권력의 감투를 쓰고 현장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습니다. 이제 김정은 시대 제2기에 이르면서 김영남이 선거명단에는 포함되어 있지만 더는 국가수반의 역할을 마감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전. 사실 북한경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김씨 3대 통치를 거치면서 악화 일로를 걸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만일 김정은이 헌번을 바꿔 내각 수상이나 주석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면 인민 경제 회생에 도움이 될까요?

강. 현재 북한경제는 비정상적인 국가체계가 만들어낸 참혹한 결과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입니다. 사실 김정은이 국가주석이나 내각 수상이 되어 북한경제를 직접 맡는다고 해서 북한경제가 당장 살아나기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김정일이 만들어놓은 39호실 경제와 제 2 경제를 철폐하고 국가 경제로 편입시켜 모든 국가 예산을 투명하게 설정하고 집행해야 하는 대개혁이 선제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39호실은 국가의 주요 자원인 금, 은, 연, 아연, 석탄 등 국가의 핵심자원을 독점하고 거기서 벌어들이는 돈은 김정은 마음대로 쓰기 때문에 사실상 개인금고나 다름없는 상태입니다. 그 개인금고를 국가체제에 환원시켜 관리·감독하게 하려면 수령중심체제를 완화하고 중국식으로 집단권력 구도로 바뀌어야 합니다. 하지만 김정은이 막대한 자금을 독점하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39호실을 인민에게 돌려주고 군수 경제를 내각 경제로 편입시키는 대개혁을 하기에는 개혁 의지나 준비가 돼있는 것 같지는 않고 실현 불가능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정상국가는 겉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의 결단이 실제로 이뤄질 때 가능한 것으로 봅니다.

전: 강 대표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내부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여러분께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지금까지 탈북자단체 '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와 함께 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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