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돋보기] 양곡판매소가 변화시킨 곡물시장 유통
2025.01.10
![[장마당 돋보기] 양곡판매소가 변화시킨 곡물시장 유통 [장마당 돋보기] 양곡판매소가 변화시킨 곡물시장 유통](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bd81d55cc774c57cae30/c7a5b9c8b2f9-b3cbbcf4ae30/grainmarket-distribution-system-01102025102004.html/@@images/55f31249-49a2-4489-8734-41454b3eab93.jpeg)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북한 당국이 식량 가격과 수급 안정화를 꾀하겠다며 양곡판매소를 운영한 지 햇수로 5년째에 접어들었는데요. 국가 독점의 양곡판매소가 생기면서 북한의 실물 경제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한번 짚어보죠. 손 기자, 우선은 아무래도 장마당에서 쌀을 팔던 사람들의 타격이 가장 컸겠죠?
손혜민 기자: 중앙정부는 지방정부 산하 양곡판매소가 활성화되도록 공권력으로 힘을 실어주었죠. 2022년부터 장마당에서 쌀이나 옥수수 등 곡물을 팔지 못하도록 조치한 겁니다. 이 통제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요. 특히 수십 톤의 알곡을 움직이던 돈주들을 대상으로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말하자면 농장이나 중국에서 식량을 사들여 장마당에 도매하던 유통업자들에게 칼을 댄 겁니다. 보통 장마당에서 식량을 팔아 살아가던 소매장사꾼들은 쌀을 도매하는 개인 돈주에게 외상으로 쌀을 받아 판매한 이후 돈을 총화하는 방식으로 장사했거든요.
당국이 곡물시장 큰손이었던 돈주를 쳤으니 장마당 쌀장사꾼들이 직업을 잃었고, 장마당 쌀매대는 자연히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쌀 매대가 아예 없어진 건 아닙니다. 콩과 팥 등은 통제되지 않습니다. 주 식량인 쌀과 옥수수를 기존처럼 수백kg씩 쌓아놓고 파는 행위를 통제하고 있는데, 양곡판매소가 곡물 수급을 장악하도록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양곡판매소 배경을 말씀드린다면요. 2019년 북미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후 김정은 총비서가 정면 돌파전을 선포하면서 시장경제를 억제하고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복원할 목적으로 정비한 사업의 하나입니다. 다시 말해 장마당 중심으로 유통되던 곡물을 국가가 장악하겠다는 목적으로 2021년 시범 도입되어 2022년 전국에 일반화된 곳입니다.
북한에서 전통적으로 운영되던 식량배급소와 차이점을 덧붙인다면 국가 양정성이 시, 군 양정사업소에 쌀과 옥수수 등 식량을 공급하면, 시, 군 양정사업소가 동과 리 단위로 설치된 식량배급소에 그 식량을 공급하고, 다시 식량배급소가 세대별 규정된 량에 따라 그 식량을 국정가격으로 공급하는 곳이 식량배급소입니다. 반대로 양곡판매소는 시, 군 양정사업소가 국영농장에서 생산한 알곡을 수매가격으로 사들여 양곡판매소에 공급하면, 장마당 가격보다 20% 싸게 판매하는 곳입니다.
가격이 기준인데요. 국가 양정이 국정 가격(쌀 46원)으로 식량을 공급하는 곳이 기존의 식량배급소라면 양곡판매소는 지방정부 자체로 식량을 조달해 시장가격으로 판매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국가 양정이 양곡판매소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양곡판매소가 활성화되느냐 활성화되지 않느냐의 책임은 지방정부에게 있으므로 국가 양정이 곡물을 공급하지 못해도 지방정부는 능력껏 곡물을 조달해 팔아야 합니다.
이렇게 곡물 유통구조가 자연히 바뀌고 있습니다. 장마당에 대량으로 쌀을 넘겨주던 돈주들은 양곡판매소와 손을 잡았는데요. 개인 돈주의 입장에서는 양곡판매소에 톤 단위로 쌀을 넘겨주고 마진을 보는 거나 장마당에 넘겨주고 마진을 보는 거나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안전 지대로 옮긴 것입니다.
진행자: 양곡판매소로 업계의 유통 구조까지 바뀌었다고 하셨는데요. 그러고 보니 쌀이 필요한 식당이나 떡장사, 탁주 장사 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변화가 생겼겠네요. 이분들도 그럼 기존에 장마당이나 돈주 등에게서 사던 쌀을 이제는 양곡판매소에서 사는 겁니까?
손혜민 기자: 북한에서 쌀 소비량은 개인도 많지만 식당과 음식 장사꾼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주목할 것은 전국 장마당과 길거리에 자리한 수많은 식당과 음식 장사꾼들이 소비하는 쌀은 대부분 후불제로 가져온다는 것이죠. 식당과 음식 장사가 잘 되면, 그 자체가 신용장이므로 쌀 도매상이든 쌀 소매상이든 저마다 소비자에게 외상으로 가져다 쓰고 나중에 돈을 총화하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개인과 달리 지방정부 산하 양곡판매소는 후불제가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부는 국가 양정사업소에서 공급받은 곡물이고, 일부는 개인 돈주에게 받은 곡물이므로 자율권이 없다고 해야 할지요. 특히 장마당에서 당연시되고 있는 배달 서비스가 없는 겁니다. 양곡판매소에서 곡물을 판매하는 직원은 많아야 두세 명이거든요. 곡물을 사러 오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해야 하므로 배달 서비스를 할 수 없는 구조인 겁니다.
이 말은 지방정부 산하 양곡판매소가 장마당을 밀어내고 곡물 수급을 독점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뒷받침합니다. 예를 들면 개인 돈주들은 이미 쌀 소비가 많은 큰 식당들을 단골로 정하고 1개월에 한번 식당 문 앞까지 차에 쌀을 실어 배달해 주고 후불제로 총화 받고 있다는 게 평안남도 소식통의 전언입니다. 이런 방식은 기존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당국의 단속에 대응하려는 차원으로 생겨난 암시장 안에서 움직이므로 새로운 방식의 쌀 유통 체계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관련 기사>
[장마당 돋보기] 김씨일가 동상에 생화 꽃바구니 바치면 생기는 일
진행자: 암암리에 개인에게 쌀을 살 수 있다면 양곡판매소에 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아닙니까?
손혜민 기자: 그렇지는 않습니다. 양곡판매소는 현재 두 가지 가격이 공존합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국가 양정성 산하 시, 군 양정사업소가 국영농장에서 수매가격으로 사들인 알곡을 양곡판매소에 공급하면 그 알곡은 장마당보다 20% 눅게 공급합니다. 가격이 눅은 쌀은 자유 판매 용도가 아닙니다. 설날이나 김정일 생일 등을 맞으며 당국이 공장 노동자들에게 명절용으로 5일~7일분 정도 공급하는 쌀이죠. 그러니 명절 전이면 양곡판매소에 사람들이 밀려듭니다.
또 하루벌이 계층이 양곡판매소에 많이 갑니다. 중산계층 정도면 최소 6개월~1년 식량을 한번에 사들이거든요. 돈주에게 전화하면 100~500kg 집 앞까지 배달해주므로 양곡판매소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장 노동자가 월급 받는 날이면 양곡판매소에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요. 지난해 당국이 20배 인상한 공장 노동자의 월급은 대부분 카드로 이체됩니다. 카드에서 현금을 인출하려면 돈표를 받게 되는데, 돈표는 장마당에서 40% 가치가 하락하죠. 카드 사용이 가능한 양곡판매소에서 월급을 사용해야 가치가 보존되므로 노동자의 월급은 양곡판매소를 통해 중앙은행으로 다시 흡수되는 것입니다.
진행자: 개인이 사고 파는 암시장이 새롭게 형성되면서 당국이 원하는 양곡판매소로의 일원화는 당분간 요원해 보이는데요. 북한의 곡물 시장, 당국이 완전히 장악하는 게 가능할까요?
손혜민 기자: 현재는 장마당에서의 곡물 수급이 지방정부 산하 양곡판매소로 이동하는 모양새를 보이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부작용이 심한데요. 지방정부가 돈이 없으니 개인 돈주와 손을 잡고 곡물시장을 독점하고 있어 수백명의 쌀 장사꾼들에게 분포되었던 장사 수익이 지방정부와 개인 돈주에게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겁니다. 양곡판매소 수익은 최종적으로 중앙정부로 집계되지 않습니까.
흥미롭게도 북한에는 장마당이 생겨나며 ‘사회주의 지주’, ‘사회주의 자본가’라는 대명사가 생겨났습니다. 어쩌면 이 말이 지금 김정은 정부에 딱 어울리는 말인 것 같습니다. 주민들의 생계 터전이었던 곡물 시장을 독점하고 있으니 사회주의 지주나 자본가는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도 올해 북중 간 육로 무역이 정상화되어 개인도 공식 무역과의 연계가 늘어나고 비공식 무역에도 참가하는 비중이 늘어난다면 국가 양곡판매소의 곡물 수급 독점은 다시 달라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진행자: 북한 곡물시장의 변화는 앞으로 그때 더 살펴봐야겠네요.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