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돋보기] 북한 주민들의 노동신문 활용법

서울-이예진 leey@rfa.org
2024.11.22
[장마당 돋보기] 북한 주민들의 노동신문 활용법 사진은 북한 수재민들을 위해 특수 제작 지원된 난로. 북한 주민들은 드물게 로동신문을 불쏘시개로 사용하기도 한다.
/Photo courtesy of shelterbox.org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북한에선 올해 겨울 추위를 이겨내는 것도 자력갱생 아니고는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월동 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월동용품을 파는 장사꾼들도 바쁘다고 하는데요. 일단 난방 얘기를 먼저 안 할 수 없죠. 이미 올 겨울을 날 구멍탄을 창고에 가득 들이신 분들도 있을 텐데요. 구멍탄과 함께 이맘때 잘 팔리기 시작하는 게 구멍탄을 좀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만든 보온통이라고 합니다. 이게 어떤 역할을 하는 겁니까?

 

손혜민 기자: 북한 장마당에서 판매되고 있는 보온통은 취사와 난방용 구멍탄 에너지가 낭비되지 않도록 보온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주재료가 돌솜이므로 방열 낭비를 막아주는 효과가 뛰어난 건데요. 사문암이나 각섬석으로 불리는 광물로 생산되는 돌솜은 산성이나 염기성에 강하고 열과 전기가 통하지 않아 방열재나 방화재로 사용됩니다. 공식 용어는 보온재이지만, 일반 사람들은 손으로 만지면 온 몸이 유리 조각으로 찌르듯 아프다고 하여 유리솜이라고 말합니다.

 

양강도와 함북도 등 북부지역에서는 취사와 난방 연료가 주로 장작이어서 보온통을 사용하는 살림집이 거의 없습니다. 나무와 구멍탄을 때는 아궁이는 사용하는 방식도 다르고, 크기와 모양, 입구 위치가 다르기 때문인데요. 정량화 되지 않은 나무 장작을 한번에 많이 넣어 불을 때 주어야 취사나 난방이 가능한 고열이 나므로 아궁이 입구와 공간 자체가 큽니다. 따라서 북부지역과 내륙지역이 자리한 살림집 부엌은 구조가 다르거든요.

 

다시 말해 북부지역 살림집 부엌에는 커다란 무쇠 가마 두 개를 나란히 고정 시킨 부뚜막 아래 네모난 모양의 커다란 입구가 있는 아궁이가 설치되었다면, 내륙지역 살림집 부엌 부뚜막에는 가마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부뚜막 위에 동그란 모양의 작은 입구가 있는 아궁이가 있고, 그 아궁이에 구멍탄을 넣고 때므로 솥뚜껑으로 아궁이를 닫아 놓았다가 취사할 때마다 작은 윰가마를 올려놓고 밥을 하거나 반찬을 합니다.

 

이로 인해서 보온통은 구멍탄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는 평안도 지역 살림집에서 사용하는데요. 보온통은 구멍탄이 들어갈 수 있게 만든 것인데, 주요 재료는 돌솜과 시멘트, 모래입니다. 여기서도 돌솜이 가장 중요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돌솜은 사문암이나 각섬석으로 불리는 광물을 이용해 생산되므로 해당 광물이 나오는 지역 중심으로 보온통이 생산됩니다.

 

진행자: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지역에서 보온통이 많이 생산되고 팔리고 있습니까?

 

손혜민 기자: 대표적으로 평안남도 순천이 보온통이 생산되는 지역인데요. 순천에는 돌솜을 생산하는 보온재 공장과 시멘트 공장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죠. 처음에는 공장에서 유출된 돌솜과 시멘트를 구매해 개인이 만들어 팔았습니다. 그런데 개인 밀주와 돼지 축산이 확산되면서 보온통 수요가 늘어나자 지금은 공장에서 직접 보온통을 만들어 장마당에 넘겨줍니다. 보온통 한 개 가격은 2,500(0.12달러) 정도로 알려졌는데요. 보통 구멍탄 아궁이는 60cm 정도 깊이이므로 길이 30cm의 보온통 두 개를 넣어 줍니다. 밀주를 하거나 돼지 축산으로 살아가는 주민들은 하루 4~6대의 구멍탄을 때므로 화력이 센 구멍탄이 보온통에 붙어 그것을 떼다가 보온통 벽이 떨어집니다. 그러면 또 사야 합니다. 보온통이 팔리는 숫자가 적지 않다는 말입니다

 

개인 축산이 발달한 도시일수록 보온통 수요는 더 높아집니다. 석탄 가격이 비싸지다 보니 구멍탄을 찍을 때 반경을 작게 하는 주민들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마당에서 판매되는 보온통 크기도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구멍탄이 크든 작든 보통 안에 구멍탄을 넣고 때면 열 낭비도 줄이고, 탄내 사고가 방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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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보온통 하나만 봐도 북한 주민들이 알뜰살뜰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엿보이네요.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 중 하나가 목욕주머니라고요?

 

손혜민 기자: 그렇습니다. 주민들이 애용하는 겨울 상품 중에 목욕주머니를 빼면 안 되거든요. 널리 알려졌다시피 목욕주머니는 2000년대 이후 북한 주민들이 창의적으로 고안한 상품인데요. , 군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은덕원이라는 대중목욕탕이 자리하고 있지만, 연료난 등으로 운영되지 못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한국처럼 도시가스와 수도가 집집마다 설치되어 아침마다 샤워는 할 수 없지만, 가끔 목욕은 해야 되지 않나요. 특히 영유아는 자주 씻어주어야 피부병이 예방됩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장마당에서 비닐 박막 3미터 정도 사서, 박막 한쪽을 끈으로 묶어 천장 고리에 달아줍니다. 장판 바닥으로 드리워진 비닐 박막 안에 커다란 함지를 들여 놓고, 그 함지 안에 뜨거운 물을 부어주면 더운 공기가 비닐 박막 안에 차오르면서 뜨끈한 목욕탕이 만들어집니다. 여름에는 강가나 냇가에 목욕할 수 있지만, 겨울에는 강가나 냇가에서 목욕할 수 없으므로 집집마다 목욕주머니를 장만하는 겁니다.

 

진행자: 비닐박막 하나로 간이 목욕탕을 만들 생각을 누가 했는지 참 똑똑하네요. 비닐박막처럼 돈 많이 들이지 않고 찬 겨울바람을 막는 방법도 있다면서요?

 

손혜민 기자: 그렇죠. 북한 주민들은바늘 구멍으로 황소 바람 들어온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창문 방풍지를 소홀히 했다가는 겨울 찬 바람이 집 안으로 황소처럼 들어와 추위로 고생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창문 방풍지를 반드시 하는데요. 창문 밖에는 비닐 박막을 창문 크기만큼 잘라서 가는 나무로 돌돌 말아 창문에 통째로 대고 못을 막아주는데요. 이때 사용되는 손가락 모양의 나무를 빠대라고 하고, 빠대를 박는데 사용되는 아주 작은 못은 빠대 못이라고 합니다. 창문 안에도 창호지를 발라줍니다. 창호지는 주로 신문을 테이프처럼 잘라 사용합니다.

 

진행자: 한국에선 이사 들어갈 때 말고는 도배를 잘 안 하는데, 북한에선 겨울 되기 전에 해마다 도배를 한다는 말인가요?

 

손혜민 기자: 북한의 살림집은 국가 소유이므로 도시경영사업소에서 보수작업을 해줘야 하는데, 애당초 바랄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장마철이면 아파트를 제외한 단층집은 대부분 비가 새는데요. 장마가 지나면 살림집 천장은 늘어지거나 터지고, 도배지는 들떠서 말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10~11월이면 반드시 겨울 전에 천장 도배를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초지입니다. 천장 초지는 각목과 각목 사이 당겨서 붙여야 하므로 길이가 길고 품질이 좋아야 하는데요. 장마당에서 파지를 전문으로 파는 장사꾼들이 앉아 있는데요. 파지에도 상파지가 있고, 하파지가 있는데, 하파지는 천장 초지로 사용하지 못합니다. 도배 초지나 화장지 등으로만 사용하거든요. 상파지로 판매되는 노동신문이 비교적 넙적하고 품질이 좋아 천장 초지로 사용됩니다.

 

진행자: 노동신문이 주민들에겐 굉장히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네요. 그럼 노동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김씨 일가 초상화는 빼놓고 사용하는 거겠죠?

 

손혜민 기자: 아무래도 노동신문은 시, 군 출판물보급소 보급원들이나 도서관 사서들이 몰래 판매하는데요. 이때 초상화가 있는 신문은 제외하고 장마당에 넘깁니다. 그러나 간혹 초상화가 있는 신문을 그대로 넘기기도 하는데요. 그러면 주민들은 초상화가 도배 초지 안으로 들어가게 풀을 발라 벽에 그대로 붙입니다. 드물게 불살개(불쏘시개)로 사용하는 주민도 있는데요. 수령 신격화가 무너지고 있는 북한 사회의 현주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주민들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는데요. 올 겨울 날 준비 무사히 잘 마치셨기를 바랍니다.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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