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북한 장애우들 위해 연주하고파, 네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


2007.11.22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눈을 돌리는 곳 마다 아직 가을단풍이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곧 단풍도 시들고 앙상한 가지만 남을 텐데요 자연보다 세상을 더 아름답고 값지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모녀가 있습니다. 장애의 고통을 잊고 단 4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이 희아 씨와 희아 씨의 어머니 우갑선씨 이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하면 장애인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특히 희아 씨는 북한 장애우들 앞에서 연주 할 날을 기다리며 북한 조선민요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름다운 세상에서 펼쳐갈 얘기입니다.

일본에서 연주회를 마치고 막 돌아왔다는 희아 씨는 일본인들과 재일교포들을 위한 연주회였다며 특히 나고야 구슈 엔에취케이 텔레비전 방송에서 촬영을 했다고 소식을 전합니다.

이희아 씨: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하고 일본의 오토다케 히로타다라는 분이 계시잖아요. 그분처럼 정말 감동받고 나도 할 수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졌다고 그런 얘기를 일본 시민들이 많이 하셨어요.

일본의 오토다케 히로타다 라는 분은 선천성 4지 절단 장애로 태어날 때부터 팔 다리가 없는 장애인 이었죠 그분은 오체 불만족 이라는 책을 내어 아주 유명한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특히 일본의 장애우들도 희아씨의 연주를 듣고 힘을 얻었습니다.

이희아 씨:일본의 장애인들도 정말 희망 브랜드라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올해 22살인 희아 씨는 척추장애인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선천성 사지 기형 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희아 양 아버지는 67년 경기도 연천 무장공비 토벌 작전에 투입되었다 척추를 다쳐 10년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그 병원 간호사 였던 어머니는 바로 환자였던 아버지를 간호 하면서 사랑하게 된 겁니다.

희아 양이 이렇게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은 포병소위 출신의 1급 척추 장애자였던 아버지가 통증을 잊기 위해 모르핀을 사용하던 중에 아기를 갖게 되었는데 어머니는 척추장애인 남편과의 아기를 갖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하고 장기간 감기약을 먹고 주사를 맞았던 것입니다. 임신사실을 뒤늦게 알고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초음파 검사를 하고 손가락이 제대로 만들어 지지 않았고 다리도 자라다 말았다며 이대로 낳으면 기형아가 될 것 이라며 낙태를 권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우갑선 씨는 소중한 생명을 포기 할 수 없어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희아를 낳았습니다. 아버지는 200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희아 씨는 장애인 이지만 자신의 모습에 하나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음성만 들으면 이런 정도의 장애인 이라는 것을 모르죠 희아씨는 이번 일본 공연에서 재일교포들과 남북통일에 관한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고 합니다.

이희아 씨:어렸을때 쓴 일기책에도 제꿈이 무엇냐고 하면 미국이나 선진국에서 연주를 하는 것이 아니고 아프리카나 몽골이나 특히 우리 북녘 동포들에게 연주를 들려주고 북녘 장애우들 에게 희망을 주고 꿈을 주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지금 이루어져 가고 있어요.

희아씨는 지금 한창 북한 피아니스트가 편곡한 북한 민요곡을 연주 하고 있습니다.

이희아 씨:그것이 북한 만수대 예술단 작곡가이신 정권 선생님이 편곡하신 아리랑이나 도라지 그리고 임진강 이라는 곡도 연주하려고 하는데 그런 민요들을 계속 연습을 하면서 연주도 하고 있고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어요.

이미 금강산에 가서 연주를 했지만 평양에 가서 특히 장애우들 앞에서 꼭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들려 줄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희아 씨:제가 임진강 연습을 하고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평양에서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제가 9월1일 북측 장애우 격려 음악회를 했는데요 남북의 통일을 위해서 함께 하고 싶었어요.

희아씨 에게 전화상으로 들을 수 있도록 연주를 부탁 했는데요 사실 공연장도 아니고 연습장도 아닌 전화상으로 연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 선뜻 응해 주었습니다.

질문) 양쪽 두 손가락 가지고 빠른 부분은 어떻게 연주를 해요 연습 많이 하시죠

답) 그것은 연습에 의해서도 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도 커서 연습도 많이 했어요 저는 언젠가 통일이 되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질문) 북한의 장애우들 에게 희아씨가 주고 싶은 말은?

답)북녘에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미국에는 물자가 풍부하니까 정부에서 많이 지원해 그 장애우 들이 풍족하게 지내면서 희망도 잃지 않고 꿈도 마음속에 담아가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희아씨의 어머니 우갑선 씨는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장애인 딸을 성공시킨 어머니로 올 아산사회복지 재단이 주최한 제19회 아산 상을 받았습니다. 어머니와도 연결이 되었는데요

질문) 축하드립니다. 따님을 훌륭히 키워서 이런 상을 받으셨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답) 희아는 날 때부터 하나님이 계속 돌보아 주셨고 이번에 상을 받을 자격이 못되지만 우리가 북한 장애우 들을 돕는 음악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상을 주시면 북한 장애우들 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도 했어요 그래서 그 일이 이루어 진 것으로 믿어요.

질문) 북녘 장애우 돕기 움악회는 어떻게 정기적으로 열고 있나요

답) 우리가 늘 마음으로는 염원을 하고 있었는데 음악회를 많이 하는데 희아가 음악회 할 때 마다 아리랑을 연주 하면서 북녘 장애우들 에 대한 호소를 하고 CD 를 판매하는데 그 판매 수익금을 북녘 장애우 돕는 기금으로 모으고 9월1일은 크게 음악회를 해서 여러 분들에게 도움도 받고 휠체어를 준비 했어요 그래서1차로 휠체어를 먼저 보냈고 그리고 이번에 2차로 휠제어를 준비해서 다시 보낼 거예요.

질문) 희아씨가 예쁜 일을 하고 있어요 어머니가 그동안 많이 힘드셨죠?

네 희아가 피아니스트가 되기까지는 그런 고생이 없었으면 사실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고통 없이 행복할 수 없는 거니까 아무튼 희아가 작하고 순종적이고 또 본인이 의지력이 대단하구요 대견스러워요

질문) 정상적인 아이들도 피아노를 시키려면 엄마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생을 하는데 본인의 의지력도 강하지만 그래도 힘들었던 점은 어떤 점 이셨어요?

답)우선 사람들은 손가락 문제가 상당히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손가락이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희아가 처음에는 악보를 읽을 수 없을 만큼 지능이 낮았어요 그래서 악보를 읽고 외는 것이 대단히 힘 들었어요 쇼팡의 즉흥환상곡 같은 경우는 5년 이상 걸려서 완성 한 것이고 그렇게 해서 여러 레파토리가 이루어졌는데 지금은 지능도 많이 개발되고 손도 강해지고 길어지고요 그래서 희아가 정말 많은 고생을 한 것 들이 오늘날 보람을 갖게 된 것이죠

질문)그렇군요 음악을 하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하지 않아요

네 맞아요

질문)그러니까 그것을 희아가 입증 했네요

네 희아가 증거자입니다.

질문)늘 감사하고 기쁜 생활을 하셨겠는데요 그중에서도 정말 가슴 벅찬 일도 있을것 같아요?

답) 희아가 태아 때부터 세상에 안 나왔으면 좋겠다며 사랑을 못 받은 그런 상태인데 희아가 태어 났을 때 외국이나 어느 잘 사는 나라로 장애아를 받아줄 수 있는 나라로 보낼 것을 가족들이 생각을 했었어요

질문) 네 입양같은 것

답) 그런데 실제로 희아 소리를 들려주시면서 희아를 보호하셨어요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사람이고 그 순간이 기억에 남아있고 그래서 세상에 알려지면서 선진국인 캐나다나 미국 같은 곳도 장애인들을 가진 부모님들의 가슴앓이는 똑 같더라구요 그래서 그 부모님들이 희아를 보면서 희망을 얻었다 하고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가 가장 감격적이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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