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일본에 손 내미는 북한

0:00 / 0:00

지난 (1월) 5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총리에게 노토(能登)반도 지진 피해를 위로하는 전문을 보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기시다 총리에게 보낸 전문에서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에게 심심한 동정과 위문을 표한다”면서 기시다 총리에게는 ‘각하’라는 경칭을 붙여 깎듯이 예우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북한은 2023년 한 해 동안 한국과 미국을 향해 끊임없이 군사적 위협과 도발을 해오더니 2024년 새해 벽두부터 한반도 서해안 NLL해역에 사흘 연속 포격도발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같은 민족인 남한에 대해서는 온갖 험담과 협박을 일삼고 한반도에서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으르렁 대면서 오랜 세월 동안 원한이 쌓인 원수라고 욕하던 일본에 갑자기 화해의 손짓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김정은이 이처럼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오락가락 갈 지(之)자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지난 해(2023년)부터 부쩍 강화된 한미일 3국동맹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정상회담의 결렬로 미국과의 국교수립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김정은은 미국과 한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의 수준을 계속 끌어올리면서 압박을 가해왔습니다. 2023년 말까지 수백 발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감행하고 소형 핵탄두 개발에 매진함으로써 동북아는 물론 미 본토의 안보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공격 대상이 한국과 일본의 미군사기지를 넘어서 미 본토까지 위협하는 상황이 되자 미국의 주도로 한미일 3국의 안보협의체가 결성되었습니다. 한미일안보협의체에는 세 나라의 안보관련 고위인사가 참여하고 있으며 상설기구로서 3국 대표들이 언제든지 만나 북의 공격에 대비한 합동훈련 등 대응책을 협의하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동북아지역의 긴장상태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벼랑 끝 전략으로 미국의 양보를 받아내려던 북한 입장에서는 한미일 3국안보동맹은 매우 껄끄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기시다에게 보낸 위로전문은 한미일동맹의 강화를 의식한 북한이 한국과 일본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숨은 목적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북한전문가 박원곤 교수(이화여대)는 “한미일 협력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한일 관계는 갈등의 여지가 있어 그나마 일본이 갈라치기가 가능한 국가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공갈에도 미국은 요지부동이고 한국은 어떠한 도발에도 즉각적인 맞대응을 공언하고 있는 만큼 한미일동맹에서 가장 약한 고리가 일본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일본이 북한의 화해 손짓에 화답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동안 북한의 수많은 미사일 도발이 일본의 안보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되고 있는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북한이 중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일본정부는 위험지역 민간인에 방공대피령을 발동하고 자위대 미사일부대에 비상을 걸어 즉각적인 대응사격을 할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무력시위에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일본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북한과의 협상에 나서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물론 일본정부는 어떤 상황에서도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역대 일본정권이 대북외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문제는 바로 북한에 의한 일본인납치자문제 해결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2002년 12월 ‘북한 당국에 의해 납치된 피해자 등의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일본인 17명을 북한에 납치된 피해자로 공식 인정했습니다. 일본은 또 내각 총리실 직속으로 ‘납치피해자문제 대책본부’를 설치하고 납치피해자 본국 송환과 북한의 공식사과를 받아내는 것을 대북외교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역대 정권은 일본인납치자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보이지 않을 경우, 납치피해자가족회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에 부딪히게 되고 이는 곧 내각지지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형식이든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유지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런 일본정부의 사정을 이용해 어떻게든 북일수교협상을 성사시켜서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보상금, 즉, 대일청구권자금을 받아내 경제난국을 돌파하려는 속셈을 지니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이번 지진피해 위로전문이 북일수교협상까지 염두에 두고 화해의 메시지를 보낸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의 미북정상회담을 통해 대북제재 전면해제를 노리던 북한은 미북수교협상이 완전히 물 건너 간 지금 상황에서 일본과의 수교협상에 물꼬를 트고 대일청구권 자금을 들여와야 할 절박한 상황에 처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17명의 자국 국민을 백주 대낮에 납치해 북한에서 한 많은 생을 이어가게 만든 북한당국의 소행을 일본 국민과 정부가 잊을 수 있을까요? 김정은이 듣기 좋은 소리로 화해분위기를 조성한다 해도 일본이 북한과의 협상을 위해 한국에 등을 돌리고 한미일동맹을 약화시키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김정은이 뜬금없이 지진피해 위로 전문을 통해 일본에 화해의 손짓을 하는 저의가 궁금합니다.

** 이칼럼내용은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