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김정은의 무모한 ‘영토평정’ 발언

서울-오중석 xallsl@rfa.org
2024.03.15
[오중석의 북한생각] 김정은의 무모한 ‘영토평정’ 발언 지난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연설하는 김정은.
/연합뉴스

북한이 한반도를 둘러싼 현 정세를 핑계로 평화통일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다음 한국을 제1의 적대국가로 규정하고 남한을 무력에 의한 영토평정의 대상이라고 공언하고 나섰습니다. 김정은은 작년(2023) 말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총동원해 남조선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1월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는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겉으로는 무력통일을 배제하고 평화통일을 주장해오던 북한이 최근 들어 남북한을 서로 다른 두 개의 국가로 규정하고 남한을 무력에 의한 영토평정의 대상으로 선언한 데 대해 남한 사회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한국을 무력 침공하기로 결심한 것 아니냐며 불안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전문가들은 김정은의 이 같은 위협적인 발언은 그가 지금껏 추진해온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전략이 수포로 돌아가자 대미, 대남 전략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나온 전략적인 수사(修辭)에 지나지 않는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2019년 하노이 미북정상회담의 결렬로 대북제재 해제라는 목표달성에 실패한 김정은은 소위 '웅대한 작전'이란 것을 설정하고 오로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매진하면서 미국과 한국, 국제사회를 향해 도발과 위협을 일삼아왔습니다. 노동신문이 소개한 '웅대한 작전'은 주민생계 문제는 뒷전이고 군사력 강화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것입니다.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 무기개발에 몰두해온 김정은에게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인민경제 악화에 따른 민심이반일 것입니다. 실제로 북한 현지 소식통들의 전언에 따르면 주민생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기개발에만 몰두하는 김정은에 대한 주민들의 감정이 거의 폭발 지경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와중에 김정은에게는 마치 구세주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한 것입니다. 러시아에 포탄과 무기를 대량으로 판매하면서 경제난에 시달리던 북한에 러시아의 물자와 자금이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는 무기 판매 대가로 현금과 물자 외에 정찰위성 등 첨단 군사장비에 대한 정보, 기술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군비강화와 경제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김정은이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강도 높은 위협과 도발을 시작한 것입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최근 김정은이 영토평정 등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에 힘입어 경제적으로 자력갱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군사력으로 한국을 점령할 수 있다고 협박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주민들에게 군사강국의 완성이 가까워졌으니 조금만 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배고픔을 참으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만에 하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다고 해도 북한이 무슨 수로 남한을 점령할 수 있겠냐고 반문합니다. 남한에 대해 기습적인 핵공격을 감행한다고 해도 주한, 주일 미군과 한국군의 즉각적이고도 압도적인 핵반격으로 북한 전 지역이 완전히 초토화될 것이라고 군사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김씨왕조체제도 소멸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김정은이 군사력에 의한 영토평정 운운하는 것은 다분히 대내, 대외적 선전선동을 위한 위협적인 수사, 즉 말폭탄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김정은이 선대 수령들의 위장 평화통일정책을 폐기하고 군사력에 의한 영토평정 정책을 공언하게 된 배경에 대해 한국 전문가들은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러시아와의 밀착관계를 통해 대북제재 해제나 한국과의 경협 없이도 자력갱생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가졌다면서 남북간 국력의 격차가 너무 커 한국에 흡수통일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온 북한이 경제적, 군사적으로 자력갱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공세적으로 전환해 조건부 전쟁불사론을 밝힌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김갑식 한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도 북한의 초강경 대남정책이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반면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대남노선 전환은 남북한간 체제경쟁에서의 실패를 인정한 수세적 성격의 정책전환이라고 풀이했습니다. 박 교수는 또 북한이 한국과 적대적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한미일 동맹에 대응하는 북--러 동맹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기존의 통일전략을 폐기하고 두 개의 국가론을 주장한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 통일부 당국자도 최근 김정은의 강경발언 저변에는 체제유지에 대한 불안감, 대남 자신감 결여,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흡수통일에 대한 불안감 등이 자리잡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김정은이 무력통일을 암시하는 강경 발언을 내놓는 배경이 무엇이든, 그의 전쟁불사 위협 발언이 남한사회와 주변국들에게 상당한 혼선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김정은이 우리 민족과 조국의 생존을 놓고 무모한 도박판을 벌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 정부가 김정은이 벌이고 있는 위험하고 파괴적인 도박판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주기 바랍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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