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북한 의무교육의 허실

서울-오중석 xallsl@rfa.org
2024.03.29
[오중석의 북한생각] 북한 의무교육의 허실 개학 첫날 학생들이 수업을 하고 있다.
/REUTERS

북한의 각급 학교들은 오는 41일부터 새 학기를 시작합니다. 남한보다 한 달 늦게 새 학기를 시작하기 때문에 신입생 입학식도 4월 초에 열리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요즘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도 12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선전매체를 동원해 북한의 의무교육이 선진국 수준이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초·중등학교 9년을 국가가 모든 국민의 교육을 책임지는 의무교육기간으로 규정하고 있는 데 반해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선전에 불과합니다.

 

북한의 선전 내용만 놓고 보면 북한의 의무교육 기간이 길어 한국보다 한발 앞선 것처럼 비쳐질 수 있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북한의 의무교육은 속빈 강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교육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1990년대 이후 탈출한 탈북민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북한에서는 소(초등)학교부터 각종 기여금과 과제물 부담이 많아 매달 상당한 돈과 현물을 학교에 바쳐야 합니다. 여기에 소학교 어린이들도 소위 '학생 사회의무 노동제'라는 규정 때문에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탈북민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북한 헌법에 만 16세 이하의 노동을 금지한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유치원 어린이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이 무상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유치원과 소학교 학생들에게 교실 미화작업이란 이름으로 학교 청소와 동네 청소작업을 수시로 강요하고 있으며 나이 어린 소학생들을 수해복구작업 등 힘겨운 노동에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소학교, 고등중학교 학생들에게 고철수집, 폐지 및 폐비닐 수집, 토끼 가죽 등 소위 과제물이란 것을 부과해 학부모들을 괴롭힌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학습한 이론을 노동의 실천으로 공고히 다져야 한다는 사회주의 노동이론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당에서 정한 경제계획 달성을 위해 부족한 노동력을 학생 노동력으로 보충하는 것입니다.

 

북한은의무교육비라는 명목으로 모든 노동자들의 임금에서 일정액을 별도로 공제하고 있습니다. 교육세를 거두고 있는 셈인데요. 북한의 의무교육은 한마디로 수업료만 없다뿐이지 학용품, 교과서, 교복은 물론 교육기자재, 겨울철 난방연료까지 거의 모든 비용을 학부모와 학생들이 부담하고 있습니다. 국가에서 제공한 개인 컴퓨터와 대형 스마트 TV, 판형 컴퓨터 등으로 현대식 교육을 받고 있는 한국의 학생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 선전매체가 깨끗하게 정돈된 교실에서 컴퓨터를 앞에 두고 공부하는 교실 사진을 자주 내보내고 있지만 이는 철저히 선전용으로 조작된 사진이라고 탈북민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1956 8월 처음으로 초등의무교육을 시작한 북한은 1958년 중등의무교육으로 확대했고 1967 4월에는 인민(초등)학교 4, 고등중학교 5년 등 9년 의무교육제를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북한경제가 그런대로 괜찮았던 80년대 초반까지는 9년 의무교육제의 기본 골격을 유지함으로써 대부분의 북한 학생들이 유치원부터 고등중학교까지 진학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게 탈북민들의 증언입니다. 북한의 학교 교육이 파행을 겪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 북한경제가 곤두박질치던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입니다. 90년대 중반부터는 각급 학교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거의 중단되어 모든 학교들이 자력갱생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교육분야에서의 자력갱생이란 한마디로 학용품이며 교과서, 교육기자재, 점심식사, 교복 등 모든 것을 학생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겨울철 교실 난방을 위해 학생들이 석탄이나 장작을 등에 지고 등교해야 했다고 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야 했던 고난의 행군 시기, 밥은 못 먹어도 공부는 해야 하겠기에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교실에서 언 손을 녹여가며 공부했던 기억이 새롭다고 한 탈북민은 회고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북한당국은 학생들에게 폐철(고철), 폐비닐, 폐지, 빈병 등 재활용품을 수집해 바치라고 강요했고 교육지원비 명목으로 일정액을 학부모들에 부과했습니다. 주민 대부분이 굶주리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먹고살기 위해 학교공부를 아예 포기하고 식량벌이에 나서는 학생들이 많아 교실이 텅 비는 경우가 많았다고 그 시기를 경험한 탈북민들은 강조합니다.

 

북한이 학교 교육에서 가장 우선시하는 내용은 정치사상교육입니다. 정치사상교육은 김일성, 김정일의 혁명역사와 혁명활동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학생을 주체사상으로 세뇌시키고 노동계급화, 계급투쟁의 전사로 만들어 김씨왕조 체제를 보위하는 전위병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일부 특권층 자녀들에게는 소위 영재학교 입학자격을 주어 첨단 과학기술 교육과 전문분야 교육으로 대를 이어 김씨왕조에 충성하는 선도 집단을 양성하고 있다고 탈북민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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