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북한의 영화

서울-오중석 xallsl@rfa.org
2024.08.16
[오중석의 북한생각] 북한의 영화 2019년 제17차 평양국제영화축전을 위한 선전화.
/연합뉴스

북한은 한 때 영화산업에 관심을 갖고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수준높은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자본과 인재를 투입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적이 있습니다. 김정일은 집권기간 동안 영화에 큰 관심을 보이고 북한 영화를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면서 영화제작을 전담하는 부서를 새로 내오고 당시로서는 첨단 영화 촬영과 편집 장비를 구입하는 한편 배우들을 육성하기 위해 연기전문학교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씨일가 우상화와 세습독재체제를 고수하는 북한에서 영화는 철저하게 체제선전도구로 이용될 수밖에 없고 선전수단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김정일이 아무리 영화에 관심과 애정이 많다고 해도 선전도구로 전락한 북한 영화가 세계수준의 예술영화 반열에 올라서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북한정권 수립 후 김일성 집권 시기인 50~60년대에는 북한에서도 선전목적보다는 인민의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들이 적지않게 제작되었습니다. 특히 중국, 소련 같은 공산주의 나라들과 합작 영화를 만들어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영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당시 소련과 합작한 영화에는 체제선전뿐 아니라 역사물이나 로맨스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룬 영화도 있습니다. 1957년 북한과 소련 합작영화인 <형제들>에서는 월북 무용가 최승희의 딸인 안성희가 주연겸 무용감독을 맡았는데 서울의 술집 풍경등 남한사회를 사실적으로 묘사해 영화의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당시 북한의 조선중앙텔레비죤은 주로 소련과 중국영화를 더빙해서 방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60년대 중반까지는 김일성 1인독재의 기반이 완전하지 못해서 김일성 우상화를 바탕으로 한 주체예술의 개념이 확립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부터 김정일이 예술계에 손을 뻗기 시작하면서 북한영화는 본격적으로 주체예술, 즉 체제선전예술로 변모하게 됩니다. 당시 북한주민들 속에서 큰 인기를 끌던 혁명가극들이 영화화 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으로 <피바다> <꽃파는 처녀> <한 자위단원의 운명> 등 김일성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한 혁명가극이 영화화되었습니다. 반대로 <금강산처녀>같이 인기리에 상영된 영화를 각색해 <금강산의 노래>라는 혁명가극으로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이중에서 <피바다> <꽃파는 처녀>같은 가극은 김일성의 소위 혁명투쟁 시기인 1930년대 활동을 묘사한 작품으로 북한을 대표하는 혁명가극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항일투쟁이력과 주체사상을 미화하기 위해 민족의 운명과 혁명사상에 기여한 인물을 다룬 영화를 다수 제작했는데 그 가운데서도 김일성의 혁명동지인 최현을 형상화한 <민족과 운명 최현>편과 인민무력부장을 지낸 오진우를 형상화한 <백옥>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인물을 모티브로 한 영화 수십편을 내놓았습니다. 이른바숨은영웅따라배우기 운동이 벌어지던 1970년대 후반부터 자신을 희생해 김일성에 충성하거나 직장에서 가족도 돌보지 않고 연구에 몰두해 생산성을 높인 소위노력영웅들을 소재로 한 영화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들어 소련의 몰락과 동구권 해체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소위 정춘실운동이 벌어졌는데, 자강도 전천군 상업관리소 소장을 지낸 정춘실의 일생을 다룬 <효녀>라는 영화가 제작되는 등 무조건적인 절약과 현실성 없는 생산증대 운동을 다룬 영화가 많이 나왔습니다. 이 시기에는 또 반미선전영화가 많은데 푸에블로호 피랍사건을 다룬 <대립>이란 영화도 있고 영국인 간첩이 전향해 북한을 위해 공작을 벌여 승리한다는 터무니 없는 내용의 <이름 없는 영웅들>이라는 영화도 제작되었습니다.

 

김정일은 1978 1월과 7월 당시 한국의 유명 영화감독 신상옥과 배우 최은희를 각각 납치해 국제영화제 출품용 예술영화를 제작하도록 했습니다. 신상옥최은희 부부 납치사건은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었지만 김정일의 의도와는 달리 신상옥 부부가 1986 3월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미국대사관에 망명함으로써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당시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만든 영화 <춘향전>은 북한에서 제작된 영화치고는 사상선전내용이 적은 예술영화로써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천편일률적으로 김씨 일가 우상화와 체제선전에 매몰된 북한 영화에 식상한 북한 주민들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중국을 통해 유입된 남한 영화와 TV드라마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CD(알판) USB등을 통해 북한에 유입된 한국영화는 북한주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고 폐쇄 사회에서 갇혀지내던 북한주민들에게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해주었습니다. 한국에서 인기를 얻은 영화나 드라마가 단 몇일 만에 북한내부에 전해져 북한주민들이 보면서 함께 웃고 울고했다는 사실이 탈북민들의 증언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한국영화는 아카데미영화제, 칸영화제, 베를린영화제등 세계적인 권위의 영화제에서 여러차례 작품상, 감독상, 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요즘 한국영화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런 한국영화의 북한유입으로 체제위기를 느낀 김정은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 이를 막으려 하지만 북한주민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한국영화를 완전히 틀어막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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