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북한의 휴가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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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한반도에 전례없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찌는 듯한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남한에서는 많은 직장인들이 산으로 바다로 휴가를 떠나는 바람에 시내 교통체증도 완화되고 길거리에 인파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폭염이 덮친 것은 북한지역도 마찬가지일텐데 청취자 여러분은 휴가를 다녀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직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휴가는 반드시 필요한 재충전의 기회이자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인 권리의 하나입니다. 북한 매체들에 따르면 북한도 노동자들의 휴가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노동법과 사회주의 보장법에 따라 모든 직장 노동자들에게 근속연수에 따라 총 14일간의 정기휴가와 7일에서 20일간의 보충휴가를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은 한결같이 북한에서 직장에 소속되어 일할 때 한 번도 법에서 보장한 휴가를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자기가 소속된 직장에 휴가제도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설사 휴가제도에 대해 안다고 해도 감히 직장에 휴가를 가겠다고 신청하는 사람은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직장 업무에서 탁월한 실적을 내거나 당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 대가로 포상휴가를 받는 것이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휴가를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설명합니다.

법에 휴가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직장에 휴가계획을 제출했다가는 당의 방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반당, 반사회주의자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라고 북한 내부 소식통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당 간부나 안전부, 검찰, 보위부 등 권력기관의 간부들은 마음만 먹으면 갖가지 핑계를 대고 휴가를 사용하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이른바 ‘돈주’로 불리는 신흥부자들도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휴가를 즐길 수 있는 게 북한의 현실이라고 합니다.

일반 주민들이 휴가를 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부모, 조부모 등 직계가족의 상을 당했거나 본인의 결혼 등 아주 드문 경우에만 휴가가 허용된다고 합니다. 또 몸이 아프거나 부상을 입어 출근할 수 없을 때 병가를 사용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직장의 조장부터, 당세포비서, 작업반장, 담당 보위원, 공장장에 이르기까지 8-9 단계의 허가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아픈 몸을 이끌고 허가를 받느라 휴가 가기도 전에 지쳐버린다고 탈북민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는 특이하게도 김장휴가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김장은 반년치 식량을 마련하는 중대한 행사이기 때문에 모든 주민에게 김장휴가를 주어 겨울을 날 월동 식량을 마련할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심각한 저출산과 인구감소 위기에 직면한 북한은 남한 못지않은 출산휴가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통일의 메아리'는 북한의 출산휴가 제도를 선전하며 여성들은 산전 60일, 산후 180일 등 모두 240일간의 산전·산후 휴가를 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내부 소식통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북한당국은 선전매체나 주민회의 등을 통해 출산휴가 대상자에 대해서는 240일간 기본 생활비를 지급하는 등 선진국 못지않은 출산휴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선전한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여성 탈북민들은 일반 여성근로자의 월급이 쌀 1kg 값(북한돈 4,500~4,800원)에도 못 미치는데 출산휴가 기간 동안 생활비(월급)를 보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집권이후 북한 매체들은 평양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 김정은의 배려로 수많은 주민 휴양시설, 위락시설이 들어서고 있다고 선전했습니다. 실제로 김정은은 집권 초기에 놀이공원과 종합체육관, 스키장, 수영장 등 주민편의시설 건설을 현장 지도하며 인민사랑을 우선하는 지도자상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등 호전적인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거듭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으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자초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관영매체가 보도하는 평양과 지방의 놀이공원이나 수영장에서 휴식을 즐기는 주민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면서 심한 박탈감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부 간부층 가족이나 특별히 선택된 소수의 주민들이 휴가를 즐기는 것을 마치 북한의 전체 주민들이 그 같은 휴식을 누리는 것처럼 선전하는데 대해 염증을 느낀다고 현지 소식통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은 북한에 있을 때 여름 피서라는 말 자체도 몰랐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주민들이 여름에 즐길 수 있는 휴가는 공휴일이나 쉬는 날 집에서 멀지 않은 개울이나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는 게 유일한 피서라고 탈북민들은 설명합니다. 1박 2일로 멀리 떨어진 명승지나 바닷가를 찾아가는 것도 여의치 않으며 남한 사람들처럼 장기간 가족여행을 떠나거나 멀리 해외에서 휴가를 즐기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내부 소식통들과 탈북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