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북한주민이 가장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속도전’이란 단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북한 당국은 대규모 국가 건설을 추진할 때 마다 기간을 정해놓고 기일 내에 공사를 완공하라고 강요합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단 기간 내에 공사를 마치도록 주문하고 모든 것을 속도전으로 해결하라고 지시합니다.
북한이 자랑스럽게 선전하는 속도전은 ‘70일 전투’ ‘150일 전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주민과 군인들에 대한 노동력 착취 수단입니다. 당중앙(김정은)에서 완공 날짜를 정해주면 공사에 동원된 노동자들과 책임간부들은 있는 힘을 다해 기간 안에 공사를 마쳐야 합니다. 속도전에 투입된 돌격대는 물론이고 인민군 병사들, 일반 주민들까지 총동원되어 말그대로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각오로 죽기를 한하고 일해야 되는 것입니다.
당에서 정해준 기간 내에 완공하지 못하면 공사 책임자와 관계된 간부들이 엄중한 문책을 당하기 때문에 간부들은 공사에 동원된 군인들이나 돌격대, 주민들을 밤낮없이 공사판에 몰아넣고 혹사시킵니다. ‘당이 정하면 우리는 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수천, 수만의 노동자들이 공사판에서 힘든 노동을 하고 있는데 소위 ‘선전대’로 불리는 사람들은 그 옆에서 혁명가요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동을 독려하는 모습은 정상국가 사람들의 눈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한 편의 희극적인 무대로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내세우는 속도전은 한 마디로 기술, 노동력, 자본, 설비 부족에다 노동 의욕이 떨어진 현실에서 노동자들의 혁명적 열의를 최대한 자극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북한식 강제노동의 상징입니다. 속도전의 시초는 1956년 12월 당중앙전원회의에서 발기한 천리마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때부터 북한은 건설 사업뿐 아니라 국가의 모든 사업분야에서 ‘천리마속도’에 의한 속도전을 강조하면서 주민들을 무한 노동에 내몰고 있습니다.
1970년대 이후 북한은 모든 국가사업에 속도전식 사업방식을 본격적으로 도입해 열악한 기술력과 장비를 노동력으로 메꾸면서 주요 건설사업에서 일정부분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김정일 시대부터 김정은 시대까지 이어진 주요 속도전 사례를 보면 70일 전투(1974.10), 100일 전투(1978.5), 제1차 200일 전투(1988.2), 제2차 200일 전투(1988.9), 150일 전투(2009.4) 등이 있습니다. 김정은 집권이후에도 속도전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위한 돌파구 마련과 체제유지 및 내부결속 강화를 목적으로 자주 이용되고 있습니다.
기술과 자본 부족을 무릅쓰고 속도전을 강행하다보니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주민들의 속도전에 대한 저항감이 날로 높아가고 있습니다. 안전장치가 없는 공사장에서 너무도 급하게 작업을 하다 보니 하루에도 몇 건씩 치명적인 안전사고가 발생해 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속도전 공사장에 우선 투입되는 건설부대 군인들과 청년돌격대원들의 희생이 크다고 돌격대 출신 탈북민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7년 4월 준공식을 가진 평양 여명거리는 평양의 랜드마크로 불리며 김정은의 중요한 치적으로 선전되고 있는데 이 사업의 핵심은 고층아파트 건설입니다. 35층부터 82층 높이의 고층아파트 6동을 비롯해 학교 6개, 유치원 3개, 보육원 3개 등의 공공시설을 착공 1년 만에 완공했습니다. 여명거리 건설 당시 북한 조선중앙TV는 아파트 한 개층을 올리는데 18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건설 속도전을 자랑하는 영상을 내보냈습니다. 이를 본 한국의 전문가들은 초고층 아파트를 이처럼 졸속으로 건설한다면 부실공사가 될 수밖에 없고 이런 아파트에 입주하는 사람은 불안감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돌격대 출신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평양 여명거리 조성 당시 많은 군인과 돌격대원들 들이 부실한 안전장치로 인해 추락사고 등으로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기계와 장비 부족을 노동력으로 메꾸기 위해 너무 많은 인원을 투입하다보니 개인 안전 장비를 지급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많은 희생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북한당국이 공식적으로 밝힌 여명거리 공사장의 안전사고는 30여 명의 사상자를 낸 공사장 승강기 추락사고 1건뿐입니다.
지난 2014년 5월 13일 북한 평양시 평천구역 안산1동에 위치한 23층 아파트가 무너진 사건은 북한의 속도전 방식에 따른 날림공사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건설자재 부족으로 불량 시멘트를 사용하고 완공 기일에 맞추느라 공사를 서두르는 바람에 준공을 앞둔 23층 건물이 무너져 3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밖에도 백두산 영웅청년댐, 서두수댐등 북한의 중요한 댐들이 모두 속도전방식으로 건설되었고 부실공사로 인해 댐에 금이가는 등 위태로운 상태라고 현지 소식통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해마다 장마가 오면 물을 댐에 가두지 못하고 일시에 방류하는 탓에 북한이 해마다 큰 물 피해를 겪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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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