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북한의 문화재
202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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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문화재가 남아있습니다.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시와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을 비롯해 북한 전역에 산재해 있는 문화재는 한반도 북녘에 터전을 잡고 번성했던 우리 선조의 지혜와 씩씩한 기상을 대변해주는 수많은 유물과 역사 유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북한에는 지역 특성상 고구려계 문화재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발해, 신라시대, 고려시대의 중요한 유물도 많습니다. 조선시대의 국보급 유물도 적지 않은데 현 북한 영토와 인연이 없던 백제시대의 유의미한 문화재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분단 상태이지만 남북은 같은 민족으로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입장에서도 북한이 보유한 문화재는 귀중한 가치를 지닌 민족공동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대표적인 문화재로는 남포시 강서구역에 있는 강서고분군과 약수리 벽화무덤, 수산리 벽화무덤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 무덤에는 사신도(四神圖)를 비롯해 고구려 시대의 생활모습과 복식, 외국사신들의 행렬, 건물 양식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 고구려 시대를 연구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귀중한 유적입니다. 그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평양시 중구역에 있는 평양성은 고구려의 성곽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역시 중요한 문화재로 꼽힙니다. 고구려 동명왕릉, 고려 공민왕릉을 비롯해 묘향산 보현사 9층석탑, 고구려 고국원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안악 3호분(安岳 3號墳)도 북한이 보유한 중요 문화재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황해남도 안악군에 위치한 안악 3호분은 AD357년경 축조된 무덤으로 선명한 벽화와 비문으로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암시하고 있어 한국의 고고학자들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유적입니다.
북한은 또 개성 선죽교를 원래대로 복원하고 한석봉이 쓴 선죽교를 알리는 비문(碑文)을 국보 159호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국보로 지정한 문화유적과 문화재는 모두 195점에 달합니다. 국보외에도 준국보유물 121개, 준국보유적 1723개, 천연기념물 474개, 비물질민족유산(무형문화재) 45개로 숫자상으로는 남한의 문화재 보유 숫자에 버금갑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남한이라면 보물 지정도 통과하기 어려운 19세기 청화백자들까지 무조건 보물로 지정하는 등 북한의 국보, 보물 지정은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유 문화재가 많으면 무엇 하겠습니까? 유적과 문화재를 제대로 관리하고 전문적으로 연구해서 관련 논문도 작성하고 세계에 우리의 문화와 역사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북한은 평양에 있는 유적들은 소위 혁명유적 다음으로 잘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평양 밖의 유적은 아무리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녔어도 보존 관리가 허술하다고 현지 소식통들과 탈북민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문화재를 잘 보존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주려면 항온항습 장치를 갖춘 문화재 수장고를 많이 보유해야 합니다. 훼손된 상태로 발굴된 문화재를 원래대로 복원하고 보존처리를 해서 영구히 보관하는 보존처리과학(기술)도 발달해야 합니다. 대학에 고고학과를 설치해 우수한 고고학자를 양성하는 것도 문화재 보존에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 중 어느 것도 북한 당국이 애써 추진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상당수의 북한 문화재들이 중국을 거쳐 해외로 팔려 나갔는데 북한 당국이 이를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로 서화류와 청자, 백자 등 도자기류가 헐값에 유출되었다고 한국의 북한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선조가 남겨준 유물도 중요하지만 우선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문화재급 유물을 내다 판 겁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얘기인데요. 우리나라는 이미 구한말 혼란기,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의 와중에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요즘 한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보존 관리는 거의 완벽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훼손된 문화재와 유적에 대한 복원과 보존처리 기술도 서구 선진국 등 세계가 알아줍니다. 남북관계가 화해무드였던 지난 2000년대 초 남한의 고고학자와 문화재 관계자들이 북한 문화유적에 대한 합동조사와 문화재 보존처리기술 협력을 제안해 몇 차례 남북한 학자들의 북한 문화유적 합동조사가 이뤄졌지만 얼마되지 않아 북한은 뚜렷한 이유를 대지 않고 합동조사를 중단시켰습니다.
남북한이 다시 손을 맞잡은 2007년부터 2015년까지 개성 만월대 지구에 대한 남북한 공동발굴작업이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고려시대 궁궐터인 만월대의 전체 부지는 25만㎡로 전체 규모의 57% 정도 발굴이 이뤄졌습니다. 세계 고고학자들의 관심을 모으던 개성 만월대유적 합동 발굴은 그 후 남북관계의 악화로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북한이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선진적인 발굴능력과 문화재 보존처리 기술을 보유한 남한과의 문화교류를 재개한다면 북한 문화재의 발굴과 보존관리에 큰 도움이 될 텐데 아쉬움이 남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