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소고기와 북한

서울-오중석 xallsl@rfa.org
2023.12.22
[오중석의 북한생각] 소고기와 북한 북한 운곡지구 목축농장에서 소들이 보인다.
/REUTERS

북한에서 당국의 허가 없이 소를 도축하고 소고기를 유통시키다 적발된 남녀 9명이 지난 여름 공개 처형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최근 주요 북한전문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8 30일 북한 양강도 혜산시 공터에서 남녀 9명이 공개 총살되었다고 합니다. 처형된 사람은 남성 7, 여성 2명이며 양강도의 가축 검역소장, 평양의 식당 관리자, 군 복무 중이던 대학생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들은 2017년부터 올해 2월까지 병으로 죽은 소 2천여 마리를 해체해 소고기를 판매했다는 이유로 처형되었습니다. 불법 소고기 유통 조직을 만들어 장기간 평양의 식당과 업소에 공급한 혐의를 받았다고 합니다. 아무리 소를 귀하게 여기는 북한이라지만 소고기를 유통시켰다고 해서 과연 공개 총살에 처해야 하는 건지 새삼 북한정권의 잔인성에 분노하게 됩니다.

 

공개 처형을 직접 목격한 주민 소식통에 따르면 공개 처형장에 2 50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고 합니다. 소식통은 당국에서 처형장 부근의 야산을 완전히 메울 정도로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한 명씩 끌어내 총살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총살형 집행 날에는 혜산시의 공장, 농장, 장마당이 폐쇄됐으며걸을 수 있는 17세에서 60세까지 모든 사람은 공개처형장에 모이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지 소식통들은처형당한 사람들이 2 100여 마리의 소를 도축해 고기로 유통시켰다는 당국의 주장에 대해서 주민들은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습니다. 아무리 간 큰 사람이라도 당국에서 엄하게 금지하고 있는 소고기를 2천 마리 넘게 도축해 그렇게 오랜 기간 유통시킬 수 있었겠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했다면 필시 이번에 처형된 주민과 하급 간부 외에 힘 있는 고위 간부들이 상당수 연루되었을 것이라고 주민들은 의심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모든 소는 협동농장이나 국영농장에 소속된 국유재산입니다. 농기계가 절대 부족한 북한에서 소는 농경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중요한 농사 수단이기 때문에 농장에서 부리는 일소는 농민들보다 후한 대접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작년(2022)에는 전 해 수확량이 줄었다는 이유로 농민들의 식량배급을 반으로 줄이면서도 협동농장의 소들에게는 추가 곡물을 100kg 더 배정해 소를 배불리 먹였다고 합니다.

 

북한당국은 협동농장에서 사육중인 농경용 소에게 1마리당 옥수수 알곡과 옥수수대 100kg을 추가 배분하면서도 일반 농민들에게는 연간 배급량 중 200일분만 배당했다고 합니다. 일소를 굶기지 않기 위해 농민들을 배고픔에 내몬 셈인데 많은 농민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렸고사람보다 소가 더 중요하냐면서 당국을 원망했다고 합니다.

 

소고기가 워낙 귀하다 보니 북한은 지난 2001년 광우병 감염이 의심되는 소 수십만 마리의 살처분을 두고 고심하던 독일정부에 광우병으로 살처분 한 소고기를 북한에 보내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당시 광우병 소고기를 대량으로 제공받은 북한은 이를 대부분 호위사령부, 보위사령부 등 특수부대에 공급하고 일부는 시장에 내다 판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북한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도덕적, 안정성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북한은 독일로부터 1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광우병의심 소고기를 제공받았고 (1차분 6000) 지원된 소고기가 적절한 광우병 검사를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남한 등 국제사회를 경악케 했습니다.

북한의 소 이야기를 하다보니 지난 1998년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사건을 떠올리게 됩니다. 자신의 고향이 있는 북한 주민을 돕는 게 평생의 소원이었던 정주영 회장은 당시 83살의 나이로 두 차례에 걸쳐 소떼 1001마리를 이끌고 휴전선을 넘어서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1차 방북 때 소 500여 마리를 트럭 수십 대에 싣고 북으로 향하는 광경은 장관을 이루었으며 그 후 이 사건은 남북경협 활성화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코로나19가 유행할 당시에는 공개처형을 잠시 멈췄으나 코로나 방역전 승리를 공식 선언한 이후 공개 처형을 점차 늘리고 있습니다. 공개 처형 대상을 보면 주로 남한 영화나 드라마 시청, 기독교 등 신앙 문제, 김씨일가에 대한 비판 등 소위 체제를 위협하는 행동을 했다는 사람들입니다. 이전에도 간간이 소를 불법 도축한 사람들을 처형했다는 보도는 있었지만 이번처럼 소를 도축하고 고기를 판매했다고 해서 대규모 군중 앞에서 여러 명을 공개 처형한 경우는 흔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북한의 통치 방식이 갈수록 더 잔혹해지고 공포정치의 정점을 향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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