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농번기를 맞은 북한 농민들은 요즘 걱정이 많을 것 같습니다. 영농자재 부족과 북한 지역의 극심한 봄 가뭄으로 모내기가 예정대로 진척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양동이로 시냇물을 퍼날라 가며 가까스로 심어 놓은 모들도 대부분 말라죽었다는 것이 북한내 소식통들의 전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2020년부터 김정은 위원장의 소위 농업관련 ‘지침’에 따라 논과 밭에 밀과 보리를 심기 시작했는데 밀, 보리 수확이 늦어지면서 논에 모내기를 제때에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농사에 있어서 최고의 전문가는 농민입니다. 수십 년 농사를 지어온 농민들만큼 농사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평생 농사일을 해보지 않은 김정은 위원장이 농사전문가라는 당 간부 몇 사람의 말만 듣고 농민들에게 ‘콩 놔라 팥 놔라’하며 지시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북한에서나 가능한 영농정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해마다 농사철이 다가오면 ‘농업은 사회주의 완성의 전위대’, ‘농민은 식량증산으로 애국심을 승화시켜야 한다’며 식량증산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연초에 당 8차 대회를 열고 ‘농업은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주타격 전방’이라며 농업의 역할과 위상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지난 2월 26일 시작된 당 중앙위 제8기 제7차 전원 회의에서는 “새로운 5개년 계획 수행 기간 당이 제시한 알곡고지를 무조건 점령하고, 농업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물질·기술적 토대를 튼튼히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이 농사철을 앞두고 당대회와 당 전원회의를 잇따라 개최한 것은 북한의 식량사정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농민들에게 꼭 필요한 영농자재와 영농자금을 지원해주지 않으면서 알곡고지(생산목표)를 무조건 점령(달성)하라고 강요하면 농민들이 무슨 수로 생산량을 늘릴 수 있을까요. 당과 선전매체에 나오는 결정서와 발표문 어디에도 영농자재와 영농자금 지원의 구체적 방안에 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습니다. 각 협동농장이 자력갱생의 정신으로 영농자재와 영농자금, 농기계를 자체적으로 조달하고 국가가 정한 알곡고지(생산목표)를 무조건 달성하라며 다그치고 있습니다.
한국 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은 1990년대 이후 한 번도 식량을 자급자족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90년대 중반에는 청취자 여러분이 기억조차 하기 싫어하는 대기근, 즉 고난의 행군이 닥쳐 수십만 명이 아사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2000년대 들어 북한의 농업이 다소 호전되는 기미를 보였지만 알곡 생산량이 목표에 미달하면서 북한은 해마다 만성적인 식량부족사태를 겪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대북경제제재 강화와 2020년 코로나로 인한 국경 봉쇄의 부정적 효과가 한층 더 누적되면서 북한의 식량난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코로나 봉쇄로 인한 식량난의 심화로 상당수의 주민들이 아사했다고 북한 내부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국제사회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작년 식량생산 감소분만큼 올해 식량수입을 늘리지 않는다면 올해에도 식량부족사태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합니다. 여기에 더해 대북제재의 부정적 효과가 누적되고 자력갱생만을 강조하는 북한의 농업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북한의 식량 문제는 ‘부족’에서 ‘위기’로 한층 더 심화할 가능성도 있어보입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식량위기 해소방안은 의외로 단순하다고 말합니다. 농민들에게 농사짓는 땅을 분여하고(나눠주고) 국가는 농민들로부터 수확한 알곡의 적정수준을 거둬들이는 것입니다. 1980년대 초 중국 공산당이 실시한 인민공사(협동농장) 해체와 농가책임제 도입이 가장 좋은 예입니다. 1983-84년경, 중국에서는 인민공사가 다 사라졌고, 농민들은 자신을 위해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1984년, 중국에서 알곡을 비롯한 농산물의 생산량은 1978년 보다 140%나 증가했습니다. 전 세계의 농업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성공입니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직후인 2015년 북한에서도 협동농장의 포전담당제가 시행되었습니다. 분조원 4~5명을 기준으로 일정농지를 분여하고 포전에서 수확한 농산물은 국가 납부 몫을 제외한 초과 생산물에 한해 국가와 농민이 일정 비율로 나누는 방식입니다. 농민 몫을 늘려 농민의 의욕을 북돋우고 생산 증대를 꾀하기 위해 시행한 제도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 생산량을 늘려도 농민에게 돌아오는 몫은 없었다고 합니다. 북한 내부 소식통과 외부 관찰자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포전담당제로 인해 늘어난 생산량의 일부를 농민에게 나눠주는 게 아니라 ‘애국미’, ‘돌격대 지원미’, ‘인민군 헌납미’ 등 온갖 구실을 달아 강제로 징수해갔다는 것입니다. 이에 실망한 농민들이 할당받은 포전을 협동농장에 반납하고 다시 농장원으로 일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북한의 포전담당제는 있으나 마나한 유명무실한 제도가 되었습니다. 요즘 북한의 농업정책을 보면 앞으로도 북한의 식량난 해결은 요원해 보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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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