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의 주간진단] 북한 주민 “러시아 파병보다 화목전투가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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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의 주간진단'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MC: 남과 북이 휴전 중인데도 불구하고, 북한에는 무슨 '전투'가 그렇게 많을까. 한때는 그게 그렇게나 궁금했었는데 말이죠. 북한에는 정말이지 다양한 전투가 많더라고요. 대표적인 것으로 모내기 전투와 추수 전투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전투 중에서 북한주민들이 가장 힘들어하고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화목전투라고 하는데요. 그런데, 최근 들어 화목전투를 바라보는 북한주민들의 시선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화목전투와 관련해 북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한국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안찬일 박사와 대담 나누겠습니다. 안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네 안녕하십니까.

MC :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본격적으로 추위가 들이 닥칠텐데요. 주민도 주민이지만 특히 북한 군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 추운 겨울을 나는지 궁금합니다. 120여 만명에 달하는 북한군은 어떤 방법으로 추위를 이겨내나요?

안찬일: 네, 북한군은 난방에서 식사, 등 모든 난방을 화목전투로 해결합니다. 화목이래 봤자 주변의 야산 잡목을 빡빡 깎아 불을 때는 것입니다. 장작이라도 있으면 그건 최고의 연료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후방에서는 민간인들이 쓰는, 혹은 장마당에서 판매하는 장작을 사다 난방을 해결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그건 드문 호사이고 그저 야산을 발가벗기는 화목전투로 주로 난방과 식사를 해결합니다.

MC : 그런데 군대에서 잡목으로 겨울을 난다는 사실이 잘 믿겨지지 않는데, 북한 군대가 언제부터 그렇게 됐나요?

안찬일: 네, 원래 북한군은 최전방의 경우는 화목전투로 연명했지만 식당의 연료나 병영의 난방은 무연탄을 사용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1974년 봄 북한 경제가 무너지면서 군대의 연료난은 재앙으로 다가왔습니다. 신통하게 김정일로의 2대 세습이 시작된 해이니 결국 북한 경제는 족벌세습으로 무너지기 시작해 오늘 파멸의 벼랑 끝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군대 식당의 밥도 나무로 해결하고 병영 난방도 잡목으로 겨우 군불을 때는 식의 봉건사회로 되돌아갔습니다.

MC : 그러니까 1974년까지는 군대 식당 등에서는 무연탄으로 밥을 짓는 등 소위 '연료 보장'이 되었다는 말이지요?

안찬일: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1974년에 들어서며 군대에 잡곡, 즉 옥수수밥을 먹게 되었고, 무연탄 등 국가적 공급이 완전히 단절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무연탄 등 연료 생산이 안 된데도 문제가 있지만 캐낸 석탄을 부대에까지 날라줄 연료 즉 휘발유가 없다 보니 주로 산악지대에 주둔하는 군대는 버려진 자식들이 되어 버렸죠. 결국 주변 산을 빡빡 깎아 그 잡목으로 불을 때는 봉건시대의 아궁이 처지로 되돌아 갔습니다.

MC : 그런데 궁금한 건, 군 생활을 하는 군인들이 언제 나가서, 어떻게 화목을 구해 온다는 것인가요?

안찬일: 그렇죠, 그래서 화목전투가 시작되면 농촌 출신 군인들이 한 몫 합니다. 우선 그들을 위주로 협동농장 야장간에 파견하여 낫을 제작해 오게 하는가 하면 그걸 갈고 사용하는 법을 다른 군인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학교에 다니다 군복을 입었거나 도시 출신 군인들의 경우 도무지 성과가 나지 않습니다. 겨우 산에 올라 낫을 들고 허우적 거리다 손을 크게 베거나, 벌에 쏘이거나, 굴러떨어지거나 그야말로 화목전투는 전쟁이 분명합니다. 화목전투 때면 머리가 안좋은 농촌출신 군인들이 한번 크게 역할 해 입당의 기회를 잡든지, 표창을 타는지 일을 냅니다.

MC : 듣기로는 전방 부대 군인들의 경우, 자신들의 병영과 식당의 화목은 물론 병사들이 군관가족들의 화목도 다 해준다는데 그건 무슨 이야기인지요?

안찬일: 북한군은 최전방 군관들의 경우 대부분 결혼해 가족들이 부대 주변 군관사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연료문제 역시 1970년대 중반까지 무연탄으로 정부가 공급해 주었지만 그 뒤부터 전혀 공급이 단절되다 보니 모두 화목으로 아궁이를 지피는 신세로 전락하였습니다. 군인들은 먼저 자신들의 화목을 마련한 다음 군관가족들의 화목을 날라다 쌓아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군인들은 그날을 은근히 즐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군관가족 부인네들은 군인들이 화목 1단이라도 더 날라다 쌓아주기를 바라며 고구마를 쪄 군인들에게 제공합니다. 항상 배가 고픈 군인들은 그날이 잔치날이 되죠. 열심히 나무단을 날라주고 고구마 실컷 얻어먹는 재미에 산을 뛰어 다닙니다.

MC : 이게 모두 북한의 경제가 무너진 결과가 아닐까 싶은데요. 영향실조에 걸리는 병사들도 적지 않다고요?

안찬일: 당연합니다. 나무가 무족한 군대가 쌀이니 부식이 넉넉할 리 만무하죠. 연료가 자체해결이면 고기도 자체해결, 부식도 자력갱생입니다. 이러니 군관가족들의 출산이 늘어날리 만무합니다. 북한의 저출산과 빈곤함은 병사들의 신체적인 조건을 비참하리만큼 약화시켰습니다. 김일성 시대에는 배급으로 사람들을 굶겨서 해방 직후부터 평균 신장이 고난의 행군 때까지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출산율이 높아 키가 큰 사람들이 나왔기에 징집 기준은 마련할 수 있었지만 고난의 행군을 맞아서 더 이상 이렇게 병력을 유지할 수 없어, 북한에는 한동안 징집 기준 신장이 제한을 받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2020년에 시장화로 인한 주민 신장 증대로, 148cm까지 올리려고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남자를 사실상 죄다 징집해도 부족한지, 2015년 4월에 여성징병제를 실시했습니다. 오죽하면 북한 주민들마저 '군인이 총을 멘 건지, 총이 군인을 멘 건지 모르겠다'며 암암리에 놀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MC : 북한 군인들이 힘들게 군생활을 한다는 사실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죠? 어떻습니까?

안찬일: 네, 지난 2017년 세계 식량 안보와 영양 백서라는 UN 인도주의 지원 부서의 보고서에서는 "10년 전인 2007년 경에 비하여 북한 내부의 영양실조 환자가 대폭 늘어났다"고 밝히며, 이러한 장기 영양실조는 가임기 여성의 빈혈 증가, 아동의 성장 발육 저하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즉 미래에 입대할 인원들이라고 건강 상태가 좋아질 리가 없다는 말. 다만 북한의 영양실조에 대한 주장은 발언자마다 다르다는 점은 감안해야 합니다. UN만 하더라도 2019년에는 북한 영유아 사망률이 감소세이며, 세계 평균보다도 북한의 영유아 사망률이 낮다는 모순된 주장을 했습니다. 이는 NGO의 존립 근거가 대북 지원이기에, 식량난을 과장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고난의 행군 이후 각종 뇌물 등으로 사회 통제를 무마시켜 주민들이 코로나19까지는 예전보다는 좀 살았다고 여겨지는 측면이 과장된 것입니다.

MC :현재 북한군에서는 "우리가 하는 고생은 참아야 해, 우크라이나에 끌려간 군인들은 언제 총알받이가 될지 몰라", 이런 말이 유행한다는데 무슨 뜻이죠?

안찬일: 군인은 전쟁에서 죽는 것이 영광이지만 러시아의 전쟁은 침략전쟁으로 세계 양심의 규탄을 받고 있지요. 현재 약 1만여 명 이상의 북한 군인들이 영문도 모른 채 러시아 용병으로 전쟁터에 끌려나갔지만 그들은 가족들에게 소식조차 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북한에서 고생하는 군인들은 그나마 전쟁터에서 죽는 것 보다는 자신들의 고생이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MC : 네, 오늘은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안 박사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찬일: 네 수고 하셨습니다.

MC: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저희는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