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북 장령이 5.16군사정변에 관심 많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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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지난 5월 16일은 남한에서 군사혁명이라고도 불리는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지 62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정변'이란 무력을 사용하여 정권을 뒤집는 것을 가리키는데요. 그런데, 북한군 장령들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 5.16군사정변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박정희 전 남한 대통령의 5.16군사정변, 북한 인민군 장령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라는 주제를 갖고 한국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인 안찬일 박사와 함께 자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MC : 안찬일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안 찬 일: 네 안녕하십니까!

MC : 먼저 안 박사님께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군사정변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 네, 저의 주관이 뭐 그리 중요하진 않겠지만 저도 박정희 시대를 잠깐 살아본 사람으로서 5.16에 대한 관심은 남다릅니다. 특히 저는 북한에서 살 때 박정희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겨났을까? 그 관심이 남달리 높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탈북해 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공부를 좀 많이 했습니다. 사실 저는 목숨을 걸고 혁명을 하는 것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장군이 혁명을 시도하는 당시 한국 사회가 4.19혁명 직후 많이 혼란스러웠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한 군사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장군의 군사혁명 없이 새마을운동의 기적과 한강의 기적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MC : 북한 정권은 집권 80여 년이 다 되는 오늘날까지 '혁명'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혁명은 남한의 것과는 많이 다른 것 같은데요. 혁명의 정의부터 먼저 살펴보고 계속하시죠.

: 정치사회학에서 혁명이란, 단순히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교체를 넘어서 이념적 변화로 인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사회 시스템에 있어서 급격하면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는 체제 전복을 의미하며, 주로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의미 이외에 기술이나 과학에서 근본적이고도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질 경우에도 사용되는 용어죠. 또한 대중이 아닌 소수 엘리트 직업적 혁명가들에 의한 쿠데타도, 지배계층의 교체를 넘어서 정치 사회 전반에 있어 체제의 급격한 변화가 뒤따른다면 혁명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소수의 볼셰비키 전위대가 쿠데타로 러시아 공화국 임시정부를 전복한 볼셰비키 혁명, 일명 10월 혁명을 들 수 있습니다. 또한 터키의 무스타파 케말 장군은 1차대전의 전쟁영웅 출신으로서, 1922년 앙카라를 청년장교들과 함께 장악하여 술탄을 폐위하고 오스만 제국을 멸망시킨 후에, 터키 공화국을 건국하였습니다.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는 자유장교단의 군사 쿠데타를 통하여 이집트 왕국을 멸망시키고 이집트 공화국을 수립하였는데, 이것을 역사는 이집트 7월 혁명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MC : 북한 주민들과 군인들은 당시 군인이었던 박정희 장군의 5.16군사정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연구하신 안 박사님께서, 과연 이 군사혁명이 어떤 것인지 좀 설명해 주시죠.

: 네 그러죠. 5.16 군사혁명은 1961년 5월 16일에 박정희 소장을 비롯한 대한민국 육군 장교들이 일으킨 혁명입니다. 이 혁명으로 제2공화국의 장면 내각은 출범 9개월 만에 무너졌고, 박정희를 수반으로 하는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등장하였습니다.

당시 국군에는 이승만 정권 때부터 군의 부정부패와 비리, 승진가도 중단에 불만을 품고 4.19 혁명 이후 정군 운동을 벌여 미국과 충돌했던 일군의 장교 세력들이 있었는데 육군 소장 박정희와 1961년 2월 강제 예편당한 김종필을 비롯한 육군사관학교 8기생을 중심으로 한 장교들은 이로 인해 1961년 5월 말 강제 예편이 예정되었고, 이에 비밀리에 쿠데타를 기획하게 된 것입니다.

혁명 세력들은 예비사단 병력과 포병단, 해병대와 육군 제1공수특전단 등을 동원하여 1961년 5월 16일 새벽 서울을 비롯한 대구시, 부산시 등의 방송국 등 주요 시설을 무력으로 점거하였습니다. 이들은 주한미군과 주한미국대사관의 공식적인 반대 성명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장도영과 통수권자 대통령 윤보선을 설득함으로써 국무총리 장면을 사퇴시키고 봉기 60여 시간 끝에 제2공화국을 무너뜨려 행정부, 국회, 대법원의 역할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전권을 <군사혁명위원회>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이튿날 아침 박정희는 군사혁명위원회를 장도영을 의장으로 하고 자신을 부의장으로 하는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편하였으며, 1962년 12월 31일까지 전국의 모든 정치인 활동을 일체 불법화하고 언론 사전 검열을 실시함은 물론 정기 간행물 1,200여 종을 모두 폐간시킨 뒤 2년 반 가량 군정을 실시했습니다.

MC : 기존 통치기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군사혁명을 시도하는 것은 목숨을 건 일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가능했죠?

: 그렇습니다. 군대가 총을 들고 정권 교체를 목적으로 혁명을 일으킨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죠. 박정희 장군 그 작은 체구 어디서 그런 불굴의 혁명의지가 솟구쳤는지 저도 신기합니다. 당시 김종필 씨의 증언을 들어보면 군사혁명을 명령한 5월 16일 새벽 박정희 장군은 총을 차고 서울로 진격하는 부대들의 동향을 보고받으며 부하들과 어느 허술한 식당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는데, 다리를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부하가 "장군님! 왜 떠십니까?" 물었더니 박정희 장군이 "내 부하들이 죽은 일이 없어야 할텐데..."하더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부하들이 다칠까봐 걱정하는 그런 위인이 있어 5.16 군사혁명은 성공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MC : 그런데, 오늘날 북한의 장령들이 박정희 장군의 5.16군사정변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데 이건 또 무슨 말인가요?

: 네, 저는 개인적으로 북한이야말로 당장 군사혁명이 일어나야 할 나라 0순위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봉건적인 3대 세습의 저 구제불능의 나라를 구원할 길은 군인들의 총성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 지난 1992년 안종호 부총참모장을 비롯한 소련 푸른제 군사대학 유학생 출신들을 중심으로 항일유격대 창건 60주년 열병식장에서 군사쿠데타 시도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들은 열병행진이 진행되는 김일성광장에서 이집트 군인들이 사다트 대통령을 저격하듯, 탱크 포신을 주석단으로 돌려 김일성과 김정일을 제거하려 했지만 사전 비밀 폭로로 전원 체포되어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MC :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북한의 장령들은 김씨 일가 앞에서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 당연합니다. 지난 2015년 노동당은 "젊은 장군과 일하기 힘들다"는 말 한마디를 했다고 국방상 현영철 대장을 총살했습니다. 2011년 김정은 등장 후 가장 많이 교체된 북한 고위 간부 중 제일 많이 바귄 사람이 바로 국방상입니다. 총참모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들이 군사혁명을 일으킬까봐 전전긍긍하는 속셈이 이렇듯 간부사업을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결국 현영철 전 국방상처럼 개죽음을 당하느니 북한군 장령들은 한번쯤 혁명의 총소리를 울려 봉건적인 3대 세습을 끝장내고 굶주림과 인권 탄압에 신음하는 2,500만 북한 인민들을 구원해야 할 것입니다. "평양의 총성이 북한을 구한다!" 이런 구호로 오늘 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MC : 네, 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순서,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안 박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안 찬 일: 네 수고 많으셨습니다.

MC: 저희는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