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북, 군수공업 집중투자로 ‘가난한 공화국’ 전락
2023.08.03
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입니다. 진행을 맡은 홍알벗입니다. 이곳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입니다.
오늘은 남한과 북한의 경제력을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사회주의를 선택한 북한은 일명 ‘우리식’ 경제 제체를 유지하느라 발전이 더디게 나타나거나 멈춰 버린 반면, 일찌감치 시장경제를 선택한 남한은 북한보다 경제력 규모 면에서 40년을 앞섰다고도 말하는데요. 과연 남북간 경제력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한국의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인 안찬일 박사와 함께 남북간 경제 발전 이야기를 나눕니다.
MC : 안찬일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네 안녕하십니까! .
MC : 한국전쟁 직후 북한의 경제력은 당시 남한에 비해 4배나 앞서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 그 정도로 차이가 많이 났었나요?
도명학: 네, 그랬습니다. 북한의 경제력이 더 나았던 이유는 딱 두가지입니다. 우선 첫 번째로 북한은 흥남비료공장과 송림제철소 등 일제시기 건설한 중공업기지들을 그대로 넘겨받다보니 경제발전에서 우위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막대한 전력을 생산하는 수풍발전소가 북한 땅에 있었다는 것 또한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석탄과 광물의 매장량이 높다는 것도 큰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북한은 ‘천리마운동’ 등 집단적인 노동집약적 동원운동으로 단시간 내에 생산력을 제고하는 저개발 국가의 경제발전 전략을 채택했는데 이게 초기에는 먹혔습니다. 당시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정치인들이 정파 싸움에 골몰하다 보니 북한에 밀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지요. 결국 한국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박정희 대통령이 등장하고 조국근대화와 새마을 운동이 벌어지면서 1974년 드디어 경제발전에서 한국이 북한을 앞지르게 됩니다.
MC ; 중국과 러시아는 시장경제를 도입함으로써 오늘 자본주의 나라들과 어께를 나란히 하지만 북한은 저 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보다 못한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안 찬 일: 네, 남한과 북한의 경제발전 수준을 집약적으로 나타내 주는 숫자로 지난해 남한과 북한의 무역액(수출+수입)을 비교한 것이 있습니다. 남한의 무역액은 북한의 무려 890배에 달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난해 전 세계를 상대로 반도체·석유제품·자동차 등을 팔며 세계 6위 수출국에 올랐지만, 북한은 여전히 비단이나 가발·인조꽃 같은 경공업이나 광물·석탄 등 1차 산업이 주요 수출품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한의 196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지난달 7월 27일은 6·25 정전(停戰) 70년이 되는 날이죠.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내며 G7(7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것과 달리 ‘고난의 행군’을 이어간 북한은 전 세계 200여 국 중 하위 10% 수준으로 전락했습니다. 거의 파멸 직전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MC: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남과 북의 무역 성과를 비교해 볼까요?
안찬일: 네, 지난달 24일 한국 정부의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대한민국과 북한의 명목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각각 4048만 원과 142만 원으로 약 28.5배 차이가 났습니다. 한국의 1인당 GNI는 정전 이후 북한에 줄곧 뒤지다 1960년대 말~1970년대 중반 역전했고, 이후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습니다. 통일전문가인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정전 직후인 1950~1960년대 소련과 중국, 동유럽 등의 원조가 이어지면서 북한 경제는 잠시 반짝했다”며 “하지만 이른바 ‘계획 없는 계획경제’로 불리는 왕조식 사회주의가 이어지면서 경제·산업의 어려움이 장기적으로 누적됐다”고 말했습니다.
구체적으로 2021년 기준 자동차 등록 대수는 한국은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2491만대인데, 북한은 25만 3000대에 그쳤습니다. 2020년 이동통신 손전화기 가입자는 7051만 명 대(對) 600만 명으로 11배를 웃돌았습니다. 북한은 네 명당 한 대꼴인데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도 1인당 1대를 웃도는 1억 2000만대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작은 숫자이죠.
MC :결국 이데올로기가 가른 판이한 성과와 패배라고 봐야 되겠죠? 북한은 왜 이리 이념에 집착했나요?
안찬일: 당연합니다. 대한민국이 선택한 자유민주주의와 북한의 공산주의라는 체제가 70년 세월의 운명을 갈랐습니다. 자본주의를 가미한 중국·베트남과 달리 폐쇄 경제를 고수해온 북한은 공산 국가 내에서도 경제적 성과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김경민 한양대 명예교수는 “중국과 베트남은 각각 세계 패권을 쥐겠다는 목표와 통일 후 국가 경제를 일으켜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목적 아래 개혁·개방에 나섰지만, 북한은 세습 체제 안정을 무엇보다 우선시 하면서 시장 경제를 등한시했다”며 “결국 자유 경쟁을 배제한 북한 체제에서 산업 발전은 불가능했다”고 지적했습니다.
MC : 재미있는 통계가 하나 있습니다. 해방이 되고도 3년 동안, 즉 1948년까지 북한이 한국에 전기를 보내주었다는데 사실인가요?
안 찬 일: 맞습니다. 평안북도 삭주에 위치한 수풍댐의 전력은 북한의 전기라기보다 한반도 전체에 전기를 공급하던 최대 수풍발전소였지요. 1948년 북한이 수풍댐에서 보내던 전기를 끊으며 한국이 전력난에 봉착하기도 했지만, 연간 발전량은 이제 한국이 5768억kWh(킬로와트시)와 북한이 255억kWh로 20배 이상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1980년만 해도 차이가 크지 않았지만, 한국 발전량이 1450% 급증하는 동안 북한은 겨우 20% 늘어나는 데 그쳤습니다. 한 전문가는 “현지 지도, 노력 동원이 이뤄지는 북한은 경제가 정치에 봉사하는 체제”라며 “2010년대 중반 경제 제재 이후 광물과 수산물 수출도 많이 줄어들며 여전히 경제가 60년대 후반~7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박정희 정부 당시의 경제개발계획을 계기로 가파른 성장 가도를 이어갔는데, 한국은 냉전 당시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 쉽게 접근한 데 이어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의 폭발적 성장을 잘 활용한데 반해 북한은 소련이 미국과 같은 역할을 못한 데다 공산권이 1980년대 말 이후 몰락하면서 경제적으로도 고립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MC : 그런데 궁금한 것은 말이죠, 남한이 미국에 승용차를 수출할 정도로 발전했을 때, 북한은 가발이나 인형을 만들어 파는 정도의 기술력만 있었단 말이죠. 그런데 그때 그랬던 북한이 근래들어 어떻게 미사일과 핵무기를 잘 만들어 내는 걸까요?
안찬일: 답변은 어렵지 않습니다. 북한은 인민들을 굶겨죽이며 핵무기를 만들고 인민들의 피와 땀으로 미사일을 뻥뻥 쏴대고 있습니다. 한때 북한은 인민들의 벌어들인 돈으로 인민경제를 발전시킬 대신 제2경제, 즉 군수공업에 집중투자하면서 가난의 공화국으로 전락했습니다. 고로 북한에 미래는 없습니다. 나라의 하부구조인 경제가 무너지면 상부구조인 정권은 저절로 쓰러집니다. 평양의 김정은 정권은 왜 이것을 간과하고 있는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오늘 대한민국은 최첨단 기술인 전투기와 장갑차를 만들어 폴란드에 수출하는 등 세계 선진국 나라들과 어께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MC : 남북한 통일이 이뤄질 경우 두 나라의 경제 차이로 인한 갈등이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습니다.안 박사님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안찬일: 네. 당연한 걱정입니다. 독일 통일 당시 서독 경제력이 세계 4위, 동독이 35위 권이었는데도 통일 이후 후유증이 작지 않았습니다. 오늘 GDP 세계 13위인 한국과 최하위권인 북한이 지금 상태로 통일하게 되면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라고 걱정들을 많이 하는데, 우리는 한국의 월등한 자본과 기술, 북한의 자원과 노동력을 잘 결합하는 제도를 깊이 연구해 지혜롭게 대비해 나가면 독일보다 훨씬 빨리 통일조국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남한의 경제발전 모델을 그대로 북한에 적용하면 됩니다.
MC :네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찬일: 네, 수고많으셨습니다.
MC: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