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총비서가 꺼내든 ‘강력한 고난의 행군’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21-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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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총비서가 꺼내든 ‘강력한 고난의 행군’ 북한은 지난 6일 수도 평양에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당 최말단' 세포비서 대회를 개최했다. 김정은 총비서는 당 세포비서 대회에서 더욱 '강력한 고난의 행군'을 선언했다.
/연합뉴스

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김정은 총비서가 꺼내든 ‘강력한 고난의 행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 진단’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북한 체제는 올해로 바야흐로 76년이란 장기집권 체제로 북한 인민들은 정말 신물이 난다고 아우성이며 그 장구한 기간 동안 가장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시기는 언제였을까. 바로 고난의 행군 기간일 것이고, 오히려 북한 인민들은 한국전쟁 3년 기간보다 고난의 행군 기간을 더욱 ‘최악의 나날’로 기억하고 있다고 안찬일 박사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안 박사는 한 세대에 두 번 다시 맞이해서는 안 될 그런 악몽이 지금 북한에 엄습하고 있는데 얼마 전 김정은 총비서는 당 세포비서 대회에서 더욱 <강력한 고난의 행군>을 선언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해서 오늘은 ‘김정은 총비서가 꺼내든 강력한 고난의 행군?’ 이런 제목으로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안찬일 박사와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안찬일 박사님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안찬일: 네. 안녕하십니까! 잘 지냈습니다.

질문 1: 먼저 고난의 행군이란 용어의 연원부터 살펴보고 이야기 시작할까요? 언제부터 이 용어가 사용된 것인지요?

안찬일: 북한에서는 식량난을 통칭하는 말로 공식·비공식적으로 ‘고난의 행군’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식량문제가 아닌 체제의 위기를 표현하는 중대한 말입니다. 북한 역사에는 정치·경제적으로 극복하기 힘든 어려움을 겪었던 세 차례의 고난의 행군이 존재합니다.
구체적으로 1. 김일성이 이른바 항일투쟁 당시인 1938년 12월부터 1939년 3월까지 일제의 토벌공세에 밀려 만주지역에서 압록강 연안 국경일대로 100여 일간 행군한 때, 2. 지난 1956년 ‘8월 종파사건’을 전후한 시기, 세 번째로 지난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기간 등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북한 세대들이 기억하는 고난의 행군은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뒤부터 시작된 굶주림의 고난의 행군이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 2: 그렇군요. 그러면 세 번의 고난의 행군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시죠.

안찬일: 네! 이들 세 차례의 고난의 행군 가운데 두 차례는 그때그때 이름 지어졌지만 한 차례는 김정일에 의해 뒤늦게 규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이 남한 내 지하조직으로 주장하고 있는 ‘한민족민주전선’(반제민전)의 방송은 수년 전 8월 종파 사건에 대해 김정일이 사건 발생 후 시일이 상당히 흘러 ‘제2의 고난의 행군’으로 규정지었다고 밝혔습니다. 8월 종파사건은 과거 북한 지도부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던 연안파가 소련파와 제휴해 김일성 주류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사건을 말합니다.
김일성 반세기 집권사에서 최대 위기로 기록되는 이 사건은 1958년 3월 제1차 당대표자회를 계기로 일단락되는데 사건수습에 1년 7개월이 소요됐다는 것은 그 파장의 크기를 가늠케 해주고 있습니다. 한편, 오늘날 북한의 신문·방송 등 매체를 통해 부단히 거론되면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고난의 행군은 90년대의 ‘간난신고’(艱難辛苦, 몹시 고되고 어렵고 맵고 쓰다)를 말합니다.  

질문 3: 바로 세 번째가 김일성 김정일 정권에게는 최악의 악몽일 텐데, 집권세력이 겪은 고통이야 별로 없었겠지만 인민들이 겪은 고통은 아마도 단군 이래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데요.

안찬일: 당연히 그렇습니다. 바로 세 번째 고난의 행군은 말 그대로 단군이래 최악의 재난이었습니다. 그것도 지배세력의 통치실패로 맞이한 인재였습니다. 첫 번째 고난의 행군이 100여 일, 두 번째 고난의 행군이 1년 7개월 만에 종료됐다면 세 번째 고난의 행군은 무려 6년간이나 지속됐으니 그 가혹함을 짐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북한은 지난 2000년 10월 노동당 창건 55주년을 맞으면서 고난의 행군의 종언을 공식 선언한 바 있지만, 아직 북한 인민들의 고난의 행군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질문 4: 그런데 지난 4월 열린 노동당 세포비서대회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다시 고난의 행군, 그것도 더욱 강력한 고난의 행군이란 말을 선포했는데,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안찬일: 1995년의 고난의 행군은 김일성 주석의 사망이란 충격이 불러온 재앙이고, 북한의 사회주의가 관성을 갑자기 잃은 결과이지만 오늘 또다시 고난의 행군을 시작해야 한다면 이는 결국 북한 사회주의의 종식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누가 이 기막힌 현실에 동의할 수 있겠습니까?
왜 이런 재앙이 북한을 덮치고 있습니까? 결국 통치자들이 잘못된 정치가 불러온 재앙이고 그들이 책임져야 하는 숙명입니다. 그런데 김정은 총비서가 당 세포비서들을 불러 놓고 마치 그 책임이 자신이 아닌 다른 쪽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정녕 진리대로라면 그 자리에서 김정은 총비서는 “내가 통치를 잘못해 또다시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하니 여러분 함께 고통을 이겨 냅시다”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북한이 오늘 이와 같은 연속적인 고난의 행군은 결국 김 씨 정치권력의 세습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고난의 행군도 세습되고 있다 이 말입니다.

질문 5: 그렇군요. 우리의 관심은 앞으로 진행될 4차 고난의 행군의 양상입니다. 과연 어떤 재앙이 다가오고 있고, 또 인민들은 어떤 무거운 짐을 지고 이 험난한 세상을 이겨내야 할까요?

안찬일: 고난의 행군이란 말만 들어도 앨러지 반응이 일어나는 북한 주민들은 이번 김정은 총비서의 ‘강력한 고난의 행군’ 선언에 치를 떨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아마도 이번에 시작되는 강력한 고난의 행군은 결코 인민들의 목숨만 앗아갈 것은 아니란 점입니다. 1995년 고난의 행군 시 인민들은 아무런 대비 없이 고난의 행군에 도처에서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수만 명의 탈북민들이 자유를 찾아 압록강, 두만강 국경을 넘어 탈북의 길을 떠났습니다.
오죽했으면 그 당시 김정일 위원장도 성난 인민들이 무서워 온 가족이 탈북할 브라질 위조여권을 만든 것이 아닙니까? 현재 집권자인 김정은 총비서도 그때 위조여권을 만들었고, 이와 같은 사실은 미국의 CNN 등 유력 언론이 증거물로 보도한 진실입니다. 현재 북한 인민들은 장마당 경제로 어느 정도 생존에 대한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고난의 행군을 빌미로 인민들의 생존권을 침해한다면 그들은 “자유냐, 죽음이냐?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이런 구호를 들고 일어설 것입니다.
김정은 정권은 맥없이 앉아 굶어 죽던 1990년대의 북한 인민들이 아니란 걸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번의 강력한 고난의 행군은 북한에서 사회주의 종말을 가져오고 3대 세습의 봉건정치를 끝내는 그런 역사의 분수령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안찬일: 네 감사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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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안찬일 박사와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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