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성들의 고난의 행군은 끝이 안 보인다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2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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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여성들의 고난의 행군은 끝이 안 보인다 북한 여성들이 묘향산 인근 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Photo: RFA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 진단’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오늘날 북한 사회는 고난의 행군이 이어 지면서 주민들의 고통과 재난은 극에 달하고 있고, 특히 얼마 전 소집된 당 세포비서 대회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다시 더욱 ‘강력한 고난의 행군’을 언급하면서 지금 북한 주민들은 절망과 공포에 빠져들고 있다고 안찬일 박사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안 박사는 과연 고난의 행군은 끝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특히 북한 여성들은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남녀평등이란 구호 아래 줄곧 고난의 길을 걸어왔고, 또 앞으로도 북한 체제가 존재하는 한 계속 고난의 행군을 걸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여 오늘은 ‘북한 여성들의 고난의 행군은 끝이 안 보인다’ 이런 제목으로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안찬일 박사와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안찬일 박사님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안찬일: 네. 안녕하십니까! 잘 지냈습니다.

질문 1: 북한의 노래에 보면 “여성은 꽃이라네” 이런 제목이 있던데, 상당히 호기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꽃은 아름다움과 함께 소중함, 연약함도 아울러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데 과연 북한의 여성들은 전부 꽃처럼 대우받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찬일: 북한에 여성들이 인구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진짜 꽃은 몇 송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김정은 총비서의 부인 이설주와 노동당 부부장 김여정과 삼지연관현악단 단원 등 소수의 엘리트 여성들은 분명 꽃 중의 꽃이지만 절대다수의 북한 여성들은 제가 보기엔 꽃은커녕 거센 비바람 앞의 사나운 가시나무처럼, 혹은 무슨 농기구나 기계처럼 인생 행복 한 번 제대로 누려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불쌍한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평양시에 태어난 노동당 고급 간부 딸들도 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김정은 체제 아래서 현대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누리는 자유와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단지 지방 여성들보다 잘 먹고 잘 입는 그 하나의 자존심으로 오늘을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질문 2: 그렇군요. 북한 사회 전체의 사회구조를 볼 때 여성들이 여성스러움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것은 당연한 것 같은데, 보다 구체적으로 북한 여성들이 누리고 있는 불평등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어떻습니까?

안찬일: 네 우선 정치적 견지에서 봐야 하겠지만, 사회경제적 구조를 살펴보면 왜 북한 여성들이 고난의 행군이 끝이 없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북한 경제는 시작은 좋았지만 중간에서부터 뜯어고쳐야 할 이른바 ‘계획경제’였습니다. 소련은 물론 사회주의 국가들은 그래서 1990년대 초반 그럴듯한 계획경제를 모두 집어던졌습니다. 중국은 훨씬 그전인 1978년 개혁 개방 정책을 선언하면서 사실상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버리고 시장경제를 선택하였습니다.
북한 당국은 여성들은 ‘혁명의 한 쪽 수레바퀴를 밀고 나간다’고 주장하면서 연약한 여성들에게 남성들과 똑같은 노역을 강요하였습니다. 그런즉 여성들은 모든 가사일을 도맡으면서 동시에 일을 해 나가야 하니 이보다 더한 고통은 없는 것입니다.

질문 3: 일찍이 모계사회가 끝나고 부계사회가 개막된 후부터 여성들은 주로 가정에서 자녀들을 돌보고 가사일을 맡은 것 이상에서 해방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북한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여성들이 두 가지 일을 모두 맡아야 하니 북한 체제 등장 순간부터 북한 여성들은 고난의 행군을 시작한 셈이라 볼 수 있겠군요.

안찬일: 그렇습니다. 저는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에 태어나 26년 이상을 북한에서 살아오면서 어머니의 삶을 통해 북한 여성들이 얼마나 힘겹게 사는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가사일과 직장 일이 너무 힘들어 한 달에 한 번씩 쓰러지곤 했는데 이와 같은 일은 다른 집의 어머니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식구들이 깊이 잠든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그다음 동생을 둘쳐 업고 탁아소에 아기를 맡기고 직장에 가는 순간 이미 어머니의 몸은 녹초가 되어 버립니다. 하루 일과는 노동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집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텃밭을 가꾸고 또 가사노동을 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직장 일이 끝나도 집에 오지 못합니다. 직장의 생활총화 등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녁을 차려 먹은 어머니는 당시 여맹회의 내지 당 회의나 학습회에 나가야 합니다. 한 달에 얼마씩 영화관람도 강제로 나가야 했습니다. 이런 고역을 북한에서 이른바 가정혁명화라고 부릅니다.

질문 4: 가정혁명화라는 용어가 섬찟합니다. 가정은 존재 그 자체로 행복의 요람이 되어야지 혁명화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안찬일: 가정혁명화는 사실 여성들을 달달 볶는 정치사업입니다. 집에 들어가서도 다른 생각 말고 당에 충실하라는 건데 이건 정말 너무 심한 것입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다행스럽게 장마당이 생겨나면서 여성들이 이런 조직 생활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장마당에서 제대로 자리 잡은 상인의 경우에 해당될 뿐 아직도 많은 절대다수 북한 여성들이 가정혁명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장마당 경제는 여성들을 부엌에서 해방시키는 순기능도 있지만, 여성들이 매춘이나 마약에 빠져드는 역기능이 생겨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것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때 북한에서 여성들이 매춘이나 마약, 사기 등은 거의 근절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고 사생결단의 생존 투쟁이 시작되자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매춘이나 마약 판매 등에 뛰어드는 여성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여성들의 이런 행위를 단지 그 여성들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평양 정권의 강제한 잘못된 정치가 낳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5: 그렇군요. 북한 사회에서 매춘과 마약이 생겨난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어떤 탈북민은 북한 가정에 상비약이 마약으로 준비되어 있다는 말을 하였는데 이건 보통 끔찍한 일이 아닙니다. 실제 북한 사회에서 마약 소비 수준은 어떻다고 봐야 합니까?

안찬일: 북한에 마약이 생겨난 이후도 역시 고난의 행군 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먹고 살기 어려워진 화학공업 분야 근로자 출신 제조자들이 직장을 잃어버리자 마약을 만들어 팔아 쌀을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여성들도 그 판매에 나서면서 중독증에 걸리고 빗을 갚기 위해 매춘에도 빠져든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 사회의 고난의 행군을 보며 인간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면 무슨 짓이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살펴보면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는 하루빨리 북한 사회가 변화되어 모든 여성들이 아름다운 꽃처럼 대접받으며 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안찬일: 네 감사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MUSIC

지금까지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안찬일 박사와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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