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7은 ‘전승일’이 아니라 ‘휴전일’이다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21-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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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은 ‘전승일’이 아니라 ‘휴전일’이다 북한 주민들과 북한군 장병들이 6·25 전쟁 정전협정 체결 기념일('전승절') 68주년이었던 지난 27일 뜻깊게 경축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 진단’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북한은 김정은 시대를 맞으며 유난히 7월 27일을 ‘전승일’이라고 요란하게 선전하고 있는데, 과거 김정일 시대 2.16 즉 김정일 출생일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후 2.16은 돌연 7.27로 돌변했다고 안찬일 박사는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안 박사는 노동당 최고위 간부들이 타는 김정은 위원장 선물 승용차 넘버도 7.27로 시작하고 최고급 담배 역시 7.27이 명성을 날리고 있는데 숫자의 의미보다 더 중요한 것은 7.27의 내용입니다. 분명한 진실은 7.27은 휴전일이지 전승일이 아니란 것,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며 해서 오늘 이 시간에는 “7.27은 전승일이 아니라 휴전일이다“ 이런 제목으로 안찬일 박사와 이야기 나눕니다.

안찬일 박사님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안찬일: 네. 안녕하십니까! 잘 지냈습니다.

질문 1: 어느덧 한국전쟁이 휴전된 지 68주년을 맞았습니다. 북한의 불법 남침으로 시작된 6.25 한국전쟁은 장장 3년간이나 이어지며 한반도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고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목숨을 앗아 갔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이 비참한 전쟁을 미국과 한국이 일으켰다고 선전하고 있는데 그 진실부터 알아보지요.

안찬일: 그렇습니다. 1950년 6월 25일에 도발된 북한의 남침전쟁은 스탈린과 모택동의 사주 하에 북한의 김일성이 도발한 침략전쟁입니다. 이것은 1990년대 초반 한국과 러시아가 국교를 맺으면서 이전 소련이 보관하고 있던 남침관련 중요 문건들을 한국이 넘겨받으면서 세상에 공개된 명백한 진실입니다. 북한은 이승만 정권이 북침을 개시하자 즉각 반공격으로 넘어가 서울을 3일 만에 해방하였다고 자화자찬하지만 인류역사에 전쟁을 먼저 도발한 쪽이 3일 만에 수도를 빼앗긴 사례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설마 하던 이승만 정권은 북한의 불법 남침에 속수무책이었고 북한은 서울에서 고위 인사들을 전부 평양으로 납북시키는 등 치밀한 적화공작을 실행하였습니다. 북한군이 서울에 3일간 지체한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겨우 소련군 대위 출신인 김일성이 그만큼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미 역사에 흘러가는 일이지만 만약에 북한의 동족상잔의 남침전쟁 도발이 없었더라면 우리 민족은 벌써 평화통일을 이루고 분단에서 벗어났을지도 모릅니다.

질문 2: 북한이 서울에 3일 동안이나 머문 것을 두고 여러 학설이 많은데 안 박사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안찬일: 북한의 남침전쟁에는 그 전쟁을 부추긴 당시 북한의 2인자 박헌영에게도 책임은 있다고 봅니다. 당시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 김일성 아래서 좌불안석하던 박헌영은 남쪽으로 다시 내려가면 자신의 옛 영화(조선공산당 총비서)가 회복될 것으로 착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김일성에게 “우리 군대가 서울만 점령하면 20만 명의 남로당원들이 들고 일어나 지원하고, 그때 남조선 국회의원들을 국회로 모아 놓고 통일을 선언하면 바로 통일국가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이 말을 곧이들은 김일성이 얼마나 순진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남쪽에는 이미 UN의 승인을 받은 대한민국이 수립되어 정상국가로 치닫고 있는데 어디 남로당원들이 20만 명이나 된단 말입니까? 특히 1949년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고 중국 대륙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김일성의 남침야욕에 잔뜩 기름을 부은 것 또한 전쟁도발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북한군은 서울에 3일간 머무르며 헛꿈을 꾸는 동안 한국군은 맥아더 원수의 격려하에 전열을 정비하고 방어전에 돌입하여 북한의 남침을 초기부터 분쇄할 수 있었습니다.

질문 3. 북한군의 남침은 이미 대전을 지나면서부터 여러 장애에 부딪치게 되는데 그것을 북한군의 무능력으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의 문제인지 그것도 좀 분석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떻게 보시는 지요?

안찬일: 이미 중국의 마오쩌둥은 북한군이 금강 계선을 넘어서자 “전선 종심이 너무 깊어지니 조심하라”는 말을 여러 차례 김일성 최고사령관에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은 겨우 소련군에서 대대전술을 배운 것이 군사지식의 전부이다 보니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다 낙동강 계선에서 전진이 막히고 곧 이어 맥아더 원수의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면서 졸지에 북한군은 패잔병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남침전쟁 개시 3개월 뒤의 1950년 9월 이후 패주하는 북한군의 모습은 전쟁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도망의 행군>이었다고 당시 참전자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 모든 책임은 박헌영도, 전선사령관 김책도 아닌 김일성 최고사령관의 져야 할 역사적 책무였습니다.

질문 4: 아마도 중국인민해방군의 참전이 없었다면 방어능력을 모두 상실한 북한군은 무조건 항복했으리라 보는데, 중국인민해방군의 참전으로 김일성의 지위는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안찬일: 7.27일이 절대로 ‘전승일’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만약에 북한에 중국군이 진주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북한은 없습니다. 중국인민해방군이 진주하면서 김일성 최고사령관의 존재는 유명무실해졌습니다. 조-중련합사령부가 구성되고 중국인민해방군의 명장 팽덕회가 사령관이 되었고 북한 측에서 김 웅과 박일우 내무상이 부사령관으로 임명되면서 김일성은 전쟁에서 역할이 사라졌습니다. 김책을 전선사령관으로 임명하였고 김일성은 후방사업이나 챙기는 일밖에 없어졌습니다. 그런 그를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으로, 전쟁승리의 지도자로 추앙하고 있는 오늘 북한의 모습은 세상의 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거기에 더해 김일성은 1953년 7월 27일 차수를 거치지 않고 바로 원수 계급장을 다는 촌극까지 연출하였습니다. 전쟁을 도발하고, 또 전쟁에서 패배한 지도자가 원수 칭호를 받는 일은 지구상에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질문 5: 오늘 북한은 7월 27일을 전승일로 기념하고 있는데, 신세대들이 북한 당국의 역사 날조를 100% 믿는다고 보아야 할까요.

안찬일: 그렇지 않습니다. 약 10여 년 전까지 북한의 신세대들은 북한 당국의 ‘북침교육’을 거의 믿었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북한이 먼저 전쟁을 도발하였고 그래서 미군이 다시 남조선에 들어왔으며 오늘 북한은 한국을 공격할 힘이 없다는 등 북한의 신세대들은 진실을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고로 김정은 정권은 미국에게까지 대화도, 전쟁도 준비되어 있다는 허풍을 떨지 말고 과거 동족상잔의 비극에 대해 온 민족 앞에 사죄하고 7월 27일을 휴전일로 제대로 기념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핵무기 개발 등 제2의 남침전쟁을 꿈꾸지 말고 평화적인 대화로 역사 앞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이 두 번 다시 제2의 한국전쟁을 도발한다면 그 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안찬일: 네 감사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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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안찬일 박사와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기자 이현기,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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