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이 걸어온 76년의 역사는 반인민적인 노정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21-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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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당이 걸어온 76년의 역사는 반인민적인 노정 당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총을 든 사열대 앞을 지나며 오른손을 들어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 진단’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10월 10일은 북한 노동당이 창당된 지 76년이 되는 날입니다. 광복과 함께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의 소비에트화, 그 일환으로 창당된 노동당의 역사는 일관된 반인민적 노정이었다고 안찬일 박사가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안 박사는 다른 건 다 제쳐두고라도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노동당은 김일성 왕조 3대 세습의 길로 치달아 왔고 그래서 오늘 노동당은 노동계급의 당은커녕 근로 인민 대중 어느 누구도 대변하지 못하는 김씨 왕조 ‘귀족 정당’으로 전락하였다는 것입니다. 원래 정당은 가장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정치조직입니다. 특히 노동당이라면 당연히 노동자, 농민 등 근로인민대중의 이익을 첫 자리에 놓고 정치 활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노동당은 김정은 김여정 두 인물에 농락당하는 가장 반인민적인 정치조직으로 타락했다며. 해서 오늘 이 시간에는 “노동당이 걸어온 76년의 역사는 반인민적인 노정” 이런 제목으로 안찬일 박사와 이야기 나눕니다.

안찬일 박사님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안찬일: 네. 안녕하십니까! 잘 지냈습니다.

질문 1: 먼저 북한 노동당은 어떻게 북한 지역에서 태어났는지 그 뿌리의 진실부터 살펴보고 이야기 나누시죠. 과연 오늘의 북한 노동당 어떻게 시작이 됩니까?

안찬일: 네, 해방 직후 한반도의 정치정세는 대단히 복잡했습니다. 특히 북한의 김일성은 8.15 광복이 되었지만, 아직 귀국하지 못하고 소련 블라디보스톡 근교 브야츠크 밀영에 그대로 주둔하면서 스탈린의 귀국 명령만 기다리고 있는 한심한 처지였습니다. 스탈린은 해방 1개월이 지난 1945년 9월 19일 드디어 김일성 일행의 귀국을 명령하였고 김일성은 오진우와 박성철, 백학림 등 부하 50여 명과 함께 소련 군함 <브가쵸브호>를 타고 몰래 원산으로 귀국하였습니다.
곧 열차로 평양에 올라온 김일성에게 차례진 첫 직책은 평양시 경무 사령부 부책임자였습니다. 얼마 후 조만식 선생이 반탁으로 돌아서면서 소련 군정사령부는 김일성을 북한의 정치 지도자로 부각시키는 작업을 시작하였고 이어 북한에도 공산당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서울에 박헌영을 영도자로 하는 조선공산당이 조직되어 있어 북한 지역에서의 공산당 조직 창설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북한 지역에서 당을 창건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오늘 북한 노동당이 말하는 김일성에 의한 조선공산당의 독자적 창건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질문 2: 원래 공산주의 국가에서 당은 ‘1국 1당 주의’ 즉 한 나라 안에는 하나의 당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죠. 따라서 서울에 이미 당 중앙이 있는 조선공산당이 평양에 등장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 같은데요. 여기에 대한 추가 설명도 해 주시지요.

안찬일: 소련 군정사령부 정치 사령관 로마넨코 소장과 김일성은 평양에 공산당을 만들고 싶어 안달이었지만 아닌 게 아니라 1국 1당 주의 원칙이 이들의 야망을 가로막았습니다. 하여 로마넨코 소장과 김일성은 개성에서 박헌영과 몇 차례 만나 애걸복걸하였지만, 그 당시 분단국가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에서 박헌영 공산당 총비서가 “좋소, 평양에 공산당을 만드시오”라고 말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몇 개월 동안의 줄다리기 끝에 하나의 타협점을 찾았습니다. 북한 지역에 당은 만들 수 없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당의 지방조직은 만들 수 있다는 타협점을 찾아낸 것입니다.
즉 서울에는 공산당 중앙이 있고, 평양에 북한 지역을 관리하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만들고 김일성이 책임자가 되며 김일성은 대부분 서울의 중앙당에 내려와 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김일성과 로마넨코 정치 사령관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박헌영 총비서의 지시를 받아들여 1945년 10월 10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창설하게 됩니다.

질문 3: 그렇다면 오늘 북한 노동당이 말하는 당 창건 과정은 많이 조작되고 날조된 것 같은데 노동당 창건 초기 모습도 좀 설명해 주시죠.

안찬일: 그렇습니다. 북한은 김일성이 노동당을 만든 지도자로 칭송하고 있지만, 이것은 역사의 진실이 아닙니다.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창설의 총감독은 소련군 정치 사령관 로마넨코 소장이었고 주인공은 김용범 초대 책임 비서, 김일성과 최용건, 김책 등은 조연급이었습니다. 김용범은 북조선분국의 초대 책임 비서로 선출되었는데 그는 박정애 여사의 남편으로 소련 노동자 공산 대학을 졸업하고 평양에 파견돼 지하공작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해방과 함께 출옥한 유명한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은 그 뒤 공산당 북조선조직위원회로 개명된 뒤 다시 1946년 8월 김두봉의 조선 신민당과 합당하면서 북조선로동당으로 세상에 거듭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때부터 북로당과 남로당이란 정당이 세상에 출현한 것입니다.

질문 4: 문제는 태생 과정 못지않게 과연 그동안 노동당은 노동자와 농민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 왔느냐 하는 것인데, 안 박사님은 언제부터 노동당이 본래의 강령에서 이탈하였다고 보시는지요?

안찬일: 저는 개인적으로 북한 노동당의 일탈은 1966년 제2차 당 대표자회의를 계기로 위원장제를 총비서제로 바꾸면서 김일성의 개인숭배, 즉 유일사상체계를 내온 순간이 북한 노동당의 타락이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원래 정당이란 것이 각계각층 근로인민대중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치조직으로 토론과 갈등이 불가피한데 김일성의 교시와 사상을 절대화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래서 학자들은 그때부터 북한의 정치체제를 종교적인 ‘신정체제’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북한 노동당은 정당이 아니라 김일성 왕조 지배의 사상이론적 기지가 되어버렸습니다. 바로 이 반인민적 순간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김정일이란 사실이 충격적입니다. 바로 그때 형식적이나마 노동당 안에서 집단지도체제를 형성하고 있던 일명 갑산파의 박금철 이효순 등이 숙청되면서 노동당은 김일성 일파의 정치무대로 전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질문 5: 객관적으로 노동당은 북한의 인민 경제를 파멸로 몰아간 주범으로 비판받고 있는데 이 점도 설명해 주시지요.

안찬일: 옳습니다. 북한 경제 파탄의 주인공, 다름 아닌 노동당입니다. 노동당은 정당으로 원래 정책을 만들고 토론하는 곳이지 지배를 하는 조직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북한 노동당은 국가 위에 올라서 북한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뭐 너무 크게 보지 말고 경제적 측면에서 북한 경제 총사령부는 내각입니다. 또 지방에 내려와서도 각 도(道 ) 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도를 통치해야 하는데 도당 책임 비서가 도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나라는 북한뿐입니다. 그러니 경제가 거덜 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 아니겠습니까? 이제 노동당은 날조와 반역, 북한 경제파탄의 책임을 지고 정치무대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북한이 사는 길은 노동당이 정치를 포기하고 새로운 정당에게 북한 구제를 일임해야 할 것입니다. 실패한 정당이 권력을 잡고 있는 나라는 국가 전체가 벼랑 끝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장마당 시대에 상인계층이나 차라리 군부에게 과도정권을 넘기면 어떨지 김정은 총비서에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안찬일: 네 감사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MUSIC

지금까지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안찬일 박사와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기자 이현기;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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