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브라보 마이 라이프] MZ세대와 장마당세대가 뭉쳤다 (2)

남한의 MZ 세대와 북한의 장마당 세대가 모여 북한 인권의 새로운 의제를 찾아보는 ‘북한인권 아젠다 발굴단’ 2기 모임.
남한의 MZ 세대와 북한의 장마당 세대가 모여 북한 인권의 새로운 의제를 찾아보는 ‘북한인권 아젠다 발굴단’ 2기 모임. (/RFA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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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태어난 시기가 비슷한 사람들은 사회 환경과 경험을 공유하고 그로 인해 다른 세대와 구분되는 특징을 갖는데요. 남한에서는 그 세대 특징에 따라 이름을 붙입니다. 요즘 남한의 젊은 세대는 MZ 이고요. 북한의 젊은 세대는 ‘장마당 세대’라고 명명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요즘 남한에선 북한의 20-30대를 장마당 세대라 부르는데요. 현실적이고, 경험 중심적이며 새로운 문화에 열려있다는 점에서 MZ와 장마당 세대, 두 세대의 접점이 있습니다.

남한의 MZ 세대와 북한의 장마당 세대가 모여 북한 인권의 새로운 의제를 찾아보는 ‘북한인권 아젠다 발굴단’. 지난해 활동에 이어 올해 결정된 2기의 첫 만남 자리가 지난 5월 5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마련됐는데요. <여기는 서울>에서 다녀왔습니다. 그 현장, 지난 시간에 이어 전해드립니다.

(현장음)내일, 조를 편성을 할 거예요. 조를 편성하기 위해서 여러분께 나눠드린 게 있어요. 자료집 속에 끼어져 있는 거 있잖아요. 조 편성을 위한 관심 분야 조사. 여기에서 3개를 고르면 되는 거거든요. 이걸 취합해서 관심 분야가 비슷한 친구들끼리 그리고 윗동네 아랫동네, 외국에서 오신 분들까지 최대한 맞춰서 조가 편성될 수 있게 하겠습니다.

2기 ‘북한인권 아젠다 발굴단’은 모두 32명입니다. 남북한 청년 13명씩 26명에 외국인 청년 6명이 합류했는데요. 3인 1조로 총 10개 조로 나눠 1년 동안 활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각 조에는 청년들에게 조언을 줄 1명의 멘토가 배정되는데요. 북한 인권 활동 경험이 있는 멘토단은 모두 10명으로 이중 8명이 탈북민입니다.

3명의 멘토는 이날 첫 만남부터 함께 했는데요. 굿파머스연구소 조현 소장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북한 농촌지원 사업에 대해 연구하며 인권 활동에도 참여해 온 조현 소장.

(조현)북한의 평안남도에서 살다가 2011년 대한민국에 입국했거든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북한 인권 실태를 세상에 알리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서 정말 노력을 많이 하시는 분들을 알게 되면서 그분들과 이야기도 많이 했고 또 국제사회에 알리는 그런 활동도 같이했습니다. 활동을 하면서 MZ세대라고 하는 젊은 청년들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 상황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 인권 개선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하고 싶어 하고 또 그걸 위해서 공부도 하고 활동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다른 데 못 가도 여기 와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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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MZ 세대와 북한의 장마당 세대가 모여 북한 인권의 새로운 의제를 찾아보는 ‘북한인권 아젠다 발굴단’ 2기 모임. /RFA Photo

처음엔 북한 인권에 대해 관심 갖는 젊은 청년들이 기특해서 북한인권 아젠다 발굴단 1기 멘토로 참여했는데, 막상 청년들과 함께 해보니 상상도 못 했던 분야에서 인권을 말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배우는 점도 많았답니다.

(조현)작년에 1기 때, 제가 7조를 담당했는데 7조에서 생각했던 것은 패션이었어요. 그러니까 북한 주민들이 입을 권리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실제로 북한에서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입지 못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취향에 따라서 몸에 딱 붙는 옷도 입을 수 있고 여러 가지 그림과 글들이 쓰여 있는 옷을 좋아할 수 있는데 이걸 노동당에서 못하게 하니까 이것은 명백한 인권 유린이거든요. 인권 문제를 패션이나 유행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접근한다는 게 굉장히 신선했어요. 지금까지 인권운동은 어둡고 아프고 슬픈 이야기만 했거든요. 그런데 조금 가볍고 북한 주민들이나 간부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해서 점차 어렵고 힘들고 무거운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아젠다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신선하고 좋게 봤습니다.

북한 인권에 대해 새로운 관점이 생겼다는 청년도 있습니다. 양강도를 떠나 한국에 온 지 6년 차 됐다는 최예린 씨인데요. 복수 전공으로 북한학 공부를 하고 있답니다. 한국에 와서 우연히 참여하게 된 토크쇼를 통해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는데요. 예린 씨의 이야기, 직접 들어보시죠.

(최예린)사실 인권이 뭔지 몰랐거든요. 인권이라는 두 글자를 들어볼 일도 없었고요. 그러다가 한국에 와서 제가 인권단체 토크쇼에 초대 손님으로 참여했거든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는데 진행자가 북한의 자유와 인권, 이런 것에 대해서 물어보면서 인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하더라고요. '인권이라면 추상적으로 인간의 권리 같은 거죠?' 대답하니까 '혹시 인권 침해 받아본 적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하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없어요!'라고 당당하게 얘기했어요. 왜냐면 인권 침해가 뭔지 몰랐거든요. 어디까지가 인권의 침해이고 어디까지가 내가 누려야 할 권리인지를 몰랐으니까요. 저는 인권 침해를 받은 게 없고 제가 지켜야 했던 규정, 규약, 법제 같은 것은 당연히 제가 국민으로서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청바지를 입으면 안 되는 건 내가 조선민주인민공화국 국민으로서 (입으면) 안 되다는 규약을 지켰을 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냥 운명처럼 숙명처럼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한국에 와서 그게 꼭 지켜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입을 수도 있지, 탈색할 수 있지, 염색할 수도 있지.. 이런 것에 대해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았고 그 일이 인권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예린 씨는 ‘인권’이라는 두 글자의 의미를 이해하고 무엇이 인권인지 알아가는 과정이 충격의 연속이었다고 하는데요. 이것이 예린 씨가 북한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게 된 동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린 씨는 막상 첫 모임에 참석해 보니 걱정이 생겼습니다. 1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을 끝까지 잘 해낼 수 있을지, 괜찮은 성과물을 낼 수 있을지… 스스로에 대한 걱정이라고 하는데요. 그래도 절대 중도 포기는 하지 않을 거랍니다.

(최예린)대학생이다 보니까 주중에는 학교 공부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데 어렵지 않을까라는 마음도 있긴 한데요. 교육을 통해서 북한 인권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그런 교육 외에도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배울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과정 또한 중요할 것 같아요.

함경도 출신의 성현 씨는 1기 북한인권 아젠다 발굴단으로 참여했습니다. 지난 활동을 돌아보고 2기에는 어떤 친구들이 참여하는지 궁금해서 주말을 반납하고 개인 승용차를 이용해 합숙 캠프장까지 왔다는데요. 성현 씨에게 인권 문제는 너무도 절박한 주제였기에 1기에 지원하고 활동했다고 하네요.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성현)지인의 소개로 (아젠다 발군단 모집공고를) 봤는데 꽤 흥미로운 주제였어요. 사실 흥미롭기보다 저에게는 많이 절박했던 주제였던 것 같아요. 제가 북한에 있을 때 인권 침해도 많이 당했고 또 주변에서 많이 봤기 때문에 이런 활동을 통해서 인권이 대체 무엇이고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바꿔나가고 지켜나가야 할 것은 뭘까… 이런 부분에 궁금함이 있어서 지원하고 활동했어요. 활동하면서 배운 것도 많았어요. 사실 인권 하면 한자로 얼핏 풀이하기에는 사람의 권리인데요. 그런데 북한 사람들 대부분이 그 권리가 어디까지인지 몰라요. 저는 이번 활동을 통해 세계 인권 선언이 있고 그에 준하는 여러 가지 법들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제가 찾은 결론은 자기 인권은 남을 해치지 않는 한계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라는 겁니다. 북한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지금 와서 보면 '아~ 그게 인권 침해였구나'… 알게 되고요.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저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동이 되겠구나… 이런 것도 상식적으로 알게 되는 거죠.

-Closing Music –

성현 씨는 북한 사람 누구나 10년 간의 군 복무 기간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여기는데 그 또한 인권유린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라를 위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부당하다는 걸 느꼈답니다.

예린 씨는 영어가 쓰여있는 옷을 입지 못하고 파마나 염색도 개인의 의지대로 못 하는 것이 인권 침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수많은 성현 씨와 예린 씨가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타고난 권리는 소중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는데요. 이 청년들의 목소리가 꼭 북녘 땅에도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