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바다 (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1.09.07
그녀의 바다 (2) 사진은 2015년 12월 탈북청소년들이 남북하나재단 주최로 서울 종로구 인사동 KCDF갤러리(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작품을 전시한 모습.
연합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화가는 그림으로 이야기를 하는데요. 무의식중에 바라던 것이나 원하는 것, 그리고 꿈꾸는 것들이 작품 속에 투영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땐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야 작가의 의도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는 거죠.

 

또 화가의 작품 속엔 상상력을 동원한 내용도 있지만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도 담고 있습니다. 탈북화가들은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를 무대로 북한에서의 삶이나 인권 그리고 정체성을 화폭에 담아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요.

 

<여기는 서울>, 지난 시간에 이어 서울의 작은 갤러리에서 열린 탈북 청년 작가들의 전시회 현장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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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트1: (현장음- 안 작가 설명) 저의 작품이 구상화가 아니에요. 반 추상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설명보다는 관객이 그 작품을 봤을 때 느끼는 감정과

 

서울 종로에 위치한 갤러리 비에서는 2018년부터 지금까지 매해 한 번씩 청년작가 초대 기획전을 열고 있습니다. 올해 선정된 청년작가는 모두 탈북민입니다.

 

인서트2: (심혜진) 안녕하세요. 저는 서촌에 자리 잡고 있는 갤러리 비의 관장인 심혜진이라고 합니다. 갤러리 대표님께서 화백님이시지만 어렵게 작품 활동을 젊었을 때 하셨어요. 그때 생각하시면서 이런 소소한 프로젝트를 위해 진행을 하면서 좀 그렇게 도움을 주면 좋겠다, 하나의 그냥 갤러리 비의 프로젝트 이렇게 생각하시면 좋으실 것 같아요. 8월에 안충국 작가하고 안수민 작가 전시를 진행하게 되었어요. 탈북이라는 이슈보다는 전업으로 자기가 이 작업을 계속해나간다는 그 자체가 너무 좋았는데 수민 작가하고 충국 작가의 그림이 희망적인 그림이라서 더 좋았습니다.

 

지난 8월 한 달 동안 진행된 청년작가 초대 기획전에는 안충국 작가의 작품이 먼저 선보였고 2주 후 안수민 작가의 작품이 전시됐는데요. 두 탈북 청년 작가의 작품을 심혜진 관장은 이렇게 말하네요.

 

인서트3: (심혜진) 안충국 작가 작품은 일반적인 물감을 사용해서 이렇게 터치를 한다거나 그런 작업이 아니었어요. 건축 현장의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서 굉장히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한 작품이었거든요. 제목이낙서, 즐거움의 기록으로 소소한 재미를.. 그러니까 건축 재료를 사용해서 어떻게 보면 무겁고 좀 어두울 수 있는 분위기를 재미있는 낙서, 북에서 어렸을 때 했던 그런 낙서를 통해서 미소 짓게 만드는 작품이 재미있었고 특이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수민 작가는 성향이 다른 작품이었어요. 색을 굉장히 고심해서 쓴 흔적이 보였어요. 여러 번 칠하며 고심하면서 마음속의 색깔을 표현하는 작업이 너무 좋았고 기독교적인 그 세계관을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을 그린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색깔과 이미지로 표현한 점이 좋았습니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의 안수민 작가는 한국에 온 지 10년 됐습니다. 안 작가는 북한에서부터 미술을 전공했지만 한국에서 미술을 공부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려야 했다면 한국에서는 온전히 작가의 상상력으로 표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민을 거쳐 안수민 작가는 점차 자신만의 표현 기법과 색채를 찾게 됐습니다.

 

인서트4: (안수민) 어린 나이에 탈북이라는 큰 사건을 경험했기 때문에 정체성 혼란 같은 것을 많이 고민하고 죽음에 관해서도 관심이 컸고 그러다 보니까 기존에 제 작품은 이방인의 느낌을 표현하는 작업을 해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부분들보다는 현실에서 제가 살고 있는 이 시점을 담은 것 같고요. 색의 변화도 많이 있는데요. 기존에는 시각적으로 직접적인 붉은색이나 파란색, 그런 색들을 많이 썼고 좀 어두운 색이 은연중에 나타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인물을 좀 많이 그렸어요. 인물을 통해서 느껴지는 내면의 불안함 같은 부분들을 담았습니다. 지금의 작품은 완전히 그 어려운 시기를 벗어나서 혼란들을 이겨낸 상태를 표현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수민 작가의 작품은 밝은 푸른색이 주를 이루고 초록빛과 노란빛이 어우러집니다. 전시장에는 총 25점의 작품이 걸려있는데요. 안 작가는 그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고 하네요.

 

인서트5: (안수민) 아무래도 대표적인 작품, 이번에 포스터에 나온 작품인데요. 제목이 영성이라는 작품이에요, 제목 자체가 좀 추상적이고 처음에 들었을 때 어, 뭐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저의 삶은 어떻게 보면 기적 같거든요. 북한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잖아요. 근데 제가 이곳에서 신앙을 갖게 되고 그것을 그림으로써 승화를 시킨다는 부분들이 굉장히 저에게는 기적 같고요. 작품 속에선 바닷물이 갈라지는데 거기에서 느껴지는 초월적인 기적? 그런 이미지가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에겐 이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듭니다.

 

경기도 안양에서 온 이준범 씨 그리고 서울 구로에서 온 천은경 씨는 연인 사이인데요. 주변을 지나가다 우연히 들렀다고 합니다. 갤러리가 자리 잡은 곳은 몇 년 전부터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의 오래된 동네인데요. 갤러리 앞에 걸렸던 푸른빛 그림에 마음을 빼앗겼답니다.

 

인서트6: (이준범) 전체적으로 색감이 정말 예쁜 것 같아요. 처음에 성경 얘기를 많이 담으셨다고 하셨는데 제가 성경 내용은 잘 몰라서 어떤 느낌인 줄 알겠다’… 정도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함경북도 출신이라고 하시는 순간 뭔가 여러모로 인생이 (작품에서) 보인다고 할까요. (웃음) 더 깊게 본 거 같아요 / (천은경) 색감이 너무 예뻐서 들어가 보자고 했는데 작품 잘 봤어요. 작가님 응원합니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중에는 작가를 잘 아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첫 개인전을 하는 안수민 작가를 응원하기 위해 갤러리를 찾았다는데요. 먼저 이서경 씨입니다.

 

인서트7: (이서경) ‘그림 그린다라는 게 사실 창작의 고통인데 그 시간을 잘 견디고 쌓아온 보람이 작품에서 많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 (이현주) 수민 작가님과 같은 교회 다니고 있는 이현주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그림을 잘 알지 못하지만 이렇게 또 전시를 통해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조금 더 홍보가 많이 되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요. 전 정말 작가님을 팬으로 진짜 더 활발하게 작품 활동해 주셨으면 좋겠고 앞으로 나올 작품들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색채의 변화는 생겼지만 수민 씨의 작품 속엔 변함없는 것이 있습니다. 표현방식이 달라져도 여전히 수민 씨의 이야기와 수민 씨의 삶이 담겨있다는 사실입니다.

 

인서트8: (안수민) 시각적으로 볼 때는 많이 다릅니다. 그러나 저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히 남아 있고 제가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정체성, 그리고 현실의 삶을 그대로 또 지금 작품에도 표현하고 있어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시대,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지만 제 그림을 통해서 좀 편안함을 느꼈으면 좋겠고요. 삶의 어려움과 고통으로 인해서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이 제 작품을 통해서 삶의 새로운 출구를 만나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Closing-

안수민 작가는 두려움을 안고 건넜던 두만강에 대한 기억도 달라졌습니다. 강을 건넌 것이 자신이 경험한 최고의 기적이기에 이제 두만강은 검고 어두운 색이 아니라 밝고 환하게 그려진다는 수민 작가!

 

인서트9: (안수민) 제가 이 삶을 충실히 살아내고 포기하지 않고 작가로서 삶을 살아가고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그런 부분들이 다 시작점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을 해봅니다.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이 푸른 색의 향연이 된 따뜻한 안수민 작가의 작품들, 앞으로 더 많은 기적을 만나고 또 만들어 내길 바라면서 <여기는 서울>,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최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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