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색 까마치 (1)
2020.01.28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처음의 만남은 하늘이 만들어준 인연이고 그 다음부터는 사람이 만들어 가는 인연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다양한 인연으로 엮입니다.
여기… 같은 고향, 같은 학교라는 인연으로 함께 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미술로 이름난 남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출신의 탈북 청년 3인인데요.
1월 8일부터 21일까지 인사동의 한 전시장에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 현장, <여기는 서울>에서 담아봤습니다.
인서트1: (현장음- 리포터) 안녕하세요? 저는 춘혁 씨 얼굴을 알아보겠는데~~
지난 1월 18일 토요일, 인사동에 마련된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낯익은 얼굴, 강춘혁 씨가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2001년 한국땅을 밟은 강춘혁 씨는 북한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예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인데요.
래퍼 가수로도 활동하며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습니다.
말과 노래가 뒤섞인 음악으로 리듬에 맟춰 읊조리듯 노래하는 가수 ‘래퍼’.
이번에는 노랫말이 아닌 그림으로 그의 생각을 전합니다.
전시장에는 춘혁 씨 외에 2명의 청년이 더 있는데요.
이번 전시를 함께하는 안충국 씨와 전주영 씨입니다.
세 사람이 함께 전시를 하게 된 계기가 있다는데요. 강춘혁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서트2: (강춘혁) 처음에 원래 제가 2020년 1월 초에 개인전을 열기로 마음을 먹었거든요. 그래서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가 홍대 회화과 졸업전시회가 있어서 후배들 격려차 갔는데 안충국 작가와 전주영 작가님 졸업 전시 작품을 보고 괜찮아서 (제안했어요.) 서로 다른 기법을 쓰고 다른 내용이기 때문에 전시회에 있어서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작가 개개인의 세계도 각자 다르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좋은 전시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후배님들에게 제가 전시회를 같이 할 의향이 있냐고 물어봤죠. 흔쾌히 좋다고 해서 이렇게 하게 됐습니다.
전시회의 제목은 ‘까마치’!
함경북도 사투리인 까마치를 서울말로 하면 ‘가마솥의 누룽지’ 인데요.
남한 사람들에겐 이 ‘까마치’라는 말이 낯설기만 합니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대부분이 ‘까마치’가 뭐냐고 질문을 하고 그때마다 작가들이 설명을 해주는데요.
어떻게 설명하는지 잠깐 들어볼까요? 안충국 작가입니다.
인서트3: (안충국) 까마치라는 말이 함경도 사투리인데 누룽지라를 의미를 갖고 있어요. 한국에도 노래가 있더라고요. ‘가마솥의 누룽지 박박 긁어서’라는 그게 있더라고요. / (관람객) 그런데 왜 누룽지로 이렇게… / (안충국) 누룽지라는 게 같은 일종의 향수 거든요. 또 원래 ‘까마치’라는 게 밥 밑에 가려져서 존재를 못 드러내는 그런 거잖아요. 긁어서 나중에 가져온다는 의미로 가져왔는데 저희도 어쩌면 존재가 확실하지 않았던 존재들인데 까마치처럼 해보자라는 의미로…
남한말로는 누룽지, 함경북도 사투리로는 까마치.
이렇게 부르는 말은 다르지만 둘 다 고향의 향수를 불러오는,
엄마가 차려줬던 밥상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입니다.
전시회장에 걸린 작품들은 가마솥 까마치보다 훨씬 다채롭고 멋진데요.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관람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직접 설명해 줍니다.
전시회장에서 가장 먼저 관객들이 만나는 그림은 전주영 씨의 작품 ‘강 건너 마을은’ 입니다.
인서트4: (관람객) 사람이 지금 강에 들어가 있잖아요. 이유가 있는 거에요? / (전주영) 네. 이제는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그런 곳이고.. 강에 있는 이미지는 제가 지금 한국사회에서 정체성의 혼돈이라든가 아니면 저 자신이 내면이 거의 없는 껍데기랑 비슷하지 않나.. 이런 개념에서 나온 이미지라서 강에서 서 있는게 좋지 않을까 해서 강에 (제 자신을) 세워 놨습니다. / (관람객) 뭔가 더 와 닿는게 있는 것 같아요. / (전주영) 감사합니다. / (관람객) 더 쓸쓸해 보인다고 그럴까? 색감도 약간~~
어두운 색감으로 표현된 숲과 강이 있고 강 가운데엔 남자가 서있습니다.
그 남자는 강 맞은 편을 바라보고 있네요.
숲은 탈북과정에서 겪었던 두려움과 공포를 담았고
강에 서서 멀리 보이는 마을을 바라보는 사람은 한없이 작아졌던 자신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또 고향을 떠나 한국에서 살면서 느꼈던 중간자적인 감정도 녹아있습니다.
인서트5: (전주영) 강 건너 마을이라고 하면, 저의 출신 성분을 듣고 나면 바로 사람들이 인지하더라고요. 아~ 북한을 고향으로 그리신 거에요? 하고… 맞는 말씀이거든요. 관객들이랑 소통을 하면 어떨까.. 작품을 통해서… 제가 의도적으로 표현을 했는데 일단은 강 건너 바라보는 저의 이미지를 가운데에 세워 놨고요. / (관람객) 이쪽은 두만강이에요? / (전주영) 네. 맞아요. 두만강도 여러가지 표현을 했는데요. 강이라는 게 깊이의 차이가 있잖아요. 깊은 곳과 얕은 곳이 있는데 그 깊은 곳에 제가 서 있음으로 해서 현 사회에서 부딪치고 있는 저의 정체성이라든가 혼돈, 그런 것들을 많이 강조하고 싶어서 깊은 표현을 해봤고요. 여기는 얇으면서.. / (관람객) 경계의.. / (전주영) 네. 맞아요 / (관람객) 아~ 고맙습니다!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은 과거의 자신을 잊혀지게 한다.
그러므로 나 자신은 겉보기엔 나의 존재이지만 따지고 보면 내면이 없는 껍데기와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나는 작품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고찰하려 한다’
작품에 붙어 있는 설명에서 전주영 작가는 이렇게 자신의 그림을 설명했는데요.
조금이나마 그 마음을 알 것 같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남한 청년, 김주헌 씨입니다.
인서트6: (김주헌) 사실 저는 대구출신인데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요. 그런데 저도 서울에 정착하면서 경계인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동질감도 느꼈고 그리고 그들이 마음을 읽고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그때 좀 더 북한인권에 더 눈을 뜨게 된 것 같아요. / (리포터)아까 나는 대구에서 올라온 사람으로서 나도 경계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뜻일까요? / (김주헌) 저는 공부를 하고 싶어서 어떻게 보면 서울로 올라온 대구이탈주민이란 말이에요. 물론 저는 자유롭게 왕래 할 수 있지만 북한이탈주민 역시 갈수만 없을 이지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남한에서 나고 자란 주헌 씨가 어떻게 강을 건너 남한에 온 북한 사람 전주영 씨의 그림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요?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작품이지만 그 작품이 관객의 눈을 통해 동감과 공감을 얻는 순간인데요.
모든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서트7: (김주헌) 저기 사람이 한 명 있는데 그게 북한이탈주민일 수도 있고 나일수도 있고… 다른 사람일 수도 있어요. 저는 이 사람에 있어서 감정이입을 많이 했고 저도 북중 접경지역에 다녀왔거든요. 두만강에 갔었는데 거기서 되게 미묘한 감정을 느껴서 굉장히 슬펐어요. 그리고 이 문제를 우리 세대가 해결해야 한다… 그 생각을 더 하게 됐습니다.
남과 북, 두개의 고향을 가진 탈북 청년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그동안 많은 작품을 선보였고 또 이번 전시회를 제안한 강춘혁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서트8: (강춘혁) 소통도 되고 그 사회(북한)에 대한 문화를 알리는 거죠. 그 사회와 우리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전시인 거죠. / (리포터) 전시회가 알리는 창구역할, 소통의 공간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시간 동안 달라지긴 했나요? / (강춘혁) 음… 많이 변했죠. 제가 그렇게 활동해서 변한 건 아니고… 차별적인 인식도 많이 사라진 사회가 됐고 서로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는 부분이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스스럼없이 궁금해서 물어보고 대답을 해주고 이렇게 전시도 열고 소통을 하고 북한 문화와 탈북민의 대한 것들을 알려주고 보여주다 보니까 이렇게 변하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통해…. 북한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들려주는 세 청년들!
미술 작품이라고 하면 어렵게 느껴지지만 결국 그림도 한 사람의 경험과 생각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전시회에서 만난 많은 남한 사람들이
북한 인권과 탈북민이라는 특수성을 떠나 작품에 공감한다고 말합니다.
함경북도 출신, 세 남자의 작품 전시회 ‘까마치’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도 계속됩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