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브라보 마이 라이프] 초원에 선 수학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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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미끌미끌한 지렁이를 거리낌 없이 손으로 잡아보거나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이는 미래의 생물학자가 될 수 있고요. 나무, 종이, 플라스틱을 보고 이것저것 만들어보는 아이는 미래의 과학자가 될 수 있습니다. 숫자와 도형을 좋아하거나 복잡한 수식을 보고 흥미를 느끼는 아이는 미래의 수학자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보통 사람들 눈에는 별것 아닌데 즐거움을 느끼고 경이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그 분야로 나갈 가능성이 분명 더 높기도 하죠.

저와는 거리가 먼 얘기라서 쉽게 이해는 안 되는데요. 이건 대다수의 사람들이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수학이요! 남한에서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려워지는 수학 때문에 수학 공부를 포기했다는 학생들도 생겨날 정도인데요. 수학이 재미있고 심지어 수학이 인생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북한에서부터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국제 수학경시대회에 참가했던 이정호 군인데요. 올해로 한국에 정착한지 6년됐습니다. 정호 씨는 스스로의 삶을 수학 문제처럼 하나하나 풀어가는데요. 그의 이야기 지난 시간에 이어 <여기는 서울>에서 전해드립니다.

(뉴스 보도 중)홍콩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 진입한 것으로 알려진 탈북 학생이 홍콩을 떠나 한국에 도착했다는 홍콩 언론 보도가 나왔습니다. / 지난 7월, 홍콩에서 망명을 신청한 북한의 18살 수학 영재가 우리나라에 입국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2016년, 홍콩에서 수학 영재의 조기 발굴과 육성, 교류를 목적으로 치르는 국제 수학올림피아드 대회가 치러졌고 이 대회에 참가했던 북한의 수학 영재가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그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이정호 군인데요. 정작 본인은 한국에서 북한 출신 수학영재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게 조금은 부담스럽습니다.

(이정호)나는 나인데… 어떤 모임에 갔을 때 나 이정호라는 사람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2016년 북한에서 탈북한 수학 영재라는 이미지가 제일 첫 번째로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내 이름은 몰라도 수학 영재라고 부르더라고요. 중요한 이벤트나 사건을 통해서 기억하게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의 기억이 그렇게 되는 게 제일 맞을 수도 있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특별하다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평범해지고 싶어요, 이제는 그만 잊혀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하지만 정호 씨는 북한에서도 한국에서도 늘 수학과 함께 합니다. 한국 정착 이후 대학에 진학할 때에도 ‘수학’을 전공으로 선택했고 살아가는 방법 역시 수학적으로 접근합니다. 수학과 인생은 비슷하다고 말이죠.

(이정호)인생은 나중에 어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수학도 마찬가지로 어찌 될지 모릅니다. 그걸 풀기 전까지는 길이 안 보이는 거죠. 그 길을 만들어 가는 게 수학이고 본인이 만들어 가는 게 인생입니다. 피타고라스 정의를 증명하는데도 400가지가 방법이 있다고 해요. 사람마다 생각이 너무나도 다양하고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저는 인생과 수학은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정호 씨는 스스로의 삶을 수학 문제처럼 하나하나 풀어봅니다. 문제를 풀다가 막히면 잠시 쉬거나 다음 문제로 넘어가는 것처럼 정호 씨는 대학을 잠시 휴학한 적도 있고 여느 탈북 청년들처럼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면서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자기 인생의 공식과 해답을 찾아가고 있는데요. 마치 정호 씨의 이야기를 담은 듯한 영화가 최근 남한에서 개봉했습니다.

(영화,’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중) 자, 보라! 삼각형 ABC가 있어. A가 90도인 직각이등변삼각형이지. 높이가 6이고 밑변이 10이야. 넓이를 구해보라. / 30이요. / 너, 중학교 어디 나왔네? / 네? 맞잖아요. 30. 밑변 곱하기 높이 나누기 2면 30 맞는데~

학문의 자유를 갈망해 탈북한 수학 천재 '리학성’이 주인공인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라는 영화인데요. 정호 씨도 이 영화를 봤습니다.

(이정호)주변 사람들이 혹시 너에 대한 얘기가 아니냐고 묻더라고요. 하필이면 '리학성'이라는 캐릭터 설정에서 수학 올림피아드 얘기도 나오고 북한 수학자라는 얘기가 나와서 '너 얘기 아니야?' 하는 연락을 엄청 많이 받았고 생각해보게 됐어요. 일단 영화는 재미있게 봤고 보는 시간 내내 좀 많이 웃었어요. 사투리 부분에서 좀 많이 웃겼는데요. 제일 웃겼던 부분은 고등학생 배우가 수학을 가르쳐 달라고 할 때 '가라, 안 가니' 하는 장면이 좀 많이 웃겼었던 것 같아요. 한 명은 수학을 배우고 싶은 것이고 다른 한 명은 수학이랑 더 멀어지고 싶은, 그런 두 사람이 만나서 더 재미를 불러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수학적 내용에서 제일 좋았던 부분은 오일러 정리를 표현했던 거예요. 저렇게도 설명할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쉽게 이해될 수 있게 참 잘 설명했더라고요.

정호 씨는 영화 속 주인공 ‘리학성’에게 동질감을 느낀다는데요. 솔직히 수학을 썩~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여러 번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대사 한 마디! ‘수학이 아름답지 않녜?’ 인데요. 정호 씨는 이 말을 충분히 공감한답니다.

(이정호)수학자로서는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죠. 본인이 하는 과목이니까요. 저도 수학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한테는 다른 게 아름답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술이 더 아름다울 거니까요. 리학성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수학에서는 거의 정상급 수학자이기 때문에 수학에서 깨달음을 얻은 거죠

정호 군은 영화 속 주인공 리학성에게 자신과 닮은 점을 찾았습니다. 정호 씨가 북한을 떠나 한국행을 결심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정호)한국 사람들은 입시를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고 한국 정부에서는 어떻게 하라고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잖아요. 하지만 북한 같은 경우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특정 분야에 수학자를 선발해서 보내거든요. 그게 공산주의 국가의 특성이죠. 리학성이라는 캐릭터가 수학에서 정상급 캐릭터이기 때문에 '저 사람을 데려다가 우리 분야에서 쓰면 엄청난 성과를 거둘 수 있겠다'… 그거는 초등학생이라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눈독을 들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수학을 하겠다' 하는 게 영화 속 리학성이라는 캐릭터의 생각이고 저도 비슷한 생각이었던 거죠.

지금보다 어렸지만 정호 씨는 본인의 길은 누군가 강제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자유 의지로 선택하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정호 씨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정호 씨가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인지 들어봤습니다.

(이정호)수학은 여전히 재미있게 하고 있는데요. 수학 공부를 하다 보니 수학이라는 분야에는 뭔가 한계가 있더라고요. 손으로 계산해서는 뭔가 더 광범위한 일을 못 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컴퓨터랑 연관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전체적 인생의 계획은 인간으로 태어났고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한번 해보자 그게 최종 목표입니다. 예를 들어서 농사하시는 분들이 없으면 우리가 밥을 어떻게 먹어요. 군인이 없으면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이런 식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면 된다? 그래도 나는 더 열심히 해서 꼭 하고 싶다. 뭐 그런 거죠.

-Closing Music -

수학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수학 천재의 말에는 공감하기가 쉽지않지만 인생과 수학이 비슷하다는 말에는 이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삶도… 수학도… 정답을 찾기가 쉽지 않고 풀이 과정도 어려우니까요. 정호 씨를 닮은 듯한 영화 속 주인공은 이렇게 말해줍니다.

(영화,'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중)네가 답을 마치는 데만 욕심을 내기 때문에 눈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야. 질문이 뭔지를 아는 게 더 중요한 거다. 답을 맞히는 것보다 답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거이 수학이야.

몇 날 며칠을 고민해도 풀기 어려웠던 수학 문제가 어느 순간 술술 풀리는 것처럼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정답을 찾으려고 고민했던 시간들이 실마리가 되는 것처럼 말이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김인선, 에디터이현주,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