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 북한 소녀 진, 웹툰 작가 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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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같은 상황을 이야기해도 담담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난히 유쾌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죠. 누가 전하느냐에 따라 같은 상황도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북한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글, 그림, 영상 등 전달 방법도 다양하고 같은 매체를 이용해도 전달자에 따라 같은 얘기가 더 와 닿기도 하죠. 오늘 만나본 이 여성분은 슬픈 얘기도 유쾌하게 전하는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는 서울>에서 만나봅니다.

(현장음)나도 해야 돼? / 아니, 나만… 아니요. 나 옆 방에 있을게~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한적한 주택가. 여러 가구가 함께 모여 사는 빌라의 1층에서 만난 주인공은 101호에서 문을 열고 나오더니 바로 보이는 102호로 다급히 들어갑니다. 아직 준비를 덜 했다네요. 102호는 그녀의 집, 101호는 작업실입니다. 출근 시간이 20초면 되는 구조입니다.

(인터뷰)안녕하세요. 저는 북한에서 2013년까지 살다가 대한민국에 와서 현재는 웹툰을 만들고 있는 전주옥입니다.

웹툰은 종이가 아닌 디지털상에서 만나는 만화입니다. 인터넷의 모든 사이트 주소 앞에 붙는 World Wide Web이라는 말에서 web웹을 따고 만화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cartoon에서 toon툰을 따서 만든 합성어로 쉽게 말하면 인터넷으로 접속해 볼 수 있는 만화라는 의미입니다.

요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작품의 절반 이상이 이런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되는 작품인데요. 종이 만화책 시장을 넘어 이제 영상 분야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요한 문화 콘텐츠 중 하나입니다.

주옥 씨는 바로 이런 웹툰 작가입니다. 이제 막 짧은 연재를 시작했지만 웹툰 작가인 남편과 함께 조를 이뤄 작품을 준비 중입니다. 아직까지는 이야기 줄거리와 이야기의 기본이 되는 콘티는 주옥 씨가, 컴퓨터 펜을 잡고 그림을 그리는 건 주옥 씨 남편이 담당합니다. 남남북녀 커플인 주옥 씨 부부는 어떻게 만나게 됐을까요?

(인터뷰)남편을 소개로 만났어요. 내가 웹툰 작가를 만나다니 정말 쉽게 만날 수 있는 직업군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신기하기도 했고 이분을 잡아야겠다 싶더라고요. (웃음) 결혼을 20대 중반에 했습니다. 남편이 도와주면 웹툰으로 내 얘기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긴 했었어요. 제가 지금은 배우고 있는 상황이라서 수준 높은 그림체를 직접 구사하지는 못하고요. 남편이 주로 기술적인 요소를 담당하고 있어요. 저는 콘티 짜고 색을 입히는 역할로 같이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계속 배워가고 있어요.

그림을 그린다는 남편에게 매력을 느꼈다는 전주옥 씨.

그 이면엔 어린 시절, 장난삼아 그렸던 만화로 인해 혼났던 기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인터뷰)한 10살 이후였던 것 같아요. 그 전후로 학교에서 그림을 그렸었는데 집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그리는 시간이어서 그냥 이것저것 막 그려 보다가, 아빠가 방귀 뿡뿡 끼는 방귀 모양이 되게 신기한 '방귀대장 아빠' 그림을 그렸었는데 다들 재미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결국 풍기 문란한 그림을 그린다고 혼났어요. 내가 함부로 그림을 그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확 들더라고요. 그래도 그림에 대한 마음이 남아 있잖아요. 선전화 같은 걸 그리고 싶지는 않았고 그 이후로는 그림과는 사실 거의 인연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어떻게 또 인연이 된 게 그림쟁이 남편을 만나게 됐고… 바로 그때 생각이 났어요. 내가 어릴 때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그게 뭉개져 버렸었다고.

주옥 씨는 사실 공부 밖에 모르는 소녀였습니다. 성분이 좋지 않고 집의 생활은 힘들었지만 부모님은 교육에 열성이었고 그런 부모님이 고마워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대학 진학이라는 기회는 주옥 씨에게 차려지지 않았고 결국 학업을 위해 탈북을 선택했습니다. 한국 가서는 꼭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고 다짐하며 강을 건넜습니다. 고등중학교 졸업식 다음 날 탈북한 주옥 씨는 자기 자신을 ‘유학형 탈북자’라 소개합니다.

(인터뷰)저는 북한에서 올 때 목표가 무조건 공부! 공부를 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는데요. 아빠가 유벌공이라고 해서 자른 통나무를 강물을 통해 이동시키는 이런 일을 했는데, 부모님의 삶이 너무 힘드니까 조금이라도 더 잘 살려면 간부가 돼야 되고 간부를 하려면 당에 들어가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을 가야 되고 그래서 저는 먹고 살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겁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돈이 없고 권력이 없기 때문에 제가 (북한에서) 대학을 가는 것도 정말 힘든 일이었고요. 간부가 돼서 결과적으로 내가 먹고 살 수 있을 정도까지 북한에서 산다는 것은… 그 전에 제가 굶어 죽겠더라고요. 그래서 답은 북한을 나와야겠다는 것이었어요. 부모님도 '너희가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공부를 해둬라' 하면서 계속 공부를 시켜 주셨어요. 할 수 있는 게 또 공부밖에 없잖아요. 그렇게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왔어요.

한국에 입국한 후 주옥 씨는 원하는 대로 공부에 매진했고 대학 진학을 준비했습니다. 북한에서는 공부를 잘했지만 남북의 학력 차가 크다 보니 주옥 씨에게 시간이 필요했는데요. 컴퓨터 학원, 영어 학원에 다니며 대학 과정을 따라갈 준비도 하면서 입시 공부를 한 결과, 2016년 한동대학교 국제관계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옥 씨는 대학에 진학하는 과정에서 경험했던 남북의 교육 차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는 걸 대학 생활이 시작되면서 알게 됩니다.

(인터뷰)수학이나 물리, 화학, 생물 이쪽은 기본적인 자연 과학이라 차이가 없었는데 전혀 알지도 보지도 못했던 역사, 국어, 문학. 특히 외국어! 이 영역의 차이는 어마어마합니다. 그리고 정말 깜짝 놀랐던 게 있는데요. 대학교를 가서 1학년 1학기 첫 과제가 어떤 주제에 대해 써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북한에 있을 때 저의 이야기를, 제 말로 써본 적이 없어요. 오직 지시한 지침에 따라서 썼었는데 내 의견을 3~4페이지를 써 오라는 거예요. 그걸 쓰며 땀을 뻘뻘 뺐던 기억이 있습니다.

주옥 씨가 북한에서 제일 많이 썼던 글은 생활총화에서 발표하는 일종의 비판서였습니다. 졸업할 때까지 초급단체 비서 역할을 했었기에 다른 아이들을 관찰한 것을 보고서로 써왔고 이런 보고서 쓰는 일은 아주 익숙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글로 적는다? 주옥 씨는 혼란스러웠지만 대학 4년 동안 배웠던 가장 중요한 공부였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표현하는 일, 바로 지금 주옥 씨가 하는 일이죠.

졸업 후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주옥 씨는 어떤 그림이든 마음대로 그릴 수 있는 이곳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만화 속 주인공은 북한 소녀 ‘진’. 바로 ‘진’이 전주옥 씨입니다.

-Closing Music-

그중 일부는 이미 연재되고 있는데요. 한국에 정착한 ‘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인터뷰)남북하나재단에서 월간지 '월간하나'에 나오는데요. 거기에서 단편을 매월 올리고 있습니다. 저랑 저희 엄마, 진이랑 주여사를 주인공으로 해서 두 사람의 정착 과정에서 겪는 좌충우돌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실수담, 저런 실수담, 재밌는 해프닝을 독자들과 나누는 게 너무 설레는 것 같아요.

탈북민 정착을 돕는 하나재단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올 3월부터 웹툰을 연재하고 있는데요. 누군가에게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기일 수도 있는 정착 초기의 이야기를 주옥 씨는 만화답게, 유쾌하게 풀고 있습니다. 실제로 만화도 본인의 성격과 많이 닮아 있는데요. 인터뷰 1시간 내내 그 열정을 숨기지못했던 주옥 씨의 남은 이야기, 다음 주에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