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 북한 소녀 진, 웹툰 작가 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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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ing Music-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6.25 전쟁 발발 74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한국에서는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기 위한 추모제와 참배가 곳곳에서 열렸는데요. 6월엔 탈북 단체를 비롯해 다양한 남북 청년 모임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이 안장되어 있는 국립묘지 현충원을 찾아 참배와 함께 봉사활동을 많이 합니다.

서로 다른 생각으로 서로의 목숨을 빼앗던 가슴 아픈 전쟁의 참극을 마주하며 통일에 대한 염원을, 그리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조금이나마 기여를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곤 하는데요.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북한에 대해, 탈북민에 대해 알리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북의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언젠가를 꿈꾸면서 말이죠.

북한에서 살았던 이야기, 그리고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디지털상에서 만나는 만화, 웹툰으로 유쾌하게 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2013년에 한국에 정착한 전주옥 씨인데요. <여기는 서울>에서 만나봤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전해드립니다.

( 현장음) 입체감을 넣어 봐. / 그럴까? / 응. 제가 이렇게 붙어있어야 되는 이유가 아무리 말로 설명을 해도 몰라요. 한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상세하게 다 이렇게 얘기를 해줘야 그림이 나옵니다.

경기도 용인 주택가에 위치한 주옥 씨의 작업실.

이곳에서 주옥 씨는 웹툰 작가인 남편과 함께 조를 이뤄 작품을 준비 하고 있는데요. 이야기 줄거리와 이야기의 기본이 되는 콘티를 주옥 씨가 담당하고, 컴퓨터 펜을 잡고 그림을 그리는 건 주옥 씨 남편이 맡다 보니 두 사람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냅니다.

( 현장음) (전주옥) 1화에서 그 학교 앞에 터벅터벅 걸어가서 성이 만나기 전에. / (남편) 응. 잠깐만… / (전주옥) 이거 이거! 빨간 깃발 나오는 거. 그부분. / (남편) 이거? / (전주옥) 응. 그 부분. / (리포터) 밑 그림을 주옥 씨가 먼저 그리는 거예요? 아니면 다 설명을 해 주면 남편분이.. / (전주옥) 네. 그래서 제가 그림으로 정리를 다 그려줘요. 그런데도 틀려요.

주옥 씨가 남편과 함께 작업 중인 웹툰은 과거 자신의 이야기인데요. 만화 속 주인공은 북한 소녀 ‘진’. 전주옥 씨입니다. 주옥 씨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를 그리는 일에 뛰어든 이유는 뭘까요?

( 인터뷰) 탈북민들 중에서 또는 북한 사람 중에서 저의 이야기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예요. 누구나 다 그 안에서 겪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인데요.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그렇게 또 평범한 이야기는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북한에서는 아주 평범해서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이야기지만 대한민국의 사회에서 해석해냈을 때는 사회적인 가치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있어서 되게 오래 전부터 내 얘기를 정리하는 작업은 계속 했었습니다. 계속 글은 써놓고 있다가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웹툰 작가였어요. 그래서 '아 이거를 웹툰으로 해보자! 지금이 기회다' 해서 웹툰으로 만들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작을 지금 10화 넘게 해 놨고요. 시나리오는 그 이상을 준비해 놨습니다. 그리고 현재도 계속 또 제작하고 있습니다.

주옥 씨는 만화로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은 걸까요? 그녀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봤습니다.

( 인터뷰) 가제이긴 하지만 '소녀 진'이라고 해서 김정은 사회의 가장 최근의 일을 배경을 했고요. 북한에서 영재학교를 다니던 아주 엉뚱발랄한 여자 아이를 통해 북한 체제 하에서 살아가는 북한 주민의 삶을 이야기하려고 해요. 과거 북한 관련 웹툰이 몇 번 시도가 됐고 거기에서 보여줬던 부분은 주로 북한 체제의 폭로나 인권의 실상을 중점으로 알리는 그런 성과가 있었다면 이제는 북한 주민의 삶을 역동적으로 그려내고 그 안에서 살아내는 (북한 주민들) 삶의 모습을 좀 밝게 엮어내자 라고 해서 조금 더 대중적으로 다가가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외부에서 보기에 북한 하면 압박 받고 고립되고 소통이 안 된 곳인데요. 맞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도 희노애락이 있고 짚어야 되는 사회적인 부조리나 인권 자유의 개념들이 있겠죠. 그래서 이거를 좀 더 밝고 그럼에도 본질적으로 짚어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주옥 씨가 북한에서 살아왔던 이야기부터 시작되다 보니 만화 속 배경도 북한이고 진이 입는 옷도 북한 의복입니다. 모든 것이 주옥 씨에게는 익숙하지만 남한 사람인 남편에게는 모든 게 생소하기 때문에 주옥 씨가 곁에서 설명을 해주고 검수도 하고 있는데요. 함께 작업을 하다 보면 때때로 마찰도 있을 법 한데, 오히려 작업실엔 웃음이 넘칩니다.

( 현장음) (전주옥)이거 터치 터치 좀 해 줘봐. / 터치 터치? 터치 터치.. / (전주옥)내가 얘기 했었잖아. 이게 더 풍성해야 된다고. / (리포터) 스토리텔러이자 감시자인데요? 주옥 씨 무서운데요. / (전주옥) 네. 저는 군림하는 독재자입니다.(웃음) 점점 예뻐지고 있어요. / (리포터) 본인이 진이라서 더 예쁘게 그리라고 강요하는 거 아니에요? / (남편) 네. 맞아요. / (전주옥) 만화적으로 예쁘게 재해석해 달라는 거죠. (웃음) 그래서 저는 계속 최대한 예쁘게 해달라고 하고 있어요.

만화적으로 주인공 진이를 좀 더 예쁘게 그려달라고 요청하는 것보다 주옥 씨가 꼼꼼히 챙기는 게 있다는데요. 만화로 그려내는 한 장면, 한 장면의 사실적인 묘사입니다.

몇 장면 작업하는 걸 옆에서 봤는데요. 사실 제 눈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장면인데도 주옥 씨는 미세한 부분까지 꼼꼼히 확인하고 수정 사항을 요청합니다. 주인공 진이가 하고 있는 머리 끈, 북한에서는 머리매개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곱창 끈이라 하는데요. 그 머리 끈의 풍성함 정도까지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더라고요. 만화를 이렇게까지 사실적으로 표현하려는 이유! 현실감을 살릴수록 자신만이 구현해 낼 수 있는 부분이라는 확신 때문이라는데요.

( 인터뷰) 북한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를 다뤄낸다는 거에 가치를 많이 둬서 제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만큼은 그냥 내 방식대로 풀어가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정말 내 생활! 내가 그때 사고했고 보아왔고 경험했던 그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는, 그냥 그거요. 지금까지 소녀 진은 계속 비축만 해놓고 있는 상태인데요. 내년쯤 공개할 예정입니다.

소녀 진의 일부는 단편으로 탈북민 정착을 돕는 하나재단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올 3월부터 연재되고 있는데요. 북한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옥 씨가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낯선 한국 땅에서 남북의 문화 차이로 겪었던 일화를 유쾌하게 담고 있는데요. 주옥 씨보다 3년 늦게 한국에 입국한 친엄마도 같은 실수와 경험을 하는 것을 보고 만화로 담으면 좋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합니다.

특히 주옥 씨는 기억에 남는 일화를 만화로 연재하고 있는데요. 냉면에 얽힌 일화도 그 중 하나입니다.

( 인터뷰) (북한에서는) 냉장고 문화가 없어서 얼음이 없어요. 그래서 냉수에 말아 먹으면 냉면이죠. 조금 시원하면 냉면인 거고요. 엄마는 그냥 시원한 정도를 생각하고 (한국에) 오자마자 (냉면을) 시켰는데 얼음이 나온 거예요. 평생을 얼음과 관련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처음으로 그렇게 찬 음식을 먹어본 거예요. 이빨에 닿자마자 '어머야! 이게 왜 이렇게 차니?' (웃음) '엄마. 냉면은 원래 이래' 하니까 '야! 이게 무슨 냉면이야?'… 저도 그제서야 떠오른 거예요. '아. 맞다. 북한에서는 냉면이 이렇지 않았었지'.. 그래서 사장님한테 가서 '저희 엄마가 북한에서 왔는데 저희는 이런 냉면 안 먹어봐서 더운 물을 좀 주실 수 있어요?' 하니까 사장님이 놀라시더라고요. 냉면 먹으면서 더운 물을 달라는 사람은 아마 그분 60 인생에 처음일 거예요. (웃음)

북한에서 왔다고 스스럼 없이 말을 하고, 난감했을 수 있었던 상황 속에서도 엄마에게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며 차분히 설명을 해주는 주옥 씨의 모습에서 밝고 긍정적인 태도가 느껴집니다.

-Closing Music-

주옥 씨는 당당하게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만화로 담고 있습니다. 재미있지만 진지하게, 북한의 이야기를 북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입니다.

( 인터뷰) 탈출한 사람은 어제도 죽어 나간 사람을 내가 봤고 강에서 총 맞아 죽는 총소리 맨날 들리고.. 와 이게 사람이 사는 삶인가 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눈에 보이는 중국은 최소 그렇지 않아요. 내가 본 대한민국 영화에서는 더 그렇지 않아요. 나도 사람인데 저렇게 살고 싶다. 세상은 우리와 너무 다르게 가고 있는데 우리만 이렇게 갇혀 살고 있구나. 근데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이렇게 사는 걸 알고는 있나? 그래서 누군가 내 목소리를 대신 내줬으면 조금이라도 내 한이 풀리겠다. 10살 남짓에 어릴 때도 그런 마음이 꽉 찼었어요. 그걸 느껴본 사람으로서 조금이나마 이런 작품을 통해서 북한 실정에 대해서 알리는 사람의 삶에 대해서 알리는 그런 목소리도 내고 싶고요. 결과적으로 북이든 남이든 사람이 사는 삶의 모습을 통해서 얻게 되는 그런 교훈이나 가치들을 내 독자들이 얻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소녀 진의 이야기가 전 세계에 알려질 수 있기를 응원하며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