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해외출장을 가다

장진성∙탈북 작가
2014.02.18
incheon_intl_airport-305.jpg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달 2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이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남한에 와서 첫 해외출장을 가게 됐다. 일본 정부기관 산하 연구소 초청으로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북한 같으면 사전에 중앙당 간부 부에서 친인척 성향이나 현황을 조사하고 강습이나 출장 관련 내규를 강제하는 등 몇 개월의 준비과정을 거쳐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한의 직장에서는 섭섭할 정도로 무관심했다. 본인이 초청 받았으니 그냥 알아서 갔다 오라는 식이었다. 다행히도 항공권이나 숙박비는 일본 측에서 모두 부담하여 자체부담이 별로 없었다. 나로서는 생애 첫 해외 출장이어서 온 밤 못 자고 흥분했다. 심지어 작은 실수라도 범하지 않을까 긴장되기까지 했다.

다음 날 공항에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새삼스럽게 대한민국 여권을 들여다 보았다. 어느 나라이든 아무 제약 없이 갈 수 있게 해주는 자유의 특권처럼 보였다. 지구가 작아서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감됐다. 비행기에 올라서야 나는 초청 주최 측에서 비즈니스 석, 즉 비싼 상급 좌석으로 배려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에 갇혀 살았고, 탈출해서도 보위 부와 중국 공안에 쫓기며 추위와 굶주림에 방황하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비즈니스 석의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는다고 생각하니 비록 내 돈으로 산 비행기표는 아니더라도 뿌듯하기만 했다.

나의 일본 체류기간은 총 5일이었다. 그 중 2일은 국제회의 일정으로 채워졌고, 나머지 3일은 자유시간이었다. 그 기간에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일본어는 ‘스미마셍’이었다. ‘스미마셍’이란 죄송하다는 뜻이다. 식당에 가도, 물건을 살 때에도 일본 사람들은 ‘스미마셍’이란 단어로부터 시작했다. 죄송하다는 말이 인사말처럼 통용되고 있는데 대해 나는 강한 의문이 들었다.

왜 음식을 주문하면서도 죄송하고 길을 물어보면서도 죄송한지, 심지어는 같은 질문을 두 번 하는 것조차 죄송하다고 말하는 일본 사람들의 굴욕적인 언행이 좀처럼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가 보기엔 분명 죄를 짓지 않았고 사죄할 일도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일본은 세계 경제 2위의 대국이 아닌가, 국가의 존엄은 세계 2위인데 왜 국민의 자존심은 급신거리는 것도 모자라 죄송하기까지 한단 말인가.

나의 그 의문에 통역원은 자신을 낮춰 남을 높여주는 일본인들의 관행적 예의언어라고 알려주었다. 한마디로 자기보다 남의 인격을 더 존중한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미마셍'으로 정직하고, '스미마셍'으로 청결하고, '스미마셍'으로 청렴한 원칙을 도덕의 기준으로 삼기 위한 자의적 절제의 표현이라고도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그처럼 떳떳하고 지성의 품격으로 다르게 표현하는 일본 사회의 윤리에 대해 감동을 받았다. 그 언어의 강박관념 속에서 과연 일본인들은 죄송한 일을 스스로 억제했다. 그 대표적인 행동이 바로 휴대용 담배 재떨이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작은 담뱃재라 할지라도 아무 곳에 흘리지 않고, 자신에게 버릴 줄 아는 책임감 있는 일본 국민들의 시민의식을 보니 스미마셍의 요구가 만들어낸 일본 거리의 청결함이 더 돋보였다.

한편 북한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북한정권은 자국민 300만을 굶겨 죽이고도 죄송하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북한 정권의 선전 속엔 오직 김씨 일가의 위대한 업적만 있지 과오나 반성은 절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온 세계를 김일성 주의의 적으로 규정하고 그 억지이념도 부족해서 핵무기라는 물리적 공갈수단까지 동원하려 하는 북한인 것이다. 한마디로 겸손의 윤리와 원칙을 망각한 김씨 신격화의 근본적 타락이다.

그런 체제에서 살았던 나여서 일본 체류기간에 스미마셍을 즐겁게 자꾸 불러보고 싶었다. 한번은 음식점에서 종업원을 향해 큰 소리로 불렀다. "시미마셍!" 그러자 식당 안의 모든 손님들이 일제히 날 쳐다보았다. 통역원은 웃는 입술을 가리고 내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시미마셍은 아프다는 뜻이예요, 스미마셍이라고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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