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음악 up & down)
“안녕하세요. 저는 대전광역시에 살고 있는 40대 여자입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TV를 보다가 이달 4일이 점자의 날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도 특별히 관심 갖지 않고 살던 부분이긴 한데, TV를 보면서 시각장애인들의 불편함이나 어려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던 것 같아요. 혹시 북한에도 맹인학교나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들이 좀 갖추어져 있을까요?”
(음악 up & down)
북한에서 '사람이 10할이면 눈이 8할이다' 이런 말 자주 합니다. 신체 장애 중 그 어떤 것보다도 앞이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갖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불편함이라는 얘기겠죠.
한국에서는 가끔 맹인들의 어려움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도록 체험 공간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하고, 또 점자의 날처럼 기념일과 더불어 장애인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북한에선 오히려 체험 공간까지 만들지 않더라도 맹인들의 불편함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전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밤을 보내다 전기가 탁! 하고 들어오면 온 동네에 탄성이 터지기도 했으니까요. 어른들 중 누군가는 '아이구, 소경들은 어떻게 산다니...' 하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했던 기억도 납니다.
하지만 정작 북한에는 사람 몸의 8할에 해당하는 눈이 보이지 않는 맹인들의 불편함을 덜어줄 수 있는 시설이나 제도는 기억나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 새삼 더 놀랍게 느껴지네요.
한국에선 지난 11월 4일이 '점자의 날'이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맹인들을 위해 손가락으로 더듬어 읽을 수 있게 만들어진 특수한 부호 글자가 바로 점자입니다. 그리고 이 점자를 이용해 맹인 분들은 승강기에서 층수 확인, 건늠길 확인 등 일상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안내를 받고 있습니다.
혹시 방송을 듣고 계신 북한 동포 여러분은 점자책에 대해 알고 계신 게 있으실까요? 저는 북한에서 본 기억이 없어서 한국에 와 있는 탈북민들 여러 명에게 물어봤었는데요. 직접 봤다는 사람은 딱 한 명이 있었습니다. 평양에서 온 친구인데, 동네 사람 집에서 하얀 종이에 토들토들 올라온 점으로 돼 있는 책을 보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점자는 원래 19세기 초 프랑스 육군 포병 장교 니콜라스 바루비에가 야간 작전 시 암호용으로 처음 개발했다고 합니다. 당시엔 세로로 6개의 점 2줄, 총 12점으로 만들어졌고, 이후 시각장애인 학생이었던 루이 브라이유에 의해 6점으로 완성됐다고 합니다.
이 6점 점자가 영국과 미국,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도 전해졌다고 하는데요. 이를 바탕으로 1923년 당시 특수교육기관인 제생원 맹아부 교사였던 송암 박두성 선생이 시각장애인들로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해 연구하여 1926년 한글 점자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이라 불리는 송암 박두성 선생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점자를 만들어 반포한 1926년 11월 4일을 점자의 날로 기념하고 있는 거죠
사실 장애인에 관한 질문은 평소에도 꽤 많이 받습니다. '북한은 먹고 사는 문제부터 사회기반시설 등 모든 것이 열악하다고 하던데, 그러면 장애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라고 말이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북한에선 장애인을 칭하는 용어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눈이 안 보이면 소경, 한쪽 눈이 안 보이면 애꾸, 등이 휘면 꼽새, 다리를 절면 삐꼬,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장애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 대해 배우고 나니, 사실 저도 이런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그리고 이런 용어로 그들을 칭했던 북한에서의 지난날이 너무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맹인들을 위해 점자를 활용한 안내 뿐 아니라, 시각장애인 안내견, 그리고 영상을 소리로 읽어주는 해설방송 등 다양한 제도와 방안들이 나와 있는 한국 사회를 살면서 북한에선 맹인들을 위한 제대로 된 시설과 제도가 없다고 답해야 하는 마음이 참으로 참담합니다. 오늘은 여기서 줄일게요. 서울에서 청진 출신 방송인 조미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