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수필가 쾨펠연숙 화백의 삶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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쾨펠연숙 화백 부부가 자신들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쾨펠연숙 화백 부부가 자신들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쾨펠연숙 화백 제공

독일에서 활동하는 쾨펠연숙 화백은 2013년 독일 베를린에서 가장 큰 B.Z 신문사로부터 미술 부문 문화상을 받았는가 하면, 독일 화단에서 대단히 인정받는 화가로서, 그림은 그림대로 문학은 문학대로 꽤 분주한 삶을 살고 있다. 또한, 한국과 독일의 유명 화가들의 특별한 비엔 날래 전시회인 한 독 문화교류(CHANGE-EXCHANGE) 전의 독일 측 대표와 인솔자로서 4년여간 두 차례의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베를린미술가협회 회장단이자 고문이며 유럽 구상협회 회장이기도하다.

지구촌의 한인들 오늘은 시인이자 수필가인 재독 교포 쾨펠연숙 화백의 이야기로 함께한다.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언제 독일에 왔는지 궁금하다.

쾨펠 연숙: 초등학교 4학년 때 사생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으면서부터 저는 항상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훌륭한 화가가 되리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이후 학생 시절엔 미술 부문에서 특선부터 최우수상까지 많은 상을 탔지요. 제가 사실은 한국에서 그림 작업만 하며 한국을 고수하려고 했지만,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 때문에 우연히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결국은 독일의 화풍을 알고 싶어서 1984년에 베를린으로 왔습니다.

독일에서 미술 공부한 이야기 들어보자!

쾨펠 연숙: 제가 올 당시의 계획은 구상을 더 연구하고 싶어했는데 그 당시 독일에서는 50년도 이후 구상보다는 비구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에서는 제 그림을 보고는 프랑스식의 화풍이니까? 파리로 가서 공부하라고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독일어를 공부했고, 이미 함부르크 입학허가서를 받고 독일로 왔었기 때문에 일단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은 원치 않았어요. 아울러 프랑스어보다는 독일어에 매료돼 있을 때라서 일단 베를린에서 다른 과목을 전공하면서 병용해서 베를린의 HdK (Hochschule der Kunst) 의 Kuenstlerweiterbildung 을 다녔어요. 그러면서도 회화과 D. Lemcke 교수와 P. Mueller교수에게 사사를 받았습니다. 현재는 27년이 넘도록 구상 작업을 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유럽의 구상 속에서 한국의 얼이 담긴 회화를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독일인 남편과의 결혼 이야기 들려달라고 했다

쾨펠 연숙: 1995년까지만도 해마다 베를린에서는 작가로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던 아주 규모가 대 베를린 미술 대전 (Freie Berliner Kunstausstellung) 이 있었거든요. 그 전시 준비의 운영위원이었던 마티아스 쾨펠 교수가 우연히 제 그림을 방문객들에게 설명해 줄 때, 저도 옆에 있다가 예술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제 그림에 대해, 그리는 과정과 구도 설정 등의 보충설명을 하게 됐지요. 이런 기회를 통해 우리의 만남이 이루어졌고요. 그 당시 남편은 베를린 공과대학 건축학과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회화를 지도했고요. 남편은 이해심도 많고 유머감각이 많아 예술인으로서 무언의 대화도 할 수 있는 정도로 잘 통하는 그런 분이고요. 우리가 서로 작업을 하면서 직면하는 어려움들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상의도 하고 서로 비판도 해주고 해서 더욱 위로가 됩니다. 그림을 그리는 동료로서 우리는 항상 작품에 대한 토론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한국을 잘 이해하고 한국을 아주 사랑하는 분이고요. 한국음식도 김치서부터 건강음식이라면 다 드셔요. 청국장까지도 잘 드십니다.

개인 소장의 갤러리를 소개해 준다.

쾨펠 연숙: 지금 갤러리를 하나 운영하고 있거든요. 개인 소유인데요.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주위에 많은 분들이 동반해주고, 주의 깊게 관찰해주고, 전시 개막식 할 때 방문하고, 항상 격려도 해주고 수집가들도 많이 생기고요. 제가 하루하루 생활하는 데 있어서 알차고 진실되게 살면 되지 않나! 그래서 그림을 집중적으로 그리면서 화가로서 인정이 되었고 그다음에 여유가 생기니까? 글을 쓰기 시작한 겁니다. 글을 쓰면서 독일어로 번역도 하게 되고, 그 후 종합적인 예술인으로서 정착하게 됐습니다.

벌써 독일에 온 지 31년 째란다.

쾨펠 연숙: 지금 31년째 되는데 31년이 하루아침에 과거로 된 것 같이,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고요. 앞으로도 똑같이 제가 하고 있는 이 생활 패턴이 변함이 없을 거라고 보고요. 그렇지만 좀 더 시간을 아껴가면서 많은 작업을 집중적으로 하는 걸로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대 베를린 미술협회 회장단에 4년째가 된다고 설명해준다.

쾨펠 연숙: 독일 사회에서 활동하다 보니까? 생각 자체도 독일식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 베를린 미협에서는 일종의 프로그램으로 프로젝트를 나눠서 활동하는데, 저는 한독문화교류전(CHANGE-EXCHANGE)을 2011년부터 독일 대표로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비엔날레 (2년에 한 번 개최)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고요. 매 해마다 주제가 주어집니다. 2014년 9월에는 한국의 양평 군립미술관에서 전시가 있었습니다. 60명 정도의 한독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고요. 한국에서 할 때는 한국에서 담당하고, 독일에서 전시할 때는 독일에서 모든 경비 등을 담당하게 됩니다. 2015년에는 아시아 태평양 주간이 있는데요. 올해 2015년에는 5월 18일부터 29일까지 베를린 아시아 태평양 주간(THE ASIA-PACIFIC WEEKS BERLIN) 행사를 갖습니다.

어떤 작품을 주로 하는지 여쭤봤다.

쾨펠 연숙: 작품은 여러 분야를 다룹니다. 아주 전통적인 베를린 건물들, 도시 풍경들을 그리는 가하면 인물도 하고, 그리고 인물을 다루다 보니까? 현재 하고 있는 작업 중의 하나는 ‘최후의 심판’이라는 시리즈 테마입니다. 이 테마로는 남편인 마티아스 쾨펠 교수와 함께 각자 자기가 본 최후의 심판을 그려서 전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작업은 서로의 대화 속에서 공통점을 찾아가며 각자 자기가 본 각도의 최후의 심판을 제작하는 것입니다. 미켈란젤로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인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벽화 최후의 심판인데 이 그림을 그릴 때 미켈란젤로는 루카 시뇨렐리가 이태리의 돔 오비에토에 그려놓은 최후의 심판을 보고, 그 중 군상의 구도를 자기 작품에 도입해서 그렸다고 합니다. 우리도 시뇨렐리 최후의 심판을 모델로 제각기 자기가 본 현대식 최후의 심판을 제작하는 작업을 시리즈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독일에서 많은 상을 받은 이야기도 들어보자!

쾨펠 연숙: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방송국에서도 초청해줘 전시도 하고, 베를린에서는 가장 큰 신문인 B.Z 신문사에서 2013년에 문화상을 수여 받았고, 2014년에는 12월 28일에는 ‘이 해의 음악가’로 믹 잭커에게 돌아갔다며 저보고 믹 잭커의 그림을 그려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습니다. 그림은 끝냈습니다. 이제 독일 사회에서 계속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활동하다 보니까? 신문에서 자주 찾아줍니다. TV 방송에서도 자주 소개해 주고요. 그래 방금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독일이라는 나라는 성경 구절에 나오는 것 같이 ‘두들겨라 그러면 문이 열린다’ 라는 것이 상통되는 나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자기만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는 하루에 적어도 5-6 시간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재 독한국문인회 활동에 대한 이야기다.

쾨펠 연숙: 재 독한국문인회의 6대 회장으로 작년 2월에 선출됐습니다. 우리 문인회에서 항상 하는 것은 일년에 한 번씩 회원 집 출간하고, 봄 세미나를 갖습니다. 가을에는 후세대 한글 장려하는 행사로 차세대 청소년 백일장 대회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희 독일에 뿔뿔이 헤어져 살고있는 회원들을 하나로 묶고 우리 문인회 활성화를 위해서 북부 중부 남부의 지부로 나눠서 활동하는데, 한국에서도 저희 문인회와 교류하고 종합예술문예지에는 문인회 회원들의 작품이 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데 저희가 중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한국문학이 유럽에 정착하는 데 저희들의 임무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좋은 글을 쓴다는 것,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마음을 정진하고, 좋은 책들을 많이 읽어야 된다는 것, 이런 것들이 저희가 해야 할 의무인 것 같습니다.

부모님 고향이 이북이어서 통일되면 고향에 가서 할 일도 있단다.

쾨펠 연숙: 만약에 통일이 된다면 일단 아버지 고향인 평양에 가서 보고 싶고요. 아버지가 가졌던 땅에다 박물관을 짓고 싶은데요. 박물관 안에는 문화회관도 만들어서, 북한에서 작가 활동하는 젊은이들에게 만남의 장을 만들어서 전시의 기회도 주고 싶습니다. 통일 한국으로 가는 길은 결국 예술인들이 함께 연대해서 행사를 해야 하니까? 음악인이나, 미술인이나, 아니면 문학인이 다 함께 하는 ‘종합예술 포럼장소’를 만들고 싶어요. 정말 북한 작가들이 베를린에 와서 가끔 전시를 하는데 어떤 특정인들은 하지만, 정말 재주는 있지만, 여건이 안 돼서 못 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발굴해서 전시도 해 주고 또 유럽의 중심지인 베를린에서도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겠지요.

지구촌의 한인들 오늘은 시인이자 수필가인 재독 교포 쾨펠연숙 화백의 이야기로 함께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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