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군시설 밀집 ‘자강도’ 뜻밖에 큰 피해
2024.09.26
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주입니다.
-자강도 수해로 망가진 도로와 철길 1달 반 동안 복구 못해
-소식통 “군수시설 피해 심대한 듯”
-북한 당국 “수해 상황 외부에 알리면 지위를 막론하고 국가반역죄로 처벌한다”
-‘남편이 간부면 부인도 간부’라는 북한에서 간부 부인들이 갑자기 취직하는 이유?
진행자: 서울도 쌀쌀해졌으니 양강도, 자강도 지역은 이제 아침, 저녁으로 춥겠습니다. 김 기자, 최근 수해를 입은 자강도 소식이 전해졌다고요. 신의주나 양강도에 비해 그동안 자강도 수해 소식은 거의 없었는데 당시 주민들의 고생이 컸던 것 같습니다. 소식통이 전해온 수해 상황은 어땠습니까?
김지은 기자: 네, 요즘 북한 자강도 일대의 기온은 한국보다 꽤 싸늘하다고 합니다. 추워지기 전에 공사가 마무리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기상 예보에 따라 자강도 역시 수해가 발생하기 며칠 전부터 주민들에게 대피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수해를 겪어보지 못한 대부분의 주민은 당국의 홍수 대피 지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합니다. 자강도의 경우, 대부분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그동안 수해 피해가 드물었기 때문인데요. 주민들은 설마 폭우가 내려봐야 홍수까지 나겠냐는 안일한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뜻밖에 큰 홍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주민들은 높은 산, 깊은 계곡의 물이 합쳐지면서 더 큰 피해로 이어졌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오히려 자강도의 지리적 특성 때문에 홍수 피해가 더 컸군요.
김지은 기자: 그렇습니다. 소식통은 자강도 사람들이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큰 수해를 겪었다고 전했는데요. 특히 강변에 있는 주택과 아파트 주민들은 당국의 지시에 따라 신속하게 산으로 대피했고 안전부와 보위부 등 사법기관 외에 주변 지역에 주둔한 군부대까지 동원돼 주민들을 통제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위험하니 물이 차 있는 지역으로 내려오지 말라고 통제한 것이죠.
그런데 수해가 발생하고 닷새 동안이나 군인들의 철통 경계와 통제를 받으며 산에서 각 조직별, 기관별로 옴짝달싹 못 하고 갇혀 있느라 굶주림과 정신적 고통은 말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5일 만에야 간신히 하산할 수 있었습니다.
진행자: 신의주나 양강도 지역에 비해 자강도 지역의 피해 상황은 거의 전해지지 않았잖습니까? 도로, 철도가 끊겨서 소식이 나올 수 없었다 이런 추정도 나왔는데요. 소식통은 어떻게 얘기합니까?
김지은 기자: 네, 우선 주민들이 이동할 수 있는 도로와 철도가 끊기고 수해로 인해 자강도 주민들의 불안과 불만이 커질 것을 우려한 당국이 강력하게 통제하면서 신의주나 양강도보다 수해 소식이 차단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강도는 도 전체가 군수기지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갱도(터널)화 되어 있는 군수기지가 침수되면서 그 실태가 외부로 나가는 것을 꺼린 것으로도 보입니다. 요즘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핵 관련 시설을 시찰한다는 보도가 부쩍 늘어난 것도 이런 피해를 은폐하기 위한 의도도 있을 것으로 봅니다.
최근 소식통이 전한 자강도 홍수 상황을 보면 자강도의 군수 시설도 침수를 면할 수 없었고 심대한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북한 당국이 수해를 입은 지역, 자강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외부와의 불법 전화 통화를 하는 대상을 소속, 직위를 막론하고 국가반역죄로 처벌하며 피해 상황이 외부로 전달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진행자: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기사에서는 식수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도했지만 다른 여러 가지 문제가 남아 있다고요?
김지은 기자: 식수 문제 외에도 식량부족이나 생필품 부족이 동반하고 있어 자강도 주민들이 큰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수해를 당한 자강도 지역 주민들에게는 다른 수해 지역과 달리 식량 지원이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고 어린이들에게 쌀 강정과 같은 약간의 당과류 간식이 한 번 공급된 것이 당국이 수해민들에게 해준 혜택의 전부라고 합니다.
소식통이 한 달 반 그러니까 45일 동안 도로와 철도가 복구되지 못했다고 했는데, 이런 영향으로 지원 물자가 들어갈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자강도 주민들은 5일 만에 산에서 내려왔지만 홍수 피해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고 전했습니다.
대부분의 단층집은 홍수에 쓸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남아 있는 아파트도 2층 높이까지 흙감탕이 들어차 있어 그것을 퍼내는데 주민들이 동원되었습니다.
압록강을 낀 자강도에는 내륙에 장자강(독로강)이 있습니다. 그래서 강둑이 넘어나거나 붕괴될까 초긴장 상태였다고 합니다. 다행히 우려했던 장자강 강둑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강도의 많은 도로와 철길이 여지없이 끊어지고 파괴되어 초기에는 어느 것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정도여서 복구에서 속도를 낼 수 없었다고 소식통은 전했습니다. 특히 외부에서 차량이 들어오고 복구 물자, 복구 인원, 식량을 운반해야 하는데 그것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고 합니다.
수해가 나고 자강도에 외부 물자가 유입된 것은 한 달 반이 지나서 즉 45일 후에야 겨우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먹을 물도 없고, 식량도, 부식물도 아무 생필품도 없이 견뎌냈을 자강도 주민들의 고통을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마저 국가 시설의 수해복구가 우선 순위이니 일반 주민들의 생계 따위는 어디에 하소연조차 할 수 없었지요.
그리고 자강도 주민들의 가장 큰 어려움을 신발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원래도 신을 신발이 변변치 못했던 일반 주민들이 수해로 집이 떠내려가고 나니 외출하려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꿰진(구멍 난) 신발이라도 돌려가며 신어야 할 형편이고 어린아이들이 어른 신발을 끌고 다니는 광경이 종종 목격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습니다.
진행자: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우선 해결해야하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김지은 기자: 주민들이 가장 필요한 것은 식의주입니다. 주민들의 먹고, 입고, 쓰고 사는 문제가 안정되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 당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면 주민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생계 활동의 조건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데 북한 당국은 그런 용단을 내리기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한때는 코로나 때문에 바이러스 유입을 막는다고 국경을 봉쇄했는데 지금은 그마저 구실이 되지 않습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 상황에도 국경을 열고 상호 왕래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북한은 현재까지 국경을 개방하지 않고 있습니다. 통제로서 북한 주민들의 당과 수령에 대한 사상 정신을 걷잡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지만 지금 주민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어림없는 일입니다. 국경은 물론 도 간의 왕래를 자유롭게 하면서 주민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련소식>
진행자: 다음 소식입니다.
각 지방 당 위원회, 인민위원회, 안전부 등 국가기관 간부 아내들이 단체로 농장, 목장 등 어렵고 힘든 부문에 진출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다급히 직장에 들어가는 부인들이 늘고 있다는데 일종의 꼼수네요. 그런 원래 북한 간부 부인들은 일을 안 합니까?
안창규 기자: 간부 부인이라고 다 일을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아무 일을 안 하고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성이 많습니다. 남편 덕에 먹고 살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니 가사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거나 남편 뒤바라지(내조)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원칙적으로 모든 인민이 조직에 속해있습니다. 직장에 다니지 않는 가두 여성(주부)도 조직 생활을 해야 하는데 당원이냐 아니냐에 따라 읍(혹은 동) 당위원회나 여맹위원회에 속해 조직 생활을 해야 합니다. 또 쩍하면 읍 사무소가 조직하는 각종 사회적 동원에도 빠짐없이 참여해야 합니다.
북한 당국은 가사일을 하는 가두 여성들이 자본주의 사상을 비롯한 온갖 잡사상에 쉽게 물들 수 있다며 최근 이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직장생활보다 읍(동) 소속 생활이 더 힘들다고 말하는 북한 여성들이 많습니다.
결국 이런 통제를 피하기 위해 남편의 도움을 받아 실제 직장에 다니지 않지만 다니는 것처럼 하는 간부 부인도 있고, 8.3 노동자(직장에 등록하고 출근 안 하는 노동자)로 매달 일정한 돈을 내고 출근은 하지 않으며 집에서 노는 간부 부인도 있습니다.
또 일하는 경우에도 힘들지 않고 먹을 알도 있는(이속을 챙길 수 있는) 직업이나 직종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의 직책이 높아야 안해(아내)가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 각 지역에 있는 도서관, 책방, 각종 상점, 유치원, 탁아소 같은 곳은 여성들로 꾸려진 기관인데 이런 데서 일하는 노동자 부인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지역 내 간부 안해들인 데 특히 이런 기관의 행정 혹은 당 책임자는 다 높은 간부의 안해들입니다.
진행자: 간부 부인들을 힘든 부분에 진출시키는 이유는 남편을 도와 당 정책 관철에 앞장서는 모범을 보이라는 것이라고 하죠. 과거에도 이런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속되지 않은 것을 보면 크게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는 좀 다를까요?
안창규 기자: 말씀하신 것처럼 과거 김정일의 지시로 지방의 당 간부, 행정 간부, 사법기관 간부 등의 안해들이 가족작업반, 가족분조를 조직해 단체로 농장에 진출하거나 남들이 꺼리는 도로 관리원, 온돌 수리공, 구두 수리공으로 일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는 북한이 극심한 ‘고난의 행군’을 겪던 때라 간부 아내들이 남들이 꺼리는 곳에 진출해 일하는 선행이 주민들에게 감흥을 주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 북한 주민들의 의식이 많이 변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만큼 20~30년 전에 벌였던 캠페인이 당사자인 간부 부인들은 물론 일반 주민에게도 별로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권력이 모든 것을 좌우지하는 북한에서 ‘남편이 간부면 아내도 간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최근 북한 간부 부인들이 다급히 직장에 들어가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한 북한 주민 소식통이 간부 부인들이 지금은 일반 노동자로 들어가지만 좀 있으면 편하고 먹을 알 있는 좋은 자리로 옮겨 갈게 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말 한마디가 간부 아내들의 사회진출에 대해 정확히 평가하고 있다고 봅니다
진행자: 이렇게 결과가 뻔히 예측되는데도 다시 이런 정책을 내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안창규 기자: 그만큼 민심이 북한 당국에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다시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3대째 권력이 세습되면서 수령 일가에 대한 주민들의 평판이 나빠졌습니다.
고난의 행군 이전에는 북한에서 지도자의 지시나 당국의 지시에 토를 달거나 불만을 표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들은 계속 발전하는데 우리는 왜 점점 더 못살까', ‘우리도 개방하면 중국보다 더 빨리 발전할 수 있을 건데’ 등등 과거 같으면 당장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야 할 발언도 노골적으로 합니다.
경제난 지속으로 주민 생계가 어려워지는 것과 더불어 주민 통제가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되면서 과거 볼 수 없었고 들을 수 없었던 일들이 북한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외교관을 비롯한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이 증가하는 것도 그 연장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최근 김정은이 여러 기회에 ‘송구하다’, ‘미안하다’, ‘노력과 정성이 부족했다’ 등의 발언을 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과 같은 행동은 김정일 때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모습입니다. 김정일 때는 그러지 않아도 됐지만 지금은 지도자인 김정은이 공식 장소에서 주민을 향해 양해를 구하거나 사과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이런 연장선에서 북한 당국이 간부들을 일반 주민보다 앞장서서 당국의 지시와 의도를 따를 것을 요구하는 겁니다. 문제는 당국이 20여 년 전에 했던 캠페인을 다시 들고나온 건데 초기에 성과가 있었던 캠페인도 시기가 지나면 그 의미가 퇴색되는 게 보통입니다.
김정일 때 시작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 3대혁명소조운동, 포전담당제, 70일 전투, 100일 전투 등의 북한 대중 운동과 사회적 조치가 과거에 보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명색만 남아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
한 발 더 나가야하는 이제는 바뀌어야 하는 시점이라는 걸 잘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김지은, 안창규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