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진행자: 북한의 중부 내륙지방에서 아직 수확해야 할 시기도 아닌 감자를 도둑 때문에 이미 캐서 방 안에 쌓아놨다고 합니다. 어떤 상황인 걸까요? 손혜민 기자와 함께 자세히 알아봅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기사를 보면 평안남도와 황해도 등 북한 중부 내륙지역에서는 3월 중순에 감자를 심어서 하지(6.21)이후에 수확하는데요. 2주 이상 빨리 감자를 캔 이유가 도둑 때문이라고요?
손혜민 기자: 그렇습니다. 작년 이맘 때도 평안도를 비롯한 내륙 지역에서 텃밭 감자 도둑이 성행하다 못해 일부 주민들 속에서는 강도 행위까지 나오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이 전한 바 있는데요. 감자 도둑 사례가 북한 사회에서는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감자 한 알이라도 도둑 맞지 않으려고 5월 중순부터는 온 가족이 밭에서 잠을 자면서 경비를 서거든요. 감자 밭 둘레에 가시가 뾰족한 나무 울타리를 빙 둘러 쳐 놓고 경비를 강화하는 주민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소용 없습니다. 경비를 서든 가시나무 울타리를 치든 감자 도둑은 막을 수 없는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건데요. 오죽 배가 고프면 그럴지, 그만큼 북한의 생계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텃밭 감자를 지키려는 주민이나 텃밭 감자를 어떻게 해서든 몰래 캐어 가려는 주민들 모두 목숨과 달려 있는 생존과의 투쟁이라는 말이죠. 이로부터 나온 대안이 애써 농사지은 텃밭 감자 수확을 조기에 앞당긴 것인데요. 6월 하지에 수확해야 하는 올감자 수확을 1개월 이상 앞당긴 5월 말에 끝냈다는 것입니다.
수확량이 절반으로 줄어도 감자를 도둑 맞는 것보다 낫다?
진행자: 그런데 지금 한창 감자 알이 커질 때라 미리 캐면 그것도 손해가 크지 않을까 싶은데, 도둑이 가져가는 것보다는 나은 상황이라는 거겠죠?
손혜민 기자: 그렇습니다. 손해는 막심하죠. 보통 평안도를 비롯한 황해도 등 내륙지역에서는 3월 중순부터 말경에 텃밭에 감자를 심는데, 그때로부터 50일 정도 지나면 감자꽃이 핍니다. 감자는 뿌리작물이어서 꽃이 피기 시작하면 새알 만한 감자가 달립니다. 그때부터 감자 크는 속도는 하루가 다른데요. 다시 말해 5월 중순 이후부터 6월 하지까지 1개월은 감자 수확량을 좌우하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월 말에 미리 텃밭 감자를 수확하면, 200kg 수확할 수 있는 텃밭 부지에서 100kg의 감자도 수확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텃밭 감자를 조기 수확하는 것은 귀한 식량인 감자를 통째로 도둑 맞는 것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도둑 맞으면 더 큰 손해라고 인식하고 있으니까요. 햇강냉이(햇옥수수)는 7월 중순부터 먹을 수 있는데, 그 사이 텃밭 올감자가 가족의 식량으로 정말 큰 보탬이 되거든요. 장사를 하는 주민의 경우에는 다음해까지 부식물 재료로 보탬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북한의 식량난이 감자를 사이에 두고 선한 사람의 품성까지도 도둑으로 내몰 뿐 아니라 텃밭 농사까지도 인위적으로 변화시키는 시대적 문제로 부각되는 겁니다.
관련 기사
감자를 아랫방에 모셔 두는 이유
진행자: 그렇게 미리 수확한 감자는 가족이 자는 살림집 방 안에 들여놓는다고 하셨는데요. 양이 꽤 될 텐데 도둑 때문에 계속 방 안에 두고 먹거나 내다파는 겁니까?
손혜민 기자: 네. 방 안에 감자가 가득해집니다. 텃밭 감자를 도둑 맞지 않겠다고 미리 수확하지만, 그런다고 안전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원래 감자는 살림집 창고나 땅 속 움에 넣어 보관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세월은 ‘소가 말할 때’죠. 1990년대 식량배급제가 무너진 이후 도둑이 많아지다 보니 텃밭 감자 도둑은 도둑도 아닙니다. 창고에 감자를 넣으면 그건 이미 도둑의 감자라는 우스개 말도 있죠. 따라서 텃밭이 많아 감자를 수백 kg 수확하는 집에서는 방안에 창자(바람이 잘 통하게 만든 보관용 설비)를 만들거나 부엌에 창자를 만들어 감자를 보관합니다.
흙이 부슬부슬 떨어져 집안이 좀 지저분해져도 도둑 맞는 것보다 훨씬 낫죠. 감자를 보관한 창자에 보자기 천을 씌워 놓고 가족이 먹을 반찬을 해야 하거나, 장마당에 팔아야 할 때 보를 제끼고 감자를 꺼내는 겁니다. 5월 말에 캐니까 큰 감자도 있고 작은 감자도 있는데, 이것을 큰 감자와 작은 감자로 분리해서 큰 감자는 장마당에 팔고, 작은 감자는 가족이 반찬으로 소비합니다. 집 안에 있어도 감자는 결코 안전하지 않죠. 농촌은 농촌 대로 도시는 도시 대로 북한에서는 도둑의 성격도 다른데요.
말이 난 김에 좀 더 얘기하자면, 얼마나 도둑이 많으면 북한 주민들의 생활 문화까지 바뀌었겠나요. 예를 들어 돼지는 당연히 돼지우리에서 길러야 하지만, 북한 실정에서는 상상도 못하죠. 살림집 안에서 돼지를 기르는 이유는 딱 하나, 도둑 방지 차원입니다. 훔쳐가면 소리를 질러대는 돼지도 집안에서 기르는데,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는 감자는 말할 것도 없죠. 장마당이 발달한 지역일수록 도둑 행태는 더 심각합니다.

‘업힌 자가 업은 자에게 사기 치는’ 도둑이 없어지려면…
진행자: 그럼 이렇게 다들 감자를 영글기도 전에 캐서 집안에 둔다 해도 감자 도둑 걱정이 사라지진 않겠네요.
손혜민 기자: 그렇죠. 일단 북한에서 도둑 걱정은 늘 하고 산다고 봐야 합니다. 감자 도둑이 생계형 도둑이라면, 달콤한 거짓말로 상인의 쌈짓돈을 가져가는 사기는 범죄형 도둑인데, 이런 도둑은 북한 도시에서 정말 흔합니다. 한국에도 금융 사기 등이 나타나곤 하지만, 민법과 형법으로 엄중하게 다스려져 상인들이 안정된 장사를 할 수 있지 않나요.
북한에서도 장사하면 밥은 먹고 살 수 있고 일정 정도 돈을 모아 창업도 할 수 있겠지만, 제도적으로 개인의 재산을 인정하지 않으니 시장 활동 또한 보호되지 않고, 임의 시각에 시장 자체를 통제하고 있어 잘 나가던 상인도 하루아침에 망해 그냥 도둑이 아닌 범죄형 도둑이 되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사업하다 망하면 개인의 채무를 탕감해주는 제도까지 있어 놀랐습니다. 이런 제도가 북한에도 있다면 특수부대 능가하는 도둑과 협잡 행위는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을 겁니다. 북한의 시장은 도둑을 양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 때문에 ‘업힌 자가 업은 자를 사기치는’ 범죄형 도둑이 활개치기 일쑤인데, 김정은 정부가 북한의 식량난을 먼저 해결하고 장마당을 법적으로 보호해준다면 사회적 범죄가 근절될 것이라고 제언하고 싶습니다.
진행자: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