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북한주민에 배포하는 연력값 500원, 노동자 월급 5분의 1 가격
- 군 출판사 대중역서 제작사로 첫등장? 의미는?
- 중국에서 귀국 화교에 북한 당국의 첫 요구는 동상에 바칠 꽃값
- 화교들은 왜 북한 귀환길 오르나?
새해이니 달력 얘기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
김 기자 , 북한 달력 입수하셨죠, 올해 달력으로 본 북한의 1년, 어떻습니까?
김지은 기자 : 네, 올해 북한이 발행한 12장짜리 달력과 1년을 한 장에 담은 력서(연력)를 입수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매일 단위로 365일 나눠진 것은 일력, 12개의 월 단위로 나뉜 것은 달력이라고 하죠. 남한에서는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북한에는 1년 365일을 한 장에 인쇄한 연력이 나옵니다. 북한에서는 기걸 력서(연서)라고 부릅니다.
북한에서 력서는 당국이 주민들에게 배부하지만, 달력은 일부 간부에게만 배부하고 일반 주민들에게는 판매합니다. 이런 력서도 그냥 주는 게 아니라 1개당 500원(0.05달러)에 판매하고 있는데요, 북한에서 노동자의 1달 로임, 월급이 평균 2,000~2,500(0.29달러)원이니 력서 1장 가격이 월급의 4분의 1, 5분의 1인 셈입니다.
지난해와 달라진 점도 눈에 띕니다. 제가 입수한 력서에는 미사일 발사 장면과 대동강반의 배(유람선) 식당 사진이 실렸는데 각각 ‘주체강국의 위상’이라든지 ‘내 나라 제일로 좋아’라는 문구가 인쇄돼 있습니다. 또 군 총정치국 직속 출판인쇄공장에서 제작한 초병 력서, 그리고 포신을 배경으로 한 해군함선 력서에는 ‘미제 침략자들을 소멸하자’라는 당국의 정책 기조를 력서에 구호로 밝히고 있다는 점이 새롭습니다.
제가 몇 년째 북한 달력과 력서를 입수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군부가 주민들에게 보급하는 대중 역서 제작에 나선 것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올해의 특이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미사일, 함선 등 무기 개발을 중점 추진한다는 의미로도 보입니다.
반대로 지난해와 달라지지 않은 점도 있습니다. 올해 달력 역시 종이가 형편없다는 것입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대중력서는 종이 색깔이 누렇고 얇아서 자칫 찢어질 수 있기 때문에 벽면에 풀을 발라서 떨어지지 않게 붙여 놓아야 할 정도라고 합니다. 또 종이가 없어서 역서를 제때 생산하지 못해 주민들이 올해는 달력이 나오지 않는가 하고 의심까지 했다니 북한의 경제가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역서에 쓰여 있는 '주제 강국의 위상'이라는 말이 무색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새해 달력이 나오면 올해 빨간날 그러니까 쉬는 날이 며칠인지 먼저 확인합니다. 북한은 어떤가요?
김지은 기자 : 아마 안 기자도 동의할 텐데, 한국에 와서 참 신기한 분위기 중 하나가 지금 말씀하신 그 부분입니다.
안창규 기자 : 맞습니다. 북한에는 빨간날을 확인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대부분은 관심이 없습니다. 북한은 아직 주 6일 근무제이고 제일 큰 4대 명절 때 휴식일이 고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김지은 기자 : 북한 주민들은 온전한 개인의 삶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남한의 사람들은 국가공휴일, 명절을 계기로 휴가를 내고 외국 여행을 가거나 자기만의 계획을 날짜별, 월별로 계획할 수 있기 때문에 공휴일에 관심이 많지만 북한은 공휴일도 온전히 휴식을 쉬하는 날은 아닙니다.
올해는 남한 공휴일을 세어보니 68일, 토요일 일요일을 포함하면 119일을 쉰다고 하더라고요, 1년 365일 중 실제 일할 날짜는 246일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새해 달력을 보노라면 내가 정말 얼마나 살만한 세상에 사는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일하고 마음껏 즐기는 세상이니까요.
다음 소식입니다 . 김 기자, 12월 북한 내부 학습 제강을 보도했는데요, 어떤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까?
김지은 기자 : 네, 지난 12월 북한에 배포한 강연제강과 학습제강을 입수했는데 자료는 우상화, 주민 통제, 군사 증강 이렇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학습제강과 강연제강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텔레비전에서 밝히지 못하는 사회적 문제들이 학습과 강연을 통해 주민들에게 전달되고 각성하도록 하기 때문에 이 자료들은 북한 당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해 봐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자료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12월은 김정일이 사망한 달이니 관련된 강습이 많습니다. 김정일을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입니다.
이와 함께 김정은 관련 자료도 2건 포함됐습니다. 김정은의 명언과 교양자료 등을 해설하고 있는데 이 문건은 제목부터 ‘우리당 강화 발전의 최전성기를 열어놓으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불법의 업적에 대하여’입니다. 지금을 북한의 “최전성기”로 규정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특히 주목되는 자료는 근로청년용 강연제강,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은 원수님은 병사들에 대한 열화와 같은 사랑으로 인민군대를 무적의 혁명강군으로 강화발전시키신 절세의 위인이시다’ 입니다. 근로하는 청년이라면 평균 30대인데 자기 또래와 비슷한 김정은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당국이 강압적으로 주입해 세뇌하는 내용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사로 보도한 ‘새로 제정된 국가의 법들을 잘 알고 그 요구를 철저히 지킬데 대하여’ 학습제강입니다. 제강에 따르면 간부들은 12월 한 달 동안 강의 1시간, 당원과 근로자들은 45분의 학습을 진행합니다. 특히 실제 자료와 밀접히 결부하여 실속있게 진행하라 강조하고 있습니다.
문건에서는 새로 제정된 법으로 2023년 초에 발표된 평양문화어보호법, 국가비밀보호법, 적지물처리법 그리고 과학인재관리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과학인재관리법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한과 관련이 있는 법이네요 . 특히 평양문화어보호법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통제가 어렵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김지은 기자 : 그만큼 주민들 속에 한국어가 많이 퍼져 있으니 괴뢰말 찌꺼기라고 폄하하면서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말과 글, 풍속은 누구의 통제나 감시에 의해 이뤄지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말까지 통제한다는 건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얼마나 강하게 통제하는 보여주는 척도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도 북한 당국이 ‘오빠’, ‘누나’라는 말을 괴뢰말로 분류하는 것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식통은 주민들이 ‘오빠’, ‘누나’라는 말은 우리 민족이 조상 대대로 사용해 오던 것인데 어떻게 이제 와서 괴뢰말이 되냐고 반문한다고 전했습니다.
북한은 2023년 국경을 개방했으나 아직 코로나 이전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개방 중 또는 개방 준비 중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해 보이는데요, 이런 가운데 중국 체류 북한 화교가 3년 만에 귀갓길에 올랐다고요?
안창규 기자 : 지난해 12월 22일 동짓날 코로나 감염병 사태로 북한을 떠나 중국에 체류하던 화교 70여 명이 단동을 거쳐 신의주로 입국했습니다. 이번에 귀국한 대상은 주로 평양시, 평안남도, 평안북도 등 북한 서해안 지역에 사는 화교들로 북한에 안해(아내)나 자녀가 있거나, 오랫동안 비워 둔 집이 걱정되거나, 중국에서의 생활이 여의치 못했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번 귀국 행렬에 함경북도, 함경남도, 양강도 등 북한 북부와 동해안 지역에서 살던 화교들은 거의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신의주에서 북한 동북부 지역으로 가는 교통이 매우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목적지까지 기차를 몇 번 갈아타거나 며칠에 한 번 겨우 운행되는 신의주-청진 완행열차로 2~3일을 가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북한 북부 지역으로 귀환해야 하는 화교들은 이번에 제외한 것인가요 ?
안창규 기자 :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북한 전체 화교 규모가 5천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는데 코로나 봉쇄 시기, 경제적 어려움으로 약 70%는 중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번 귀환이 70명이니 이후 2, 3차 귀환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소식통은 가까운 시일 내에 나선, 온성, 회령 등 북쪽에 위치한 교두를 통한 귀국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아직 중국에 남은 화교들이 제일 큰 우려는 북한이 이전처럼 중국으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허용할지, 또 중국 물품의 대량 반입을 허용할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중국으로 오갈 수 없거나, 중국 물품 반입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북한 귀국을 포기하는 화교들이 더 증가하겠지요.
이미 북한 거주를 포기하고 중국에 남기로 결심한 화교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결국 화교들은 북한 당국의 결정을 주의 깊게 지켜볼 것으로 보입니다.
보도 중 귀국 화교들에게 북한 당국이 먼저 걷은 돈이 김일성 , 김정일 동상에 바칠 꽃바구니 값이었다는 부분이 주목됩니다. 이런 행태를 보면 회교들은 왜 북한으로 돌아가려 할까,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안창규 기자 : 네, 이번에 1차로 귀국하는 모든 화교들에게 신의주에 들려 광장에 있는 김일성, 김정일 동상에 꽃바구니를 증정하게 된다는 안내문이 전달되었고 꽃바구니 준비를 위해 1인당 중국 돈 20위안(미화 2.8달러)을 바쳤습니다. 북한을 너무 잘 알고 있는 화교들인 만큼 이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고 합니다.
화교들이 북한보다는 살기 좋은 중국을 뒤로하고 돌아가려 하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중국에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이 전혀 없거나 혹은 중국에서 자기가 살 집을 마련할 정도의 자산이 없는 경우입니다. 또 아내나 자녀 중에 북한 국적자가 있는 경우입니다. 아무리 한 가족이라고 해도 북한 국적자는 중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없습니다. 결국 화교가 이혼 혹은 자녀와의 이별을 결심하지 않는 한 중국에 계속 남아 있을 수는 없는 겁니다.
중국보다 북한에서 돈을 쉽게,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판단도 중요한 이유가 될 겁니다. 지금까지 화교들은 중국 물품을 북한에 가져다 팔아 돈을 쉽게 벌었습니다. 대부분의 화교들이 북한에서 돈주로 불렸을 정도입니다.
북한 경제가 회생하지 않는 한, 화교들은 이전처럼 중국을 자주 오갈 수만 있다면 돈을 쉽게 벌며 편안히 살 수 있는 겁니다. 이런 부분은 화교들이 중국보다 자유롭지 못한 북한 거주와 생활의 단점을 해소하고도 남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제 코로나 시기는 옛날인데 북한은 아직 코로나 봉쇄를 모두 해제하지 않았습니다 . 올해는 주민들의 생활에 보탬이 되는 수준으로 개방 가능할까요?
김지은 기자 : 올해는 작년에 비해 좀 더 개방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 개방이라는 의미가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개방은 선택의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북한의 경제는 북한 당국의 주장과는 다르게 의존성이 큽니다. 특히 중국에 거의 모든 것을 의존하고 있는데요.
중국의 소식통들은 이달부터 세관이 열리고 조-중 친선적인 물적, 인적교류가 한층 심화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루속히 국경이 개방되어서 북한 주민들이 더는 배고프지 않고 춥지 않게 겨울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안창규 기자 : 현재 상황으로 볼 때 북한은 아직 코로나 감염병 차단과 연관된 봉쇄조치를 완전해 해소할 의도는 없어 보입니다. 북한의 보건의료 현황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도 요인이지만 봉쇄가 북한 당국이 반동사상문화로 규정한 외부 사상조류와 문화 유입 차단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북한이 완전한 국경 봉쇄 해제보다는 당분간 부분 해제, 즉 당국이 필요한 물자 유입과 인원 입국만 허용하는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주민은 물론 간부들에 대한 내부 통제가 강화되는 것과 동시에 자력갱생이 강조되고 있는 현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런 전망에 무게가 실립니다.
결과적으로 주민 생활개선 속도는 좀 더디더라도 주민 결속 강화와 내부의 가능 자원을 총동원해 김정은이 관심을 가지는 주요 목표 달성을 꾀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면 국경 개방은 2024년에도 요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