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적국’ 남한에 대한 북한 주민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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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통일’ 없애려다 ‘장군님’까지 없애

-갑자기 한민족이 다른 민족? 북한 주민 반응

-하수도 뚜껑만 닫으면 전염 예방 가능?

-전염병 재발 가능성에 불안한 북한 당국

한국을 적국으로 규정하고 본격적인 ‘남한 지우기’에 나선 북한 당국, 주민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봅니다. 봄을 맞아 위생월간이 시작되면서 북한 주민들은 변소와 하수도 뚜껑을 씌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전염병 예방이 가능한 걸까요? 관련 소식 손혜민, 문성휘 기자와 함께 자세히 알아봅니다.

이예진: 북한의 ‘통일 지우기’ 작업이 가속화되면서 부작용이 생긴 것 같습니다. 문성휘 기자, 바위에 새겨진 ‘조국통일’ 문구를 지우려다 김일성 찬양 구호 바위를 깨뜨리는 일이 생겼다고요?

문성휘: 네, 진짜 황당한 사건입니다. 2월 13일, 양강도에 있는 혜산-삼지연 도로 혜산시 연풍동에서 화전리 사이 구간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하는데요. 이 구간에서 구호바위가 통째로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북한 소식통들이 말하는 '구호바위'는 김일성 일가를 찬양하는 구호가 새겨진 바위를 뜻하는데요. 해당 바위의 양쪽 면에는 도로를 오가는 사람들이 잘 볼 수 있게 "김일성 장군 만세!" "조국통일 만세!"라는 구호가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구호바위는 둘레가 1.5미터 정도였고 높이가 3.5미터 정도로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덩치는 작았지만 바위에 홈을 파서 구호를 새기고, 글씨에 빨간 색을 입혔다고 하고요. 양강도 구호문헌 관리국에서 해마다 바위 주변의 풀과 나무를 제거해 멀리서도 구호가 아주 선명하게 잘 보였다고 하는데요.

워낙 덩치가 크지 않았던 구호바위가 김정일의 생일을 앞두고 갑자기 사라지니 주민들은 체제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의 파괴 행위로 의심해 주변의 가까운 국경경비대와 연풍동 분주소(파출소)에 잇달아 신고까지 했다고 하고요. 신고를 받은 분주소의 안전원(경찰)들과 국경경비대 대원들이 황급히 출동하는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졌다고 소식통들은 전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구호바위는 양강도 구호문헌 관리국에 의해 복원 불가능하게 훼손이 되어 다급하게 치워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연은 이랬습니다. 모든 선전문구와 구호에서 ‘통일’이라는 단어를 삭제할 데 대한 중앙의 지시가 내려오면서 양강도 구호문헌 관리국도 ‘통일’이라는 단어 지우기에 나섰는데요. 문제는 바위에 깊이 파서 새긴 구호를 억지로 지우는 과정에 물리적인 힘이 과도하게 집중되어 결국엔 바위가 부셔졌다는 얘기입니다.

이예진: 문구를 어떤 방식으로 지우려고 했기에 바위를 깨뜨린 걸까요?

문성휘:워낙은 쇠못 같은 것으로 때려서 글자를 조금씩 지워야 하는데 빠른 시간 안에 급하게 지우려다 보니 광산에서 바위에 폭약구멍을 내는 용도의 착암기를 사용했다고 하는데요. 애초 해당 바위의 구호도 손으로 한 땀, 한 땀 새긴 것이 아니라 착암기로 새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구호를 새길 때부터 무리하게 바위에 힘을 주어 보이지 않는 균열이 많이 생겼다는 거죠. 그런 바위에 또 착암기를 대고 글자를 지우려 하니 물리적인 힘을 견디지 못하고 폭삭 부셔졌다는 것이 소식통들의 얘기고요.

괜히 “조국통일 만세!”라는 구호를 지우려다 “김일성 장군 만세!”라는 구호까지 완전히 파괴돼 버렸다는 것입니다. 김일성 일가를 찬양하는 구호가 파괴되었으니 누군가는 분명히 무거운 책임을 졌을 텐데, 아쉽게도 소식통들은 누가,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이예진: 북한은 지금 멀쩡하던 바위를 깨면서까지 신속하게 통일 관련 흔적을 지우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역시 주민들의 몫인데요. 적대적으로 대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동안 하나의 민족으로, 통일의 대상으로 여겼던 한국이 하루아침에 '적국'이 된 이 상황을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문성휘:북한 주민들도 몹시 놀랍고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일단 소식통들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김정은이 "우리 공화국의 민족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한다"라고 주장했을 때 남북 관계에서 무언가 큰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고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남한의 당국자들이 당장 전쟁으로 번질지도 모르는 용납 못할 사건을 저지른 것 아니냐 의심했다는 건데요. 하지만 별다른 소식은 없었다는 거죠.

북한 간부들과 지식인들의 분석은 남한 주민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김정은이 뭐라고 하든 북한의 주민들은 남한을 ‘적국’, 그러니까 완전히 다른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과 북은 여전히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북한은 해방 후 김일성에서 김정일,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3대를 주구장창 조국통일, 하나의 민족, 삼천리 금수강산을 외쳤습니다. 김정은이 어느 날 뜬금없이 ‘남과 북은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다, 통일을 연상시키는 모든 단어, 문장들을 제거하라’ 이렇게 지시를 내렸다고 해도 북한 주민들에게 신념과 집착으로 깊숙이 배인 하나라는 개념을 지울 수는 없어 보입니다.

이예진: 북한 당국은 이미 대남기구 폐지부터 평양의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철거, 애국가 가사 중 '삼천리' 삭제, 더 나아가 통일 관련 표현이 담긴 관영 매체의 과거 기사까지 모조리 삭제하고 있죠. 이제는 헌법 개정에도 속도를 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문 기자, 손 기자! '남한 지우기'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그리는 큰 그림은 과연 뭘까요?

문성휘:김정은이 왜 갑자기 헌법을 개정하면서까지 한 핏줄인 민족과 통일을 결사적으로 부정하려 드는지, 우리는 그 배경을 최근 몇 년간 북한의 내외부 사정, 그리고 북한의 미래를 놓고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제일 눈 여겨 봐야 할 점이 김정은의 건강이상설과 딸 김주애의 등장입니다. 그동안 김정은의 건강이상설은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대회 주석단에 입장하면서 다리를 절뚝거리는 모습도 보여주었고, 크지 않은 키에 140kg이 넘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움직임도 포착되었습니다. 누가 봐도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김정은의 딸 김주애는 2022년 11월 18일, 김정은과 ‘화성-17’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현장에 선보였습니다. 이제 겨우 9살 밖에 안 되는 어린 딸을 놀이공원이 아닌 미사일 발사 현장에 끌고 나와 세상을 경악시켰는데요. 지금까지 김정은이 보여준 행동은 명백합니다. 그것이 둘째든, 여태껏 숨겨둔 첫째든, 자식을 앞세워 후계구도의 틀을 완성하려 한다는 거죠. 이는 대남기구 폐지부터 통일과 관련 표현을 모조리 삭제하고, 남과 북이 하나임을 못박은 기존의 헌법을 개정하려는 김정은의 속내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평양문화어보호법과 청소년교양보장법,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같은 온갖 악법들을 만들면서 남한과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발버둥친 사실로도 이해가 가능한데요. 남한과의 체제경쟁은 항상 북한의 권력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였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남한을 동경하고, 남한의 문화에 호감을 보이니 김정은으로서도 체제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었는데요. 체제가 불안하면 후계자 문제도 불안해지죠. 그러니 김정은으로선 남한의 영화나 음악을 결사적으로 막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남한을 다른 나라로 만들고, 남한의 주민들을 다른 민족처럼 인식시켜 북한을 영원히 김씨 일가의 나라로 만들고, 자기 자식에게도 북한을 물려주겠다는 것이 김정은의 의도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손혜민:같은 맥락으로 개인적인 의견으로 말씀드린다면, 경제강국으로 이미 성장한 한국과의 상대적 박탈감에서 벗어나려는 정치전략으로 보입니다. 통일을 지우고 한민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대국들과 손을 잡는 지도자로 한반도 정세를 주도하겠다는 것이죠. 최근 밀착하는 북중러 관계, 즉 신냉전 구도에 기반하고 있는 편중된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북경협 대상인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지구가 이미 철거되었는데, 최근 러시아 관광객이 평양을 방문하는 것은 단순히 관광이 아니라 향후 북러 경협을 시사하는 동시에 한반도 정치정세 판도가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할 수 있는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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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주민들이 거리를 청소하고 있다. /AP (David Guttenfelder/AP)

이예진: 다음 소식입니다. 북한에선 해마다 이맘때 '봄철 위생월간' 사업, 그러니까 환경미화를 시작하죠. 그런데 올해는 개인 살림집까지 단속하고 나섰다는 소식입니다. 손혜민 기자, 살림집 위생검열이 흔한 일입니까?

손혜민:흔하진 않지만 개인 살림집에 대한 위생검열은 1970년대에도 있었습니다. 당시 북한 지방은 어디 가나 환경미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모기와 파리, 이가 성행했죠. 초등학교부터 고등중학교 학생들이 파리 잡기에 매일 동원될 정도였는데요. 책가방에 파리채가 꽃아 있지 않으면 등교가 제한됐던 기억이 납니다.

주목할 점은 당시의 위생검열은 성격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정부에서 조직한 위생검열성원들이 개인 살림집에 들어와 도배와 장판이 얼마나 깨끗한가 등 집안 환경이 중점이었죠. 집안을 깨끗하게 꾸리면 자연히 모기와 파리, 이가 없지 않나요. 그러니 깨끗한 살림집에 대해서는 ‘모범가정’이라는 표창을 주고 살림집이 너절하면 불합격 딱지를 문 앞에 붙여놓고, 떼 버리면 다시 붙여 망신 주었죠. 이후 1990년대 장마당이 형성되며 파리와 이를 죽이는 화학제품이 중국에서 수입되어 위생환경이 어느 정도 개선되었습니다. 위생검열사업이 사라진 배경이죠.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며 국가비상방역이 선포되는 동시에 다시 시작된 위생검열은 기관, 학교, 식당 등 공공장소마다 손소독수 구비,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 방역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지난해 8월 코로나 방역에서 승리했다고 김정은 총비서가 선포하면서 국가적 사업으로 진행되어왔던 위생방역 검열사업은 끝났습니다. 올 3월 시작된 위생검열사업은 코로나 전염병 근원지 퇴치를 목적으로 3-4월 위생월간에 집중적으로 진행됩니다. 그래서 개인 변소와 하수망에 뚜껑을 씌우라는 것이죠.

이예진: 문제는 살림집 하수망과 변소 뚜껑을 씌우는 것만으로 전염병 재발을 대비할 수 있느냐는 건데요. 당국이 소독제 제공 등 전염병 예방을 위한 조치를 취하는 부분은 전혀 없는 겁니까?

손혜민:아예 없진 않았습니다. 북한이 코로나 방역 기간 새롭게 추진한 조치가 있다면 지방마다 소독수 공장을 건설해 지방 자체로 전염병 방역에 나서도록 한 것입니다. 한편 지방도시마다 상하수도망을 개선하도록 조치하면서 환경위생에 주력하고 있지만, 지방에 자리한 상하수도망을 재정비하려면 자금이 필요합니다. 그 자금이 주민 세부담으로는 역부족이어서 큰 도시에서는 상하수도망이 개선되고 있지만 소규모 지방도시는 비가 조금 와도 똥물이 그대로 노천에 흘러나옵니다.

그러니 3-4월 위생월간을 맞으며 도시의 상하수도망을 개선하는 사업을 강화하는 한편, 아파트 단지와 단층 살림집 하수망, 변소에 뚜껑을 씌워 위생적인 환경을 다시 조성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정부 차원에서 예산을 투자해 소독사업과 상하수도망을 개선하지 않는 한 코로나를 비롯한 전염병 발생을 예방하는 사업은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예진: 한국에서는 3월 새 학기를 맞은 어린이들의 코로나 감염이 다시 우려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종식 이후,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코로나를 비롯한 각종 비루스로 인한 전염병이 여전해 계속 주의하는 분위기인데요. 북한에선 어떻습니까?

손혜민:지역마다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2월 연결된 평북 용천군 소식통에게 코로나가 없어졌나 물어보니 아직 고열증상자가 있다고 말한 반면, 평남 은산군 소식통은 코로나가 없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코로나가 완전히 없어져야 북중 육로무역을 재개할 수 있어 북한으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 비루스가 변이되어 또 다른 전염병이 확산될 수 있는 건데요.

북한이 최근 러시아 등 우방국에만 열어놓은 관광 개방을 조금 더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로 평양에 상주했던 영국과 독일, 스웨덴 등 서방국가 공관이 철수했었는데, 최근 다시 평양으로 복귀하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식량계획(WFP)과 유엔아동기금(UNICEF) 등 평양에 상주하던 국제기구 직원들도 평양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북한으로서는 전염병 재발에 긴장할 수밖에 없는 변수로 작용합니다.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