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북한 의료진은 왜 환자에게 살갗을 떼어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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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김주애 우상 본격화와 ‘조선의 샛별’에 담긴 의미

-김주애를 내세우는 건 김정은 건강이상 때문?

-북한 당국이 거짓선전으로 가득한 청년미풍열성자회의 조직하는 이유

이예진: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둘째 딸로 알려진 김주애가 9.9절 열병식 참석 이후 70여 일만에 북한 매체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이번 등장은 전과는 달리 큰 의미가 부여된 것 같습니다. 손혜민 기자, 주애 양 호칭이 전과는 크게 달라졌죠?

손혜민:네, 그렇습니다. '조선의 샛별'로 신격화된 건데요. 물론 일반 주민들에게 공개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도, 시, 군 급 당간부 및 정권기관 간부 대상 기념강연회에서 국호를 앞에 놓고 샛별 호칭을 사용한 것은 가벼운 사안은 아니라고 소식통도 전했는데요. 지난해 11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장에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랑하는 자제분'으로 대중매체에 공개된 시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정해진 우상화 수업이라는 분석도 해볼 수 있습니다. .

김주애 우상화를 공식 선포한 시점도 주목되는데요. 지난 5월과 8월 두 번의 실패 끝에 군사정찰위성 발사 성공 이후 간부강연회에서 선포했거든요. 우주강국 시대가 열렸으니 대외적으로 자신감이 생겼지만 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가 급히 김주애 우상화를 간부대상으로 공식화한 것은 내부 권력 다지기로 체제 불안전을 재정비하려는 김정은의 의도로 보입니다.

이예진: ‘사랑하는 자제분’이 ‘조선의 샛별’로 거듭나는데 1년밖에 걸리질 않았네요. ‘조선의 샛별’이라는 칭호를 두고 신격화에 나섰다고 하셨는데 ‘조선의 샛별’이라는 말에 어떤 다른 의미가 있는 겁니까?

손혜민:북한에 '조선의 별'이라는 장편 시리즈 영화가 있습니다. 1983년부터 6부작으로 방영된 이 영화는 1920년대-1930년대를 배경으로 김일성의 초기 혁명활동을 각색한 것입니다. 나라를 찾겠다고 혁명의 길에 나선 젊은 청년들 속에 김혁이라는 시인이 있었는데, 그가 김일성을 만나자마자 조선의 밤하늘에 솟아오른 샛별을 보았다며 즉흥시로 칭송한 시가 바로 '조선의 별' 노래 가사입니다. 주민들 세뇌하는 영화이다 보니 신격화에 초점에 맞춰져 있는 겁니다.

또 2008년 9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후계자수업을 받기 시작한 김정은도 2009년부터 샛별장군으로 우상화된 바 있지만 샛별장군은 비공개였습니다. 공식적으로 김정은을 우상화한 명칭은 ‘청년대장’이었죠. 이후 가요 ‘발걸음’이 주민들에 보급되며 김정은 신격화가 본격화 되었는데요. 이러한 맥락으로 어린 김주애를 조선의 샛별로 신격화된다 해도 북한 주민들은 신격화도 세습되는 나라의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예진: 손 기자 기사를 보고 북한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이게 사실이라면 김정은 딸을 후계자로 임명하는 내부 절차를 끝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김정은 건강 이상설을 제기했습니다. 이런 판단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요?

손혜민:저도 공감하는 부분인데요. 김주애를 급히 대중매체를 통해 최고존엄의 자제분으로 공개하는 배경에는 김정은 총비서의 건강 이상설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만약 예측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경우, 북한 내부에서 권력 갈등이 폭발하여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거든요. 예를 들어 당 조직지도부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건, 역으로 그들의 세력에 대한 불만 세력도 잠재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예진: ‘사랑하는 자제분’, ‘존귀하신 자제분’, '조선의 샛별', '여장군' 이렇게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고 있는 주애 양, 하지만 정작 북한에서 제대로 된 이름은 소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국제 사회가 알고 있는 '주애'라는 이름도 미국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이 지난 2013년 북한을 방문해 들은 것으로 전해진 것뿐인데요. 김정은 딸의 이름을 아직 공개하지 않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손혜민:제가 단정지어 말할 순 없지만 북한사회는 별게 다 비밀이지 않습니까. 하물며 백두혈통을 지키는 문제와 관련된 사안은 건강과 취미생활 등이 극비입니다. 김주애 이름도 마찬가지인데요. 미리 이름이 알려진다면 신격화 효과가 그만큼 희석된다고 보는 것이겠죠. 하지만 미국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이 방북해 확인한 김정은 총비서의 딸 이름이 김주애라는 것은 이미 간부들을 통해 일부 주민들에게도 알려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주애 동명인을 개명하도록 북한 당국이 조치했다는 내용이 이미 보도된 것처럼 이것 역시 이에 대한 방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가부장제 문화가 깊숙이 뿌리내린 북한 사회에서 여자가 후계자로 갑자기 나선다면 북한 주민들에게도 거부감이 들 겁니다. 한국 내외에서도 김주애가 처음으로 언론매체에 등장했을 때 후계자가 아니라 김정은 총비서가 어린 딸을 내세워 코로나로 악화된 ‘민심 달래기’라는 평가가 많았죠. 하지만 김주애 호칭이 격상되고 북한에서 진행되는 정치적 행사에 지속 등장하는 모습이 이어지자 전문가들도 후계자 수업으로 보아야 한다는 시선의 변화도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주애 동향을 전 세계가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예진: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북한 전역에서 청년미풍열성자회의가 연이어 조직되고 있는데, 논란과 불만이 끊이질 않는 모양입니다. 문성휘 기자, 우선 청년미풍열성자회의라는 게 뭡니까?

문성휘:네, 청년미풍열성자회의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3년 12월 1일, 평양시 2.8문화회관에서 개최됐던 '전국 공산주의 미풍 선구자대회'입니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기 전 해에 열린 대회였는데요. 당시 북한은 대회를 통해 "주체형의 공산주의 인간육성에서 이룩한 성과를 공고히 하고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이 사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과업을 토의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대회를 통해 "우리식 사회주의를 견결히 고수하고 끝까지 완성해 나가야 한다"며 그러자면 먼저 "전체 주민들을 혁명적 수령관으로 튼튼히 무장시켜야 한다"고 대회의 목적을 강조했습니다.

이후 김정일 시대가 시작되고 ‘고난의 행군’과 ‘강행군’을 겪으면서 북한 주민들의 기억 속에서 ‘전국 공산주의 미풍 선구자대회’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때로부터 22년이 지난 2015년 5월 13일,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3대째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이 평양의 4.25문화회관에서 ‘제2차 전국 청년 미풍 선구자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1차 대회는 ‘공산주의 미풍 선구자’였는데 2차 대회에서는 ‘공산주의’라는 표현을 빼고 ‘청년’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이후 코로나 사태가 한창이던 2021년부터 북한은 해마다 11월이면 각 지방, 연합기업소, 내각 산하 성 단위로 청년미풍열성자회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990년대 초의 ‘전국 공산주의 미풍 선구자대회’가 ‘전국 청년 미풍 선구자대회’, 지방의 ‘청년미풍열성자회의’로 진화한 거라고 보면 됩니다.

이예진: 그런데 기사를 보면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소식통은 ‘거짓과 사기가 판을 쳐 소름이 끼쳤다’고 말합니다. 이밖에도 참석자들의 불평, 불만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문성휘:네, 여기에 대해 좀더 깊이 이해를 하려면 1993년에 처음 있었던 '전국 공산주의 미풍 선구자대회'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당시 북한은 하반신 마비가 된 영예군인과 결혼을 한 여성들, 부모 없는 어린이들을 데려다 키운 부부, 탄광이나 광산에 진출한 청년들을 공산주의 미풍 선구자로 내세웠는데요. 그런데 이를 두고 북한 내부에선 참 말이 많았습니다.

하반신 마비가 된 영예군인과 결혼한 여성들의 경우 이게 진정한 사랑으로 이루어진 결혼이 아니고, 국가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결혼한 여성들이 대부분이어서 훗날 남편을 버리고 달아난 사례들이 있었고요. 부모 없는 어린이들을 데려다 키운 부부들은 아동 학대 의혹을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또 탄광과 광산에 자원 진출했다는 청년들도 따지고 보면 국가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탄광이나 광산에 갈 수밖에 없었다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1993년 ‘전국 공산주의 미풍 선구자대회’가 열릴 당시의 상황들이 2021년부터 다시 북한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거죠.

이예진: 30년 전부터 의혹도 많고 말도 많아 내부 불만이 쌓였던 행사를 북한 당국은 왜 다시 진행하는 걸까요?

문성휘:한마디로 북한 내부 주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외부세계에 보여주기 위해서 현실을 왜곡해 선전한다는 거죠. 지난 14일, 혜산시 김정숙예술극장에서 진행되었다는 양강도 청년미풍열성자회의도 그랬습니다. 회의에 참가했다는 17살의 한 청년은 올해 6월, 운흥광산에 자원한 것으로 선전했다는데요. 그런데 그 청년은 회의가 끝난 후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은 운흥군 인민위원회 노동과에 의해 강제로 광산에 배치되었다고 실토하면서 올해 운흥광산에 자원했다는 다른 11명의 청년들도 모두 자신과 같은 처지라고 고백했다는 겁니다.

양강도 청년미풍열성자회의에서는 김형직군병원 의사와 양강도종합병원 간호사의 토론도 있었다는데요. 이들은 지난 7월, 김형직군 읍중학교에 불이 나 크게 화상을 입은 학생을 살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피와 살을 바쳤다는 내용으로 토론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화재사건 보고를 받은 김정은이 어린 학생을 무조건 살려내라는 지시를 내려 김형직군병원과 양강도종합병원에서 35세 미만의 남성 의사들과 26세 미만의 여성 간호사들이 강제로 피를 뽑고 피부를 떼어냈다는데요. 그렇게 피와 살을 강제로 빼앗긴 사람들을 내세워 마치도 어린 학생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원해서 피와 살을 바친 것처럼 조작했다는 거죠.

회의 참가자들의 토론문 역시 양강일보사 기자들과 양강도 작가동맹 작가들이 써준 것이고, 토론자들은 남들이 써준 토론문을 무대에 나가 읽은 것이 전부라는 거죠. 북한이 자랑하는 청년미풍열성자가 하나같이 이렇게 조작된 사람들이다 보니 청년미풍열성자회의를 바라보는 북한 주민들의 비난도 매우 거세다는 겁니다.

이예진: 청년미풍열성자회의가 계속되면 애국심과 충성심은커녕 불만이 더 커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럼에도 김정은 총비서가 ‘청년 결집’을 강조하며 안 하느니만 못한 것 같은 청년미풍열성자회의를 여는 이유가 있겠죠?

문성휘:무엇보다 북한의 청년층, 남한의 전문가들은 요즘 북한의 젊은층을 가리켜 '장마당 세대'라고 부르고 있죠. 일찍이 장마당문화를 접하고 자본주의 생활방식에 눈을 뜬 북한의 젊은 세대들을 가리키는 표현인데요. 김정은으로선 이런 '장마당 세대'를 다독일 필요를 느꼈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청년미풍열성자회의가 거짓 선전을 목적으로 한 회의이긴 해도 청년들을 내세워주려는 목적은 분명히 있었다고 보여지고요.

다른 한편으론 외부 세계를 향한 선전 효과를 더 크게 기대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북한의 선전선동을 깊이 들여다보면 파쇼 독일의 선전상이었던 요제프 괴벨스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믿지 않으면 믿을 때까지 선전하라” 이게 괴벨스의 논리였는데, 북한이 지방별로 청년미풍열성자회의를 조직하고 이를 언론에 널리 선전하는 목적을 가장 잘 설명한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안 하는 것만 못한 북한의 청년미풍열성자회의, 북한의 수뇌부도 이런 회의를 조직하면서 계산이 복잡했으리라 짐작합니다. 내부적인 비난과 조롱으로 실추되는 지도부의 체면과 외부 세계로부터 얻을 수 있는 체제 결속 효과, 그 중에서 결국 외부 세계로부터 얻을 수 있는 체제 결속 효과를 더 크게 보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는데요. “속이 곪으면 나중엔 겉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했죠. 북한의 당국자들도 이런 격언, 꼭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