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로 세상을 만나다] 북한서 온 편지 받은 미국 거주 김중현 씨 "12년 만에 조카와 다시 연락돼 기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전화로 세상을 만나다' 시간입니다. 북한에서 가족을 찾으려고 미국으로 보낸 편지의 사연이 뉴욕에 있는 한인 라디오 방송(KRB)에 소개되면서 마침내 편지의 주인에게 전달됐다는 소식이 최근 한국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워싱턴-김진국 kimj@rfa.org
2009.03.17
수취인을 찾지 못할 뻔 했던 편지가 미국에 사는 고모부에게 무사히 전달된 사연을 편지를 소개한 한인 방송국 관계자와 편지를 받은 고모부 김중현 씨에게 들어봅니다.

김진국: 북한에서 온 편지가 주인에게 배달되지 못하고 방송국으로 전해졌는데요. 그 과정을 소개해 주시죠.

KRB 김준환: 2월 중순 무렵 우연히 방문했던 식품가게의 주인이 제가 방송국에 근무한다는 걸 알고 어떤 편지를 주시더라고요. 보니까 북한에서 온 편진데 무서워서 못 가지고 있겠다고 하시면서 저한테 주셨습니다.

북한 우표가 붙어 있어서 북한에서 온 편지라고 확신했습니다. 또 보내는 사람 주소도 한글로 돼 있었는데 역시 북한 주소였습니다. 식품가게 주인은 집배원이 받는 사람 주소에는 한국인이 없다면서 주소지 근처에 있는 자신에게 편지를 맡겼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2월 중순에 방송국으로 편지를 가지고 왔고요, 방송을 통해서 주인을 찾으려고 2월 말에 음악 방송을 통해서 편지를 소개했습니다.

letter 230
북한에 있는 조카가 미국에 사는 고모부에게 보낸 편지. 봉투에 북한 우표가 붙어있다.


김진국: 방송한 지 얼마 만에 원주인을 찾게 됐고, 방송 뒤 청취자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김준환: 방송은 2월 말에 나갔는데, 시간이 걸린 이유는 이 편지가 진짜 북한에서 온 편지가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북한에서 온 건지 중국에서 온 건지 아니면 한국에서 보낸 건지 아니면 미국 내에서 우체국을 통해 보내진 건지를 살펴봐야 했습니다.

결국 북한에서 미국으로 편지를 보낼 수 있고 미국에서도 북한으로 편지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의 처지에서 오죽 답답했으면 미국까지 편지를 보냈을까 하는 마음에 실제로 미국의 수취 주인공이 꼭 편지를 받아 봤으면 해서 방송했는데 그 방송을 듣고 교회의 목사님이 우리 교회 교인이 그 편지의 주인공인 것 같다는 전화를 해서 편지의 수취인을 찾게 됐습니다.

편지의 주인은 뉴욕에서 식당과 연회장을 운영하는 김중현 씨였습니다. 한국전쟁으로 가족을 두고 혼자 남으로 피란했던 김중현 씨는 미국에 이민 온 지 30년 동안 북한을 4번 방문했지만, 부모님과 형제, 남매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김진국: 편지 얘기를 해 보고 싶은데요. 북에서 온 편지가 김 회장님에게 온 편지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셨습니까?

김중현: 교회 목사님이 전화했어요. 이북에 갔던 일이 있느냐? 물으시기에 갔다 온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조카를 만났던) 그 때 북한을 방문했던 것은 개인적으로 간 게 아니고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평양 근처에 국수공장을 세우려고 했던 문제로 갔습니다.

김진국: 그 때가 언제죠?

김중현: 1997년입니다. 제가 좀 불러 달라고 했어요. 좀 만나볼 수 있느냐고 그러니까 누구냐고 그래서 조카라고 꼭 만나고 싶다고 요청했더니 일주일 후에 만날 수 있었습니다.

김진국: 어떤 말씀 나누셨습니까?

김중현: 네가 아무개 맞나, 하니 그렇다 그래요, 혹시나 내가 잘못 만났나 싶어서 삼촌이 누구냐 했더니 삼촌 이름을 대더라고요, 아 이거 틀림없구나했지요.

김진국: 97년 이후에 또 연락이 되거나 만난 적은 있습니까?

김중현: 못 만났어요.

김진국: 그리고 이번에 편지로 다시 한 번 안부를 듣게 됐군요. 약 12년이 지났는데...

김중현: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됐느냐하면요, 왜 편지가 내 손에 안 들어오고 딴 데로 갔느냐하면요, 그 주소가 맞는데 그 주소가 2001년까지 장사하던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화재가 나서 이사했습니다. 97년 조카를 만났을 때 명함을 줬는데 화재가 났던 그곳의 주소를 줬습니다. (조카가) 그 주소 그대로 써서 보내서 제가 받아 볼 수 없었습니다.

김진국: 편지는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김중현: 자기 아버지가 내내 연락됐는데, 아버지는 서울 살지만 여동생이 LA에 살고 있어요. 남매가 계속 연락을 잘했지만 여동생이 이사 가면서 소식이 끊겼고 아버지 안부가 걱정되고 해서 제게 편지를 보낸다는 내용입니다.

김진국: 그래도 다행히 편지가 방송국으로 전달되어 방송으로 원주인을 찾게 됐군요. 한국에 있는 조카 아버지와 통화하셨죠?

김중현: 제가 그날 저녁 전화를 걸었더니 이미 인터넷을 통해서 기사를 읽었다고 여동생이 곧바로 북에 있는 오빠에게 편지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더라고요.

김진국: 북한을 여러 번 방문하셨는데, 고향은 가보신 적이 있으세요?

김중현: 고향에는 못 가보고 그 부근까지는 갔습니다.

김진국: 고향이 눈에 선하시죠?

김중현: 선하죠. 어렸을 때도 자주 가고 그랬으니까, 제 고향은 평양에서 한 30리 떨어졌어요. 평양 살았지만, 방학 때마다 고향에 갔었죠.

김진국: 북한에 4번이나 다녀왔다고 그러셨고요. 또 북한에 어떻게든 도움을 주시려고 노력해왔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크신데..

우리가 남북이 서로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미워할 거도 없고 다 같은 민족인데 속히 통일되는 것만 바라고 있습니다. 작년에도 서울 가서 고향 사람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얼마나 더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연세들이 높아서 고향에 가고 싶어도 이제 나이가 많아서 못 가는 분들이 많고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은데 속히 통일이 돼서 만날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제 고향에 갈수 있는지는 몰라도 눈 감을 때까지는 고향을 잊어버리지 않을 거예요.

'전화로 세상을 만나다‘ 오늘은 수취인을 찾지 못할 뻔했던 북한에서 온 편지가 미국에 사는 고모부에게 무사히 전달된 사연을 전해 드렸습니다.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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