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을 넘어 캐나다 토론토까지(3)

토론토-장소연 xallsl@rfa.org
2021-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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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을 넘어 캐나다 토론토까지(3) 사진은 토론토의 한 병원 모습.
/AFP

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활동소식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캐나다 토론토에서 전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북한에서 남편이 공개처형을 당한 후 압록강을 넘어 중국으로 온 연화씨가 몇 번씩이나 팔려갈 뻔한 위기를 넘기면서 살아남은 이야기와 밀선을 타고 마침내 한국땅에 도착한 이야기 전해드렸는데요.

오늘은 연화씨의 마지막 이야기 한국에서 캐나다로 그리고 캐나다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사연을 전해드립니다.

연화씨는 한국에 정착한지 10년만에 다시 그곳을 떠나게 됩니다. 한국을 떠나야 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북한에서 데리고 온 딸이 학교 생활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화] 딸이 중학생이었는데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왕따가 심해서 폭력까지 가가지고 내가 큰애를 지키려고 캐나다를 온 거예요.

그렇게 연화씨는 북한에서 데려온 큰딸 그리고 한국에서 새 가정을 이뤄 얻은 어린 둘째 딸과 함께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오게 됩니다. 자신의 딸들이 북한에서 태어난 배경을 가졌다는 것으로 인해 차별하지 않는 나라에서 사는 것 그것이 연화씨가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국과 캐나다는 무비자 협정이 있어서 연화씨는 비행기표만 사면 입국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캐나다에서 살려면 복잡하고 긴 이민수속을 거쳐야 합니다.

연화씨는 캐나다 이민국에 난민신청을 하고 여러 가지 수속을 거쳐 임시로 캐나다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이제부터 영주권을 얻기까지는 기나긴 시간과의 싸움이었는데요.

이 또한 연화씨에게는 큰 어려움이었지만 그의 딸이 웃으면서 학교에 다니게 된 것은 말할 수 없이 큰 기쁨이었습니다. 이제 연화씨가 소원했던 일이 이뤄지고 영주권을 받는 날만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연화씨에게 닥친 인생의 가장 큰 어려움은 또 있었습니다.

이제 7살이 된 연화씨의 둘째 딸에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병원에서는 딸이 빨리 장기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한 것입니다.

[연화]정상적인 간수치가 1에서 40까지 인데 얘는 2천까지 넘어갔으니까 엄청 위험한 상황이었어요. 나는 그때 간이식 그 말 자체를 못 알아들었어요. 한국말로 해도 기절초풍할 상황인데 그 말을 영어로 하니 무슨 말인가 해가지고.

다음날 새벽 의사들은 연화씨에게 수술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전한 후 딸을 데리고 수술장에 들어갔습니다.

장장 8시간의 긴 수술 끝에 간이식을 마치고 온몸에 호스를 꼽고 링거를 달고 나온 딸의 모습을 본 연화씨의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술한지 이틀이 지나자 딸은 눈을 떴고 엄마를 알아보자 연화씨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다음에야 연화씨는 수술과정이 어떻게 되고 이식은 어떻게 받았는지 의사들한테 묻기 시작했는데요. 연화씨의 딸에게 장기이식을 위해서 헬리콥터가 다른 주에서 간을 실어왔고 병원에는 이를 위해 헬리콥터가 뜨고 내릴 수 있다는 장소까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딸에게 간을 준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봤지만 병원에서는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했고 지금까지도 그 간 기증자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연화] 북한에서는 김정일이만 받을 수 있는 것을 우리 딸이 받은 거지요. 야, 대단하구나! 우리 딸이 잘 살아야겠구나 그 생각을 한 거지요. 그 면에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가장 많은 혜택을 받았다고 해도 맞는 말 일거예요.

이렇게 대수술을 하면서도 연화씨가 병원에 낸 돈은 단 한 푼도 없었습니다. 전국민 무료 의료 시스템인 캐나다에서는 약값은 환자가 내야 하지만 그마저도 병원에서는 기부를 받아 연화씨 대신 약값을 내주었습니다.

[연화]나는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하지만은 그래도 제일 중요한 깨달음은 캐나다에서 얻었어요. 마음을 비우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내에게 가정 소중한 것을 잃어보면서 딱 보이는 것이 있어요. 무엇이 첫째인가? 그것을 알게 되니까 내 자신이 낮아지는 거예요. 그렇게 보이니까 사람이 변하는 거예요.

북한과 중국 그리고 캐나다까지 연화씨의 이야기는 고난과 고통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고통 끝에 얻은 강인함과 고마움 깨달음으로 살아가는 삶에 이제는 평안이 깃들고 있습니다.

탈북해서 중국과 남한을 거쳐 캐나다에 정착한 연화씨의 이야기 여기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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