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9월과 10월에 이곳 캐나다 전국에서는 여러가지 달리기 대회가 많이 열립니다. 북한에서 말하면 가을철 운동회 비슷한 것인데요. 이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달리기 모임이 있습니다. 바로 테리폭스 런 이라는 달리기 행사인데요. 오늘은 테리폭스에 대한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지난 9월 17일, 캐나다 토론토 시 미드타운에 자리한 월킷 공원에 입구에는 테리폭스 엽서와 그림, 티셔츠, 깃발 등이 꽂혀 있는 물건들이 전시됐습니다. 그리고 공원 입구를 지나니 축구 운동장만큼 넓은 공원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습니다.
테리폭스 달리기 행사는 항상 꼭 한번 가보고 싶은 행사였는데요. 이번에 가보니 생각보다 굉장히 규모가 큰데 놀랐습니다.
테리폭스 달리기는 올해로 47주년을 맞았습니다. 지난 1980년대에 골수암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한 캐나다 운동선수 테리폭스가 인공다리를 착용하고 캐나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달리면서 암치료 기금을 마련한 업적을 기리는 행사입니다.
테리폭스는 암에 걸리기 전에는 캐나다에서 전도 유망한 장거리 달리기 선수이자 농구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다리 한쪽이 골수암에 걸리면서 수술을 받았고 그후 인공다리를 착용하고 계속 장애인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악화되는 병증세로 테리폭스는 암치료를 받으면서 자신보다 더 어린 친구들이 병원에서 암을 선고받고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테리폭스는 자신처럼 암치료로 삶의 희망을 잃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줘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캐나다 전국민에게 1달러씩 기부해 달라고 요청하는 “희망의 마라톤”을 시작하게 됩니다.
당시 캐나다 인구가 2,400만이였기 때문에 그의 기금 목표는 2,4백만 달러였습니다. 이때가 1980년이었는데요.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무살 이었습니다.
테리폭스는 143일동안 매일 수십 Km씩 달려 총 5천여 Km를 자동차가 쏜살같이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인적이 없는 산간도로 등에서 비를 맞으며 달리면서 암치료를 위한 기금마련을 전 캐나다 국민에게 호소 했습니다.
처음에 그가 뉴브린스윅의 대서양 한끝에서 달리기를 시작할 때만해도 아무도 그를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100여일이 지나 그가 캐나다 중심인 온타리오에 들어섰을 때는 전국민이 그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희망의 마라톤을 마칠 수 없었는데요. 마라톤을 시작한지 140여일이 지났을 때 그의 암은 페로 전이되었고 그 후 병원으로 이송된지 9개월만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캐나다 총리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테리가 우리 모두에게 준 선물, 자신의 무한한 용기와 희망의 선물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한다” 고 전했습니다.
그가 뿌린 희망의 씨앗은 크게 자라 캐나다는 암연구를 위한 테리폭스 재단을 설립했고 해마다 테리폭스 이름으로 달리기 행사를 마련해 해마다 수백만명의 캐나다 사람들이 이 달리기에 동참하면서 그의 희망의 정신을 기립니다.
테리폭스 달리기는 또한 캐나다에만 국한되지 않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60개 이상 국가들이 이에 동참하고 있으며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암연구를 위한 일일 자선운동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캐나다 전국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건물, 도로, 공원 등이 있으며 그는 질병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대변하고 희망을 주는 영웅이자 위인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너무 많은 영웅들 이야기를 듣고 봐와서 캐나다의 영웅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었는데요. 결국 영웅은 국가가 정하는 것이 아닌 국민이 인정하고 떠받드는 사람이 진짜 영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