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국수로 성공한 베트남 보트피플 난민

토론토-장소연 xallsl@rfa.org
201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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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타 토론토에서 인기있는 베트남 쌀국수식당.
캐나타 토론토에서 인기있는 베트남 쌀국수식당.
RFA PHOTO/ 장소연

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활동소식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캐나다 토론토에서 장소연 기자가 전합니다.

탈북민 김명호씨가 캐나다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맛들인 외국음식은 베트남 쌀국수라는 음식이었습니다.

한국음식 말고는 다른 나라 음식이 전혀 구미에 당기지 않았던 김씨에게 베트남 쌀국수의 매콤하고 시원한 국물은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던 캐나다가 정겹게 다가오게 된 첫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재 캐나다에 15만명의 인구를 가지고 캐나다사회에 탄탄한 뿌리를 자랑하고 있는 베트남 커뮤니티는 40 여 년 전인 1970, 80년대에는 보트피플이라 불리며 세계 곳곳을 헤매던 난민들 이이었습니다.

북한에서 월남으로 부르는 베트남은 한반도와 비슷하게 분단의 아픔을 겪었던 나라인데요.

1945년 제2차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은 독립되나 공산주의 계열인 월맹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부 열강과 대립하게 되다가 1954년 프랑스가 완전히 철수하면서 제네바협정을 통해 베트남은 북위 17도 기준으로 분단되었고 북 베트남에는 호지민이 인도하는 공산주의 베트남이, 남에는 베트남봉건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바오다이를 중심으로 남 베트남이 수립됩니다.

남 베트남과 북 베트남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내전이 발발하고 아시아의 공산화를 우려한 미국이 전쟁에 개입됨에 따라 전쟁은 국제전으로 확대되며 여기에는 남한도 미국을 도와 남 베트남에 정규군과 기술군을 파견하게 됩니다.

북한은 호지민의 북 베트남을 도와 전쟁에 필요한 기술자들과 무기 등을 지원합니다.

결국 이념으로 분단이 되었던 남북한은 이국 땅인 베트남에서도 무장으로 대결해야 했습니다. 미국과 남 베트남 군이 베트공, 즉 남 베트남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 게릴라들의 코와 귀를 베며 무자비하게 학살한다는 내용은 당시 80년대 북한사회에 만화 등 선전물로 많이 배포가 되었었습니다.

1964년부터 1975년까지 진행된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철수하면서 종결되었고 북 베트남이 남 베트남의 수도인 사이공을 점령하면서 베트남은 공산주의체제인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게 됩니다.

이로써 베트남사회주의 공화국은 사회통합작업을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부유층 중산층 종교인들이 사회개조라는 명목으로 탄압을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해 약 100만명의 베트남사람들이 해상으로 탈출을 감행하게 됩니다. 주변국인 라오스, 캄보디아도 공산주의 정권이 속속 세워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탈출할 가능성이 많은 해상은 그들의 희망의 길이 되었습니다.

몇 십명 밖에 수용할 수 없는 낡은 보트에 몇 백 명을 태운 이 보트피플의 대열에는 라오스, 캄보디아, 미안마 등 공산주의탄압을 피해 떠난 이웃나라 난민들도 합세하게 되는데요. 이들은 해상에서 익사, 굶주림, 탈수, 해적들의 공격, 성폭행, 심지어 살인 등 엄청난 위험을 안고 망망대해를 헤맸습니다.

이들의 탈출이 시작된 후 얼마 되지 않아 캐나다 정부는 베트남으로부터 난민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그 결과 캐나다는 1980년까지 총 6만명의 베트남 난민들을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캐나다가 처음으로 동남아 난민들을 환영하고 받아들인 사례로서 이는 캐나다 이민 난민역사의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 동남아 난민들의 절반이상은 순전히 캐나다시민 개개인들의 후원으로 캐나다에 도착하게 되는데요, 캐나다 시민들은 사비를 털어 이들의 숙식을 마련해주고 일자리를 알아봐주고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캐나다 시민과 정부가 합동한 대 국민적 운동이었습니다.

이들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은 베트남 보트피플 난민들은 이에 보답했고 그들의 근면함과 정직성으로 캐나다사회에 잘 정착되어 정치, 경제, 문화, 체육 등 사회에 기여했습니다.

베트남출신의 캐나다인으로서 국제피아노 콩클에서 수상한 사람도 있었고, 캐나다 최초 여성하원의원도 베트남난민출신이었습니다. 특히 베트남 난민출신의 딸인 캐롤 후인이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레슬링 경기에서 금메달을 차지하자, 이는 캐나다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70-80년대 입국한 보트피플의 평균수입도 현재는 일반 캐나다 사람들과 비슷하거나 높다는 통계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많은 캐나다사람은 추운 날 따뜻하게 국물을 마실 수 있는 “포”라고 하는 쌀 국수에서 베트남 사람들의 성공을 느낍니다.  “포”는 오늘 캐나다 사람들이 국적, 인종을 초월해 가장 사랑하는 음식이 되었는데요.

비록 몇 십 년 전에는 망망대해를 떠돌며 기약 없던 사람들이 오늘날 이렇게 캐나다사회에서 시민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베트남 난민들, 이들의 삶이 오늘날 아직도 중국에서, 동남아 제 3 국에서 헤매는 탈북난민들에게 희망의 이야기로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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