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며느리들의 명절 증후군

서울-이예진 xallsl@rfa.org
201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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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 중곡동 서울다문화가정협의회에서 결혼이주여성 등이 설을 앞두고 직접 빚은 만두를 선보이고 있다.
서울 광진구 중곡동 서울다문화가정협의회에서 결혼이주여성 등이 설을 앞두고 직접 빚은 만두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설 명절이 되면 고부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오른다고 하는데요. 온 가족이 모여서 좋은 명절, 며느리들에겐 할 일도 많고 스트레스도 받고 피곤한 명절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온 며느리들의 설 명절은 어떨까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 며느리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네. 새해를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마순희: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예진: 설은 북한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명절이죠. 남한에서도 민족 최대의 명절로 꼽는데요. 이미 가는 길이 온통 차들로 꽉 막힌 도로를 뚫고 고향에 도착해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분들도 계시고요. 자식들이 있는 서울로 부모님이 올라오셔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죠. 명절이 되면 이렇게 오랜만에 형제, 친척들이 모이는 날이 바로 설인데요. 선생님은 설을 주로 어떻게 보내시나요?

마순희: 저희 집은 설 명절에 집에서 명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세 딸과 함께 오다보니 식구들이 모두 모이면 열 두 명이 되거든요. 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텔레비전으로 꽉 막힌 도로지만 고향으로 오가는 차량들을 보면서 저렇게라도 고향으로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딸들은 시댁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오후나 아니면 저녁에 오기도 하는데 다른 여느 가정들처럼 명절을 보내군 합니다. 세 딸들이 함께 음식준비를 하는데요. 한국과 문화적 차이나 생활풍습 등이 서로 다르다보니 음식준비도 간단하지 않답니다. 그래도 식구들의 입맛에 따라 음식도 해 놓고 식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군 합니다.

이예진: 음식 준비할 때도 한국과 달라서 간단치 않다고 하셨는데요. 한국에 와서 남쪽 남성과 결혼을 한 탈북 여성의 경우 문화가 달라서 설날에 고생스러운 일들도 있을 것 같아요.

마순희: 사실 북한에서 살 때를 생각하면 지금 한국에서 고생스럽다고 생각하는 일들은 크게 스트레스 받을 일들은 아니라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집식구들이 모여서 먹을 음식을 장만하고 설거지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등 거기에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정작 살아보니 문화적 차이도 있고 하여 간단한 문제는 아니더라고요. 부모님께 용돈 드리고 애들에게 세배 돈 주고 선물을 사고 하는 문제도 어느 정도껏 하는 게 맞는지 그것도 궁금하고요. 북한에서는 수준에 맞추어서 차례음식을 차리지만 한국에서는 꼭 갖추어야 할 필수항목들이 있어서 차례비용이 평균 얼마라는 말도 있더라고요. 그뿐 아니라 명절음식도 여기 풍습에 맞추다 보면 솜씨가 서툴러서 많이 눈치가 보인다고도 합니다.

이예진: 한국에서는 설이 되면 특히 여성들이 고생을 많이 하죠. 차례 지낼 음식, 온가족이 다 같이 먹을 음식 만드느라, 설거지하느라 스트레스도 높아서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도 하잖아요. 북한에선 명절 스트레스가 있나요?

마순희: 북한에도 있기는 하겠지만 한국과는 차원이 다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야 명절이 되면 민족 대이동을 하느라 겪는 교통 체증이나 할 일 많은 며느리들의 불만, 명절에 쉬면서 너무 많이 먹어 살찌지 않을까 하는 스트레스가 있지만, 북한은 돈 걱정이 제일 크죠. 물론 한국에서도 돈 걱정 안 하는 사람 별로 없겠지만, 북한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를 위한 돈 걱정이 크다는 얘깁니다. 부식물과 쌀이 있으면 힘들어도 가족이 먹을 것이기에 음식 만드는 것은 오히려 밤을 새워도 즐거움이 더 클 것이고 설거지하는 것도 집식구들의 시중드는 게 무슨 그리 힘들다고 스트레스라는 말까지 쓰겠어요?

돈만 있으면 하나라도 더 해먹이고 싶고 더 주고 싶은 것이 그 때의 솔직한 심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애들이 어렸을 때부터 설 명절이 되면 새 옷을 장만했다가 입히고 정 없으면 새 옷처럼 손질해서라도 입혔죠. 명절선물도 거의 빠뜨린 적이 없었는데요. 다만 상황에 따라서 가격대가 차이가 나는 거죠. 생활이 조금 괜찮을 때에는 좋은 물건, 즉 고급 만년필이라든가 수첩 등 값나가는 물건이지만 어려울 때에는 양말 한 켤레라도 꼭 챙겨 주었답니다.

그러니까 북한에서 명절 스트레스라고 하면 경제적인 문제가 제일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어떻게 하면 남들에게 뒤지지 않게 명절음식도 갖추고 애들에게 좋은 선물도 줄 수 있을까 하는, 그리고 직장 간부들이나 자식들의 담임선생님 집까지 가서 인사를 차릴 수 있을까 하는 게 고민일 것입니다. 그런 걱정 외에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식구들 간의 갈등 등 문제들은 별로 큰 문제라고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예진: 그렇군요. 그렇다면 한국에 정착한 탈북 여성들은 명절증후군에 대해 걱정하지 않겠네요?

마순희: 꼭 그렇진 않습니다. 저희도 한국에서 살다보니 너무 행복해서 배부른 투정을 한다고 쉽게만 생각했던 명절 증후군이나 스트레스가 결코 쉬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북한의 문화적 차이는 일상생활에서 뿐 아니라 명절 풍습에서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명절음식부터 차례음식, 선물, 그리고 명절을 지내는 모습까지도 남북한이 많이 다릅니다.

북한에서는 명절 아침이면 찾아오는 첫 손님이 남자면 재수가 좋다고 하여 이른 아침부터 이웃집의 아들들이 술병을 들고 명절인사를 오는 일이 많았는데요. 술 한 잔 부어놓고 새해 인사를 하고는 함께 설음식을 먹기도 한답니다. 아침에는 이웃들에 음식을 돌리군 하는데 그러다 보면 다른 집들에서 만든 음식이 더 많을 때도 있었습니다. 낮에는 남편 직장의 동료들이 이집 저집에 찾아 가기도 하는데 몇 차례씩 술상을 차리다보면 어느새 저녁때가 다  되더라고요. 그러면서도 그것이 남편의 직장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한국식으로 말하면 내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기에 큰 불편 없이 시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북한의 설 문화에 익숙했던 우리들이 한국의 생소한 설 명절 문화를 만났는데 스트레스가 없을 수 없지요. 우선 음식 만드는 법에서부터 차례 상 차리는 것까지, 그리고 시댁에서의 인사예절과 어린 조카들의 세뱃돈에 이르기까지 생소한 것들 투성이잖아요. 북한에서는 명절에 떡과 국수가 기본이었다면 한국에서는 떡국을 먹어야 하는 것도 가장 큰 차이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정성들여 만든 음식에 사위들이 젓가락도 가지 않을 때는 내심 섭섭하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또 북한의 여성을 며느리로 맞은 많은 가정들에서 남북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면서 하나하나 배워주는 가정들에서는 별 문제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이예진: 남한에선 고부간의 갈등이라고 해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이 특히 명절 때 커지는 경우가 있는데, 탈북 며느리들이 겪는 어려움을 상담하신 일도 있나요?

마순희: 우리 북한여성들이 아직도 가부장적인 데가 많아서 시댁이나 시어머니에 대해서 웬만하면 잘 이야기하지 않고 참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정 참을 수 없는 경우에는 이혼도 생각하고 법률상담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며칠 전 지방에 살고 있는 한 북한이탈주민여성이 이혼 관련하여 무료법률상담을 신청하였는데요.

그 여성은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되어서 지인의 소개로 자영업을 하는 한 남성을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고 지금은 20개월 된 아들도 있습니다. 남편이 생기는 대로 주는 생활비로는 아들의 분유와 기저귀 값, 그리고 생활비를 대기에도 빠듯하였답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어려움보다도 시댁과의 갈등이 불화의 기본 원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한국문화를 너무 모른다고 하면서 매일이다시피 드나들며 음식이며 옷차림이며 살림살이에 이르기까지 배워주는 형태가 아니라 시비하고 트집을 잡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시댁 식구들, 특히 시어머니와 갈등이 잦아지고 억울한 심정을 남편에게 믿고 하소연하였더니 남편은 무조건 어머니편이고 자기만 잘못했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참을 수 없는 것은 설 명절이 되면 시누이가 자기 친정엄마는 아무리 어려워도 시장에서는 절대로 옷을 사 입지 않는다고 하면서 한 달 생활비도 넘는 가격을 주고 백화점에서 옷을 사게 한다고 합니다. 특히 어떻게 자식들의 생활수준을 뻔히 알면서 그 비싼 옷을 아무 주저도 없이 받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아기도 있고 하여 남편과의 문제만이라면 참고 살아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으나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이혼하려고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또 설이 돌아오는데 시댁에 가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잠이 다 안 온다고 했습니다.

이예진: 집안마다 다 다르지만 고부간의 갈등이 문화적인 차이에서도 오네요. 사이좋은 고부사이도 물론 있죠. 고향에 부모님이 계신 탈북 여성들의 경우에는 어머니 역할을 대신 해주려는 시어머니도 계시던데요. 설날, 온 가족이 모여 맛있는 걸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이런 명절이 되면 시어머니가 아무리 잘해줘도 탈북 며느리들은 고향 생각이 많이 날 것 같아요.

마순희: 그렇지요. 고향생각은 언제나 마음에서 떠나지 않지만 특히 명절이면 더 생각나기 마련입니다. 더욱이 가족을 떠나 혼자 명절을 보내는 분들은 고향생각이 더 간절합니다. 그래서 그런 탈북자들을 위해서 음식도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이웃들도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제가 살고 있는 양천구에서 북한이탈주민들과 지역주민들에게 사랑의 떡국을 나누어주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합니다. 고향에 가지 못 하는 우리 북한이탈주민들의 외롭고 아픈 마음을 이해해 주고 따뜻한 정을 나누는 이런 지역주민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우리에게는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예진: 아옹다옹해도 명절에는 다 같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보내는 게 아무래도 제격인 것 같습니다. 탈북 며느리들도 시댁 설움 하소연하러 고향 친정집에 갈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겠습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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