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이예진 xallsl@rfa.org
2017-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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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학술단체인 `NK지식인연대'(대표 김흥광)가 지난 2010년 `사회적 기업' 형태로 문을 연 북한 전통음식점 `류경옥(柳京屋)'.
탈북자 학술단체인 `NK지식인연대'(대표 김흥광)가 지난 2010년 `사회적 기업' 형태로 문을 연 북한 전통음식점 `류경옥(柳京屋)'.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탈북자들이 말하는 성공, 겉보기엔 대단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나이와도 큰 상관은 없어 보입니다.

돈만으로 측정할 수도 없죠.

여기는 서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만족한 삶을 살고 있는 탈북자들의 성공의 비결, 과연 뭘까요?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지난 시간에 새처럼 예쁜 소리를 내는 관악기인 오카리나를 독학으로 배워서 지금은 전문가 소리를 듣고 있는 탈북청년의 얘기를 해주셨잖아요. 처음부터 이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요?

마순희: 네. 고등중학교 과정까지 마치고 남들은 대학에 가는데 그 친구는 자신이 대학에 가서 남들을 따라가기는 힘들겠다는 것을 알고 취업을 시도했습니다. 이 청년은 그 많은 직업들 중에서 자신이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거라는 직업을 우선 체험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선별해 놓은 직업들을 식당, 커피숍, 건설현장, 농사일, 배타는 일 등 못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보았는데 자신이 돈도 벌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없었대요.

이예진: 다 힘든 일만 했네요.

마순희: 네. 그래서 생소하기는 하지만 오카리나 연주가가 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예진: 좋아하는 거니까요.

마순희: 네. 시간이 날 때마다 인터넷 동영상을 보면서 독학으로 오카리나를 연습했는데 사실 아파트 단지에서는 주위에 시끄러울까봐 마음대로 악기 연주를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차를 몰고 교외의 한적한 곳으로 나가거나 아니면 철교 밑에 차를 세워놓고 하루에 어떤 날은 열일곱 시간을 연습한 적도 있었대요.

이예진: 정말 대단한 노력을 기울였네요.

마순희: 그렇죠. 거리에서 공원에서 오카리나 연주를 하면서 기량을 익혔고 자신의 오카리나 공연과 기획, 교육, 악기판매까지 겸하는 자신의 회사를 차린 겁니다. 독학으로 배운 거라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지금은 경북의 한 대학의 플루트 학과 교수님의 전문교육을 받으면서 체계적으로 배우면서 독학으로 익혔던 연주법이 아닌 정통 연주법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 청년은 KBS, MBC, SBS를 비롯한 한국의 여러 방송에도 출연하고 자신이 작곡한 운율에 가사를 입혀서 노래를 만들기도 했어요. 며칠 전에 통화하면서 어디냐고 했더니 엄마의 품으로 노래하러 간대요. 그게 무슨 말인가 했더니 웃으면서 하는 말이 자신이 직접 만든 ‘엄마의 품으로’라는 노래를 녹음하러 가는 중이라는 거예요.

이예진: 그렇군요. 20대 젊은 나이에 자신의 길을 찾은 것도 대단한데 작곡부터 연주, 공연까지 진짜 능력자네요. 그런데 가만 보면 요즘 탈북 청년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빨리 찾는 편인 것 같아요.

마순희: 그러게요. 우리가 흔히 직행이라고 말하는 북한을 떠나 3국에서 살다가 오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오는 분들 경우에 그런 것을 많이 느낀답니다. 우리처럼 한국에 와서 10년 넘게 살아야 겨우 터득할 자본주의에 대해 청년들은 이미 북한에서 경험해보고 온 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외부세계에 대해 전혀 모르던 저희들과는 완전 딴판인거죠. 중국을 통해서, 그리고 먼저 한국에 정착한 식구들이나 지인들을 통해서 이미 자본주의에 대해 다 알고 있었고 북한에서도 장사도 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이라 정착속도가 빠른 것 같아요.

제가 창원에서 만난 미용실 원장도 한국에 온지 겨우 5년, 30대의 여성이었어요. 미용실도 잘 꾸려놓고 다른 가게가 다 쉬는 날에도 쉬지 않고 가게를 운영하더라고요. 개업한지 1년도 안 되어 제법 단골도 많이 생기고 주변 상가들과도 잘 어울리면서 영업을 잘해나가고 있었어요. 알고 봤더니 어려서부터 미용 분야에 관심이 많았는데 북한에서는 돈이 없어서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대요. 한국에 와서 회사에서 4년을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자신의 꿈이었던 가게를 차리게 되었다고 얼마나 뿌듯해 하는지 모른답니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기에 일하면서 부딪치는 어려움들도 큰 문제가 되지 않더라고 했던 그 원장의 말이 늘 잊혀지지 않습니다. 또 춘천의 닭갈비집에서 만났던 스물여섯 살의 청년사장의 이야기도 그런 사례 중의 하나입니다. 북한에서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하려 했는데 아버지가 탈북했다고 군 입대를 거절당한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군 입대를 기피하려는 일들도 가끔 있지만 사실 북한에서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가거나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군대에 입대하지 못하면 동료들 축에 끼지 못하게 되고 또 앞날도 별로 밝지 못하거든요. 그동안 한국에 계신 아버지가 몇 번이고 한국에 오라고 했어도 나라를 배반하는 건 아버지 하나로도 족하다고 말도 못 붙이게 한 친구였는데 그렇게 되고 보니 생각이 달라진 거죠. 그래서 한국에 왔고 워낙 성실하다보니 정규회사에서 3년을 일했는데 자신의 식당을 차리는 것이 꿈이었다고 하네요.

이예진: 일단 그냥 회사를 다니다가 자신의 진짜 꿈이 생긴 거네요?

마순희: 네. 물론 아버지는 남들 다 가는 대학에 안 가는 아들에게 얼마나 잔소리를 했겠어요? 회사를 차려도 한 푼도 도움을 못 준다고까지 말했지만 아들의 꿈을 막을 수는 없었나 봅니다. 사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도 요리사로 일한 거라 그동안 모은 돈으로 그럴싸한 가게를 차렸습니다. 제가 가보았는데 식당이 너무 깨끗해요. 먼지 한 톨 없고 주방이 환히 들여다보여서 요리하는 사장님의 모습이 그대로 보이거든요.

이예진: 그런 식당은 신뢰가 가죠.

마순희: 네. 그래서 믿고 먹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고 또 요즘 어린 가수들 뺨치게 멋진 20대 요리사 사장의 요리하는 모습도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이예진: 인기도 많을 것 같은데, 닭을 매콤한 양념에 볶아 먹는 닭갈비, 맛도 있던가요?

마순희: 그럼요. 맛도 있고, 손님도 굉장히 많더라고요.

이예진: 저희가 소개해드리는 사례야 다 지금 성공해서 자리 잡은 탈북자 분들의 얘기이긴 합니다만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서, 닭갈비집 사장처럼 또 전문가의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서 실패를 거듭하며 노력하는 분들도 많잖아요.

마순희: 그럼요. 한국에서 정착에 성공해 잘 살고 있는 탈북자들의 얘기는 여기저기에 소개되곤 하는데요. 그런 분들은 그만큼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인 거죠. 모든 성공 뒤에는 눈물겨운 노력이 깔려있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그러기에 저는 그분들의 성공사례를 들으면서 저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고 항상 많은 가르침을 배워온답니다. 그런 성공사례들을 많이 알리고 비법들을 소개해야 후에 오는 분들이 그분들의 뒤를 따라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 많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명감을 안고 그분들의 사례를 많이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예진: ‘성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탈북자 분들을 만나보면 확실히 ‘나는 북한에서 왔으니까’ 하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없어요. 오히려 ‘북한에서 살았지만’ 이런 마음이 크더라고요. 북한에서 살아 잘 모르고, 북한에서 살아 못 한다는 마음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도전하고 최선을 다하다보면 ‘성공’이라는 단어는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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