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남과 북 다른 장마철 풍경
2023.07.31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청진에서 초급 여맹위원장을 하다가 남한에 간 여성이 새로운 가정을 꾸려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좌충우돌 실수도 잦았지만,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며 산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지 한 번 만나봅니다.
기자: 노우주씨 안녕하세요.
노우주: 네, 안녕하세요.
기자: 오늘은 어떤 이야기 들려주실 건가요?
노우주: 오늘은 남한과 북한의 비 올 때 풍경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요즘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이라 시도 때도 없이 개었던 하늘에서 장대 같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는데요. 사람들이 그 비를 피하느라 헐레벌떡 서둘러 걸음을 옮기기도 하고 또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우산들이 물결치기도 하는데 그 모습이 정겹더라고요.
기자: 북한과 남한이 비 올 때는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가장 큰 차이점은 뭔가요?
노우주: 북한에는 한국과 달리 비포장도로가 많기 때문에 비가 오면 질척질척한 진흙이 신발 바닥에 붙어서 걷기 엄청 불편했던 기억이 떠올라요. 게다가 7~8월이 되면 농촌 동원을 나가 김매기와 풀베기를 도와줘야 하거든요. 북한에서 비가 왕창 쏟아져도 집에 가지도 못하고 농촌 일을 했던 게 생각나는데요. 북한에서는 한 번 농촌 동원을 나가면 비가 아무리 쏟아져도 하루 할당량을 수행해야 퇴근할 수 있었어요. 맨발로 우비도 없이 비닐을 뒤집어쓰고 논에서 풀을 뽑다가 발바닥에 깨진 유리 조각이 박혀 핏물인지, 빗물인지도 모르고 일을 했던 기억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네요. 그때 밤새 발이 퉁퉁 부어오르고 열이 나서 다음날 병원에 가니 파상풍에 걸렸다고 해 주사 맞고 며칠 입원하기도 했었어요.
기자: 작년과 올해 한국도 장마철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는데요. 안전에는 문제없으셨나요?
노우주: 안전은 괜찮았지만, 포항 지역에서 피해를 많이 입었어요. 특히 작년 장마철에 극심한 폭우가 쏟아지면서 곳곳에 홍수와 물난리가 났었거든요. 작년 힌남노 태풍으로 포항지역은 수해 피해로 인명피해도 많았고, 차들도 수몰되어 폐차하고, 둑이 터지면서 집들이 쓸려 내려가서 수재민들이 대피하고 난리 났었거든요.
저희 집도 승용차 두 대가 물에 다 잠겨 한 대는 물을 퍼내고 수리해서 타고 다니는데, 다른 한 대는 물이 엔진까지 차서 물을 퍼내도 시동이 걸리지도 않아서 폐차했거든요. 서울 도심 곳곳도 물에 잠겼고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오른 곳도 있었어요. 배수 체계가 잘 돼 있던 한국 서울 등 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상상도 못했죠. 안타깝게도 반지하에 살던 사람들이 숨지기도 하고, 하수구에 빠지기도 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요. 그래서 올해 장마철에 대비해 반지하 집 곳곳에 빗물이 새지 않는 차수판을 설치하고 빗물 저류 배수 시설도 재정비에 나섰다고 해요. 올해에도 비가 많이 내리고 있는데 다들 무사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기자: 장마철에는 도심이나 농촌 모두 긴장을 놓으면 안 될 것 같네요. 그리고 우산 얘기도 하셨는데, 요즘에는 우산 중에서도 톡톡 튀는 아이디어 상품들이 많죠?
노우주: 맞아요. 한국에 와서 우산에도 종류가 정말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떤 우산은 손잡이에 커피나 음료를 꽂고 걸을 수 있게 되어 있더라고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비 오는 날 그 우산을 들고 다니는 걸 자주 봤어요. 그리고 보통 백화점이나 회사 건물 입구에는 물 떨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비닐로 된 우산 커버가 놓여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일회용 비닐을 씌울 필요 없이 자체적으로 물 떨어지는 걸 방지하게 한 물받이 우산도 생겨났어요. 이 우산에는 물받이 캡이 붙어 있어서 실내에 들어갈 때 우산 꼭지의 캡을 잡고 쑥 올려주면 자동으로 커버가 씌워져서 일회용 비닐을 씌울 필요도 없고 옷을 적실 걱정도 없어요. 아이디어가 정말 톡톡 튀죠? 또 우산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형형색색의 빛을 내고, 손잡이에도 손전등이 달려 있어서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 시야 확보와 안전에 도움이 되는 우산도 있어요. 그리고 비 오는 날 양손에 물건을 들었을 때 배낭에 우산을 꽂고 어깨 벨트 끈으로 우산대를 고정하는 것도 있는데요. 북한에서는 변변한 비옷이나 우산이 없어서 비닐 박막을 뒤집어쓰고 일하곤 했었는데 남한에는 이렇게 많은 우산 종류가 있다니 새삼 놀랐었죠.
기자: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다니기도 걸리적거리고 또 실내에 들어가면 물이 뚝뚝 떨어져서 여간 불편한 점이 많다 보니 다양한 상품들이 출시되곤 하죠. 북한에도 이런 아이디어 상품들이 보급될 수 있으면 참 좋겠네요.
노우주: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고향에서는 비 오는 날 비옷도 못 입고 온몸이 홀딱 젖어도 일을 하다 보니 웃지 못할 은어도 생겨났는데요. 북한에서는 비 올 때 우산을 안 쓰냐 물어보면 “너무 가물고 먹지 못해 키도 크지 못했는데 이 비라도 흠뻑 맞아야 키가 큰다”라는 속설이 돌기도 했어요. 반대로 남한에서는 사람들이 산성비를 맞으면 머리카락이 다 빠진다면서 건강에 해롭다고 우산을 1년 12달 챙기고 다니고 또 쓰고 다니거든요. 요즘 대기오염도 심해지면서 대기 중에 미세먼지가 많은데 이를 가득 안고 내리는 비가 건강에 좋을 리는 없겠죠.
기자: 한국에서는 우산을 쓰지 않으면 비옷도 많이 입는데요.
노우주: 네, 맞아요. 비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도 많이 봤어요. 북한에서는 비닐 박막을 잘라서 목에다 질끈 동여매고 일하는 농민들을 수없이 봐왔고 저도 그랬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는 본인에게 맞는 비옷을 마음대로 골라 입을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제가 산을 좋아한다고 남편이 등산용 비옷을 사주었는데요. 등산 배낭을 메고 있어도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품이 넉넉해서 제 맘에도 꼭 들더라고요. 또 농민들이 일할 때 입는 비옷은 상·하의가 따로 되어 있는데 입고 일하기 너무 편하다고 해요. 비옷뿐만 아니라 비 올 때 신는 장화도 종류가 많더라고요. 사람의 발에 무리가 안 가게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장화, 평소에도 신을 수 있게 만들어진 목이 짧은 장화, 아이들이 좋아하도록 걸을 때 소리가 나는 깜찍한 장화까지 굉장히 다양한데, 이 가운데 취향껏 골라 신을 수 있어서 참 편리하다고 느꼈어요.
기자: 남북한의 비 올 때 비슷한 점은 어떤 것이 있던가요?
노우주: 여기서 생활하며 보니 같은 민족 피는 속일 수 없는 것 같아요. 고향에서 살 때도 비 오는 날에는 가족이나 동네 사람들이 모여 앉아 전을 구워 먹거나, 국수를 삶아 먹거나, 감자나 옥수수를 삶아 먹는 풍습이 있었어요. 남한에서도 지금처럼 비 오는 날이면 가까운 지인들이 모여 앉아 파전이나 해물전을 구워 술이나 막걸리를 한 잔씩 마시곤 하더라고요. 그리고 또 굳이 전을 굽지 않아도 전화 한 통이면 집 앞까지 음식을 배달해 주는 서비스가 아주 기가 막혀요. 사람들의 입맛대로 피자나 치킨, 돼지발족 등을 전화로 시키면 바로바로 배달해 주는데요. 비가 오면 전과 같은 음식을 먹는 문화도 남북이 참 닮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 요즘이죠.
기자: 올해에도 비가 꽤 많이 쏟아지고 있는데 남북한 청취자 여러분 모두 안전에 유의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노우주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노우주: 청취자 여러분들도 비 오는 장마철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포항에 있는 노우주 씨를 전화로 연결해 남북한의 다른 장마철 풍경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