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텔레비전은 ‘만능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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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건가요?

이순희: 오늘은 북한과 다른 남한의 텔레비전에 관해서 얘기해 볼까 해요. 저는 북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텔레비전 보는 것을 엄청나게 좋아해요. 특히 휴일 같은 때는 하루 종일 누워서 텔레비전만 볼 때도 있어요. 고향 집에도 텔레비전이 한 대 있었거든요. 솔직히 북한에서도 녹화해 둔 남한 드라마를 많이 봤었죠. 그때는 등화관제처럼 창 가림막을 하고 이불 뒤집어쓰고, 전기가 잘 공급되지 않으니까 작은 건전지를 텔레비전과 녹화기에 연결해 한국 드라마를 몰래 봤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는 다양한 한국 드라마를 마음 놓고 볼 수 있으니 어떤 것부터 볼지 몰라 그게 고민이죠.

기자: 남한에는 방송국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채널이 많잖아요. 일반적인 방송국 채널 외에도 뉴스나 영화만 하루 종일 방영해 주는 채널도 있고요.

이순희: 네, 맞아요. 이북에서는 채널을 통로라고 하는데요. 제가 살던 고향에는 텔레비전 통로가 하나밖에 없었어요. 북한에 하나 더 있다면 평양에 사는 외국의 외교관들이나 그 자녀들,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개설한 만수대통로가 있었는데요. 만수대통로는 전파를 제한해서 평양시에 밖에 송출 안 해서 지방에서는 하나밖에 못 봤죠. 그런데 남한에는 24시간 하는 채널도 있고 채널 개수도 무려 300개 정도 되는 거예요. 뉴스면 뉴스, 영화면 영화, 그리고 재미있는 개그 프로그램 (웃음 극장, 희극 극장)이나 예능만 모아둔 채널도 있고요. 입맛대로 골라 볼 수 있고 내가 심심할 때 텔레비전을 틀면 항상 방송이 나오고 있으니까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기자: 그런데 이를 듣고 계신 북한 청취자분들은 '돈이 많이 들지 않겠나?' 걱정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순희: 맞아요. 그런데 이 많은 채널을 보는 데 드는 비용은 정말 소정의 금액이에요. 300개나 되는 채널이 나오는 텔레비전 구독료는 1만 원 정도밖에 안 해요. 한국에는 노동자들이나 공무원들에게 1시간 일할 때마다 줘야 하는 최소 금액을 국가가 정해놨어요. 이걸 최저임금이라고 부르는데요. 1시간당 현재는 9,620원이라서 1시간만 일하면 한 달 동안 원 없이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구독료를 안내도 무료로 볼 수 있는 채널도 많아요.

기자: 텔레비전으로는 어떤 방송을 즐겨보시나요?

이순희: 저는 북한에 있을 때부터 남한 드라마를 많이 봤어요. 북한에서 몰래 보던 남한 드라마가 (남한에서는) 아무 시간대에 틀어도 나와요. 못 본 드라마는 주말에 재방송을 해줘서 그것도 챙겨봐요. 그리고 제가 세계여행 프로그램도 좋아해요. 방송 카메라를 통해서 집 안에 앉아서 다른 사람이 여행하는 모습을 다 볼 수 있는 거예요.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다양한 채널들이 많은데요.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뉴스, 사건, 그리고 사고 현장까지 생생하게 화면으로 볼 수 있죠. 전쟁하는 나라면 전쟁 상황까지도 실시간으로 전해주기도 해요.

기자: 그러면 얼마 전에 있었던 항저우 아시안 게임도 텔레비전을 통해 시청하셨나요?

이순희: 물론이죠. 중국 항저우에서 진행된 아시안 게임도 현장 생중계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관객들과 함께 응원하고, 경기에서 이기면 선수들과 함께 기뻐서 손뼉도 치고 방바닥을 두드리기도 했죠. 경기 현장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니 더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었어요. 경기를 보면서 한마음으로 응원하니까 애국심도 더 높아지는 것 같았고요. 만약 경기 이후에 결과를 전해 듣기만 했다면 이런 기쁨을 느낄 수 없었겠죠? 그리고 방송사마다 각자 해설하는 내용과 방향이 달라서 각자 취향에 맞는 해설을 골라볼 수도 있었어요. 어떤 채널에서는 전문 해설위원이 해설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채널에서는 전 국가대표 프로선수가 해설하기도 하거든요. 해설하는 사람마다 관점이 달라서 그걸 따라가는 재미도 있었어요.

기자: 그럼 북한 선수들이 참여한 경기도 보셨겠네요?

이순희: 네, 북한 선수들도 열심히 땀 흘려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함께 지켜봤어요. 특히 북한 여자 역도에서 세계 신기록도 세우고 금메달을 두 번이나 따는 것도 봤죠. 북한은 원래 역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곤 했지만, 5년 만에 세계 무대에 섰던 거라 그런지 더 뭉클했어요. 남한에 정착한 지 꽤 됐지만 북한 선수들이 참가한 경기를 볼 때면 항상 손에 땀을 쥐고 응원하게 되고 이기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한국이 종합 3등, 북한이 10등이더라고요. 둘 다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 같아서 저도 좋았는데요. 특히 어디서 제일 큰 감명을 받았냐면, 탁구 여자 복식 결승전에서 남한과 북한 선수들의 나이도 비슷하고 생김새, 키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하는 경기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 봤거든요. 남한은 한 번 이기면 막 소리치고 하는데 북한은 그런 게 없더라고요. 북한 선수들은 이겨도 가만히 있고 탁구를 지도해 주는 코치한테 가서 말을 듣고 하는데 얼굴에 웃음기 하나 없이 해요. 특히나 남한과 하니까 북한 선수들이 더 많이 긴장했다는 게 화면을 통해 보이더라고요.

기자: 그런데 또 남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드라마나 예능을 원하는 시간대에 골라볼 수 있는 OTT 플랫폼이 많이 생겼잖아요. 즉, 전파나 케이블을 통해서 송출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서비스인데요. 예를 들자면,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같은 걸 말하는데 이런 서비스도 이용해 보셨나요?

이순희: 제가 아직은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이 더 친숙하고 좋아서 따로 그런 서비스를 이용해 보지는 않았는데요. 현대인들은 방송 시간에 맞춰서 텔레비전을 보기가 불편하다고 생각하다 보니 이런 플랫폼이 인기가 많아진 것 같아요. 또 재미있는 프로그램도 많고요. 북한에도 유입됐다는 <오징어 게임>이 이러한 플랫폼에서 자체 제작한 대표적인 드라마죠. 이런 서비스가 유행하다 보니까 예전에는 "너 어제 방송한 그 드라마 봤어?"라는 질문을 했다면, 요즘은 예를 들어 직장에 가면 "넷플릭스에 새로 나온 드라마 봤어?"라는 질문이 더 많아졌어요.

기자: 방송 프로그램이나 채널뿐 아니라 텔레비전을 만드는 기술 자체도 많이 발전했는데요. 요즘에는 텔레비전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휴대전화와 연결할 수도 있죠.

이순희: 맞아요. 그런 기능을 탑재한 텔레비전을 스마트 텔레비전이라고 부르는데요. 영어 '스마트'는 한국어로 똑똑하다는 뜻이니까, 다시 말해 똑똑한 텔레비전이라는 거죠. 텔레비전을 무선인터넷에 연결해 검색도 하고, 방금 전에 말한 OTT 플랫폼을 연결하기도 하고, 또 휴대전화 화면을 텔레비전에 띄워서 크게 볼 수도 있어요. 이제는 텔레비전이 예전처럼 단순하게 방송만 보는 가전제품이 아니에요. 북한에서는 이런 일을 상상하지 못했었는데 세상이 참 편리해졌죠.

기자: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남한의 텔레비전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