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고향은 어디 입니까?

서울-권지연 xallsl@rfa.org
2014.01.30
nk_hometown_305 설을 앞둔 29일 파주시 공동경비구역(JSA) 대성동 마을에서 바라본 북측 기정동마을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고향’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들이 있습니다. ‘포근하다’ ‘정겹다’ 그리고 남쪽에 온 탈북자들에겐...‘그립다’ ‘안타깝다’

‘고향’ 을 딱 한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고향을 좋아하고 그리워합니다. 그건 아마도 고향이 엄마 품을 닮아서 일겁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나의 과거가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고향은 어디 입니까?’ 라는 질문은 ‘당신은 어떤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으로 다가오기도 하는데요. 오늘 고향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실 분들을 위해 준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여러분의 마음의 고향 같은 방송 <청춘만세>고요. 저는 진행에 권지연입니다. 남북 청년들이 함께하는 인권모임 ‘나우’의 이주영, 최철남 씨와 함께 합니다.

권지연 : 안녕하세요.

이주영, 최철남 : 시간이 정말 빠릅니다.

새해에 결심했던 것들 아직까지는 잘 지키고 있나요?

이주영, 최철남 : 잘 안 지켜지는 것 같아요.

권지연 : 수영도 한다고 했고 영어 공부도 한다고 했는데 잘 기억이 안 나나요? (웃음)

최철남 : 그래도 아직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자. 남쪽에서는 설이면 고향을 찾아 갑니다.

최철남 : 난리도 아니죠.

설을 맞아 남쪽에서는 민족 대 이동이 시작됐습니다.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부모님이 계신 고향 집에 모여 오순도순 식사를 하고 담소 나누며 조상들도 돌아보고... 남쪽에서 설날은 고향에 가는 날 이기도 한데요. 북에서는 조금 생소하게 느껴지시죠?

권지연 : 북한은 그런 게 없죠?

최철남 : 이동의 자유가 없다보니까요. 명절에 그렇게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이 쉽지 않고 고향에서 어차피 친척들이 모여 사니까 힘들게 이동할 필요도 없습니다.

철남 씨와 같은 탈북자들에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이 더 많이 그리워지는 때이기도 한데요. 그리움이 클수록 고향에 대한 기억은 더 생생해지는 것 같습니다.

권지연 : 저는 고향이 서울입니다. 내 고향 서울 하면 떠오르는 건 회색빛 아스팔트? (웃음)

오늘은 내 고향 00은...!입니다. 두 분은 고향이 어디세요?

최철남 : 함경북도 온성입니다.

이주영 : 저는 서울입니다.

권지연 : 고향 분이었군요.

최철남 : 평생 흙을 못 만져 봤나보네요.

철남 씨의 고향, 온성은 북쪽의 가장 끝자락에 위치한 지역이고 주영 씨의 고향은 남쪽의 수도 서울입니다. 지금 저와 주영 씨, 철남 씨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죠.

철남 씨는 명절 때가 되면 고향 생각 많이 나시죠?

최철남 : 그렇죠. 명절 때가 가장 기억이 나죠. 남한에서는 명절이라도 분위기가 별로 안나요. 명절이 아니라도 먹을 수가 있는데 북한은 명절이 돼야만 쌀밥을 먹고 하니까 더 기분이 나는 것이 있죠.

권지연 : 명절에 고향이 있어도 못가는 마음도 그렇지만 서울이 고향인 사람도 썩 좋지 않아요. 갈 데가 없잖아요.

이주영 : 친구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는데 저는 그냥 서울에 있어서 부럽기도 했지만 그런 맘 보다는 편해서 좋다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함경북도 온성... 주영 씨와 저는 가보지 못한 철남 씨의 고향이 무척 궁금해 졌습니다.

권지연 : 철남 씨의 고향 함경북도 온성은 어떤 곳이었어요?

최철남 : 한반도의 끝이라서 춥습니다. 시베리아와 가깝다 보니까 제일 추웠을 때가 영하 36도였을 때도 있었어요. 북한에서 알려주는 날씨는 엉터리라서 중국 것을 보는데 중국에서 알려준 날씨가 그 정도 됐었어요.

권지연 : 그럼 정말 겨울이 되면 꼼짝도 하고 싶지 않겠네요.

최철남 : 네. 나무나 석탄 때러 갈 때 아니면 안 돌아다니려고 해요.

권지연 : 이해가 가네요.

이주영 : 집은 따뜻해요?

최철남 : 집마다 다르죠. 못 사는 집은 연료를 구하기 힘들어서 춥고 저희 집의 경우는 그래도 잘 지어진 집이라 따뜻했던 편입니다.

권지연 : 보통 집에서도 옷을 껴입고 있겠어요.

최철남 : 그렇죠. 내복은 기본이고요. 그 위에 니트, 손으로 뜬 옷을 입고 밖에 나갈 때는 솜으로 된 동복을 입고 눈만 내 놓고 다녔어요.

권지연 : 주영 씨는 서울 어디세요?

이주영 : 저는 이사를 많이 다녔어요. 그런데 제가 기억이 나는 곳은 초등학교 1,2학년 때까지 살았던 봉천동입니다. 그 때는 옆 짚하고 친해서 친구랑 인형 놀이하고 우리 집 위주로 기억이 많이 나는 것 같아요.

권지연 : 최근에 봉천동에 가 본적 있어요?

이주영 : 아니요.

권지연 : 커서 어릴 때 살던 곳에 다시 가보면 기분이 참 이상하거든요.

이주영 : 그럴 것 같아요.

보통 사람들에게 내 고향 자랑을 하라고 하면 그 지역의 특산물부터 시작해서 관광지, 산천의 아름다움, 사람들의 인정 등... 쉴 새 없이 쏟아 놓는데요. 우리는 딱 한 가지씩만 자랑해 보기로 했습니다.

최철남 : 저희는 술이 유명했습니다. 풍인 술이라고 옥수수라고 만드는데요. 맛도 좋고 도수도 높아서 사람들이 좋아했어요.

권지연 : 먹어보진 못했죠?

최철남 : 먹어봤어요. 저희 집에서 술을 만들었었으니까. 북한에서는 술을 공장에서 만드는 게 아니고 개인 집에서 만들었었는데 사람들이 먹을 건 없어도 술은 어떻게라도 만들어서 먹었던 것 같아요.

권지연 : 추운 것 빼고는 살기가 그렇게 어려웠던 곳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최철남 : 네. 저희 동네는 굶어죽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 동네 애들은 다 키가 컸었어요. 그런데 바로 옆 동네만 가도 애들이 굶고 키도 작았죠.

권지연 : 서울이 내 놓은 명물은 이주영? (웃음)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요?

이주영 : 서울은 그 자체가 볼거리가 많고 상징적인 것 같아요.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하잖아요.

최철남 : 차도 많고 아파트도 많고요.

권지연 : 옛날 어릴 때 서울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정말 다르죠?

이주영 : 그렇죠. 정말 많이 달라졌죠.

권지연 : 저 어릴 때만해도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집이 얼마 없었어요. 자동차를 타고 가면 뒤에서 아이들이 막 따라오던 기억이 있어요.

이주영 : 그런데 지금은 차가 이렇게나 많으니.

철남 씨는 온성지역의 유명한 ‘술’을 자랑했고 주영 씨는 서울의 화려한 발전사를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고향의 옛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는 건 참 소중한 겁니다. 누군가 나의 성장기를 기억해 주는 것만큼 말입니다.

권지연 : 내 고향에 통일이 돼서 철남 씨는 남쪽 분들을 초청하고 주영 씨는 북에 계신 분들을 초청한다면 어디서 뭘 할 것 같으세요?

최철남 : 저는 들판에서 양 불고기를 먹을 거예요.

이주영 : 저는 별 보러 가고 싶어요.

최철남 : 그리고 석양이 최고예요.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권지연 : 저는 북한은 역사 공부를 안 시켜 주니까요. 서울의 고궁을 북에 계신 분들을 초청해 꼭 함께 가고 싶어요. 우리는 뿌리가 같다는 걸 강조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다 보니 통일이 정말 기다려집니다.

최철남 : 내 고향 온성아! 너를 떠나온 지가 8년이 넘었는데 통일 되서 남한의 좋은 친구들과 함께 빨리 가고 싶어. 하루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주영 : 앞으로 통일이 되면 북한 분들도 함께 살아가는 평화롭고 국제적인 도시가 됐으면 좋겠어. 사랑해.

권지연 : 희망찬데요? 감사합니다.

이주영 : 최철남 :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지금 당장 갈 수 없어도 추억할 고향이 있음은 감사한 일입니다.

고향은 갈 수 없어 애틋해 질 수는 있어도 잃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고향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니까요. 모든 이들에게 고향을 찾아줄 수 있는 그 날을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권지연 이었습니다. 함께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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