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황당하게 끝나버린 6자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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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초 북경에서 재개된 6자회담이 회담다운 회담 한 번 열어보지 못하고 차기회담의 일정도 합의하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습니다. 2.13 초기조치가 합의된 이후 이제야 말로 북핵문제가 해결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서 그저 황당해 할 뿐입니다.

문제의 발단은 마카오의 DBA 은행에 동결되어 있던 북한 돈 2,500만 불을 해제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미국이 인도적인 목적에만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동결된 북한자금을 해제해줄 때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기술적인 문제들이 발생한 것입니다.

우선 북한 측이 DBA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인출할 때 50여개 개별 계좌의 명의를 사용하지 않고 대표자만 내세운 것이 국제금융절차를 무시한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계좌별로 권리이임 절차를 밟아서 해결되긴 했지만 국제상거래의 질서를 제대로 알고 따라야 한다는 교훈을 북한 당국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중국은행이 불법 자금으로 의심을 받는 북한 돈이 입금되는 것에 대해서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합니다. 불법자금을 받아들일 경우 국제 금융사회에서의 신용도가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당국은 중국정부가 자국 은행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냐고 불만을 터뜨릴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번 사태는 21세기 지구화시대의 국제금융질서가 개별국가의 틀을 넘어서 투명한 원칙과 경제성에 의거해서 운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현재 중국은행의 소유주는 중국 정부만이 아닙니다. 메릴린치와 같은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이 중국은행의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은행의 이사회에도 세계 유수의 금융회사와 아시아개발은행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중국정부가 중국은행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입니다. 더욱이 중국은행은 뉴욕 증시에 상장을 추진 중에 있는데, 불법자금을 거래한 은행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면 세계금융시장에 진출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을 우려하고 있는 듯합니다.

따라서 이번에 북한자금이 신속하게 북한의 손에 쥐어지지 못한 것은 국제금융질서의 복잡성에 따른 기술적인 문제임이 분명합니다. 미국이 북한에게 돈을 전해주지 않기 위해서 술책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불구하고,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현금이 손아귀에 들어올 때 까지는 6자회담에 참가할 수 없다며 회담을 공전시키다가, 결국에는 아무런 말도 없이 북경을 떠나버렸습니다. 다른 다섯 개 나라의 대표단을 완전히 바보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북한이 이번에 보여준 태도는 그야말로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것입니다. 미국 정부가 DBA에 동결된 자금이 해제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절차에 들어간 만큼, 일단 6자회담에 참여해서 비핵화 문제에 대한 논의를 진행시키는 것이 순리였습니다. 회담을 진행하고 결론을 도출한 다음에 아직 돈이 들어오지 않았으니 합의 이행은 돈이 들어온 이후로 미루겠다고 한다면, 그래도 다른 참가국들이 수긍했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경에 와있으면서도 회담에 참여하지 않다가 결국 그냥 돌아가 버리는 행태는 책임 있는 국가의 책임 있는 외교관이 해야 할 처사는 분명 아니었습니다.

북한이 이번에 보여준 자세는 안하무인 그 자체였습니다. 북한이 무엇을 믿고서 이렇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핵보유국으로서의 자신감 때문일까요? 아니면 시간에 \x{cad2}기는 부시 행정부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기 위해서인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금 2,500만 불 때문에 6자회담을 거부하는 것은 적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놓치는 잘못된 결정임을 북한당국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행동에는 정도가 있는 법입니다. 북한이 소탐대실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