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슬 50주년 그리고 김민기

워싱턴-이장균 leec@rfa.org
2021-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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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 50주년 그리고 김민기 '아침이슬' 50주년 김민기 헌정사업추진위원회가 6일 오후 6시 트리뷰트 앨범 '아침이슬 50년 김민기에게 헌정하다' 1차분 음원을 시작으로 매주 한 차례 4∼5곡씩 각종 음원사이트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라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사진은 김민기 트리뷰트 앨범 참여한 황정민.
/연합뉴스

여러분 안녕하세요, 열린 문화여행 이 시간 진행에 이장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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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학전 대표 /연합뉴스

한국이 오늘날 한 개인이 아닌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기 까지는 적잖은 고통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부당한 권력, 독재와 싸워온 긴 여정 속에 이런 민주화운동의 상징처럼 불려진 노래가 ‘아침이슬’입니다.

김민기 작사 작곡으로 양희은이 노래해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노래가 된 아침이슬이 탄생한지 50주년이 됐습니다. 오늘 문화여행은 탄생 50돌을 맞아 열리는 행사들과 아침이슬에 얽힌 얘기들로 함께 합니다.

문화평론가이신 동아방송예술대 김헌식 교수님 모셨습니다

지난 달 5월18일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41주기를 맞는 날이었습니다.

북한외교관 출신으로 탈북한 후 남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태영호 의원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5.18 민주화운동의 영향으로, 민주화 운동을 북한식으로 다룬 영화‘님을 위한 교향시’가 제작됐고 대학가에서 대학생들은‘아침이슬’이 한국 노래인 줄도 모르고 즐겨 불렀다고 하죠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북한 노래방들에서‘아침이슬’이 금지곡으로 선정되며 슬며시 사라져갔다고 합니다. 광주민주화 운동을 자신의 체제유지에 이용하려던 것이 오히려 일인독재의 북한 체제에 역효과가 될 것 같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아침이슬’ 탄생 50돌, 후배가수들 김민기의 곡들로 헌정앨범 만든다

‘아침이슬’은 김민기의 작사, 작곡으로 1971년 6월30일 세상에 나왔다.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 많은 이에게 희망을 꿈꾸게 했던 노래로 민주화 운동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곡이다.

‘김민기헌정사업추진위원회’는 “‘아침이슬’ 50주년을 기념해 한국 문화계의 거목 김민기 트리뷰트 앨범(헌정앨범) 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6월 첫 주부터 18곡의 음원을 순차적으로 공개한 뒤 7월 중 시디(CD)를 발매하고, 8월 이후엔 엘피(LP) 음반으로도 출시할 예정이다.

1990년대 이후 김민기는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을 열어 라이브 공연 문화를 지키고 뮤지컬 제작자로도 활동해왔다. 트리뷰트 음반에 함께한 음악인들은 학전 공연장을 거친 후배 가수들을 중심으로 전 세대를 아우른다.

헌정 앨범에는 학전 공연장을 거친 후배 가수들을 중심으로 아이돌, 인디 등 장르와 세대를 망라한 뮤지션들이 합류했다. 포크, 록, 재즈, 민중가요에 아이돌까지 장르를 망라하는 가수들의 목소리로 김민기의 노래가 다시 불린다.

정태춘이 ‘강변에서’, 한영애가 ‘봉우리’, 박학기가 ‘친구’, 이은미가 ‘기지촌’, 장필순이 ‘작은 연못’, 윤종신이 ‘주여, 이제는 여기에’, 윤도현이 ‘새벽길’, 나윤선이 ‘가을편지’를 부른다.

또 노래를찾는사람들(노찾사)은 ‘야근’, 유리상자는 ‘늙은 군인의 노래’, 밴드 이날치는 ‘교대’, 크라잉넛은 ‘천리길’, 메이트리는 ‘철망 앞에서’, 알리는 ‘상록수’, 레드벨벳 웬디는 ‘그 사이’, 엔시티(NCT) 태일은 ‘아름다운 사람’을 부른다.

또 배우 황정민은 권진원과 함께 ‘이 세상 어딘가에’를 부른다. ‘아침이슬’은 참여 뮤지션들 모두 함께한다. 편곡에는 조동익, 윤일상, 박인영(스트링) 등 최정상급 뮤지션들이 참여했다.

앨범 발표와 함께 공연과 전시회도 열려

헌정앨범 발표와 더불어 특집 방송과 헌정 공연도 추진한다. KBS의 열린음악회 김민기 특집 편이 다음 달 20일 방송된다.

헌정 공연으로는 당초 6월 대규모 야외공연을 계획했으나, 코로나19 사태의 엄중한 상황으로 9월 이후 실내공연장에서 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김민기의 예술과 정신에 영향을 받은 시각예술 분야 작가들의 오마주 전시회도 다음 달 10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열린다.

김민기 동요 음반도 제작된다. 포크 뮤지션 백창우가 음악감독을 맡고, 노찾사 초기 멤버인 조경옥이 김민기의 대표 동요 15곡을 부른다.

70년 김민기 독집 음반으로 출시, 양희은의 데뷔곡으로 더 유명해져

아침이슬’은 극단 학전 대표 김민기가 작사·작곡한 포크송으로, 양희은의 가수 데뷔곡이었다. 1970년 8월 28일 발표해, 이듬해인 1971년 김민기의 독집 음반으로 출시되었다. 그 뒤로 곡을 만든 김민기 등이 여러 번 녹음했다.

김민기의 1971년 1집 앨범에 수록되었으며, 같은 해 동일한 곡을 김민기가 편곡하여 양희은이 부른 아침 이슬이 대중들에게 더 유명하다.

1971년 처음 이 곡이 김민기의 앨범에 발표되었을 때에는 3천 장의 앨범도 판매하지 못한 채 시장에서 묻혔다. 같은 해 가수 양희은의 데뷔곡으로 발표된 ‘아침이슬이 더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잘 짜인 화성과 선율, 고뇌하는 주인공의 심리적 흐름이 탁월하게 형상화

‘아침이슬’은 구조적으로 잘 짜인 화성과 선율을 지니고 있어 균형감과 안정감을 지니고 있으며, 종반의 절정부는 화려하면서도 큰 스케일로 클래식 곡 같은 느낌도 주고 찬송가 같은 성스러움까지 느끼게 한다.

이러한 경향의 노래는 대중가요사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이후 민중가요에서 ‘그날이 오면’ 등으로 이어진다.

한 청년의 실존적 고뇌와 결단을 담은 가사의 이미지 전개도 일관되고 정연하다. 고민과 마음의 정돈, 시련이 예정되어 있는 광야로 나아가고자 결단하는 주인공의 심리적 흐름이, 밤에서 새벽을 거쳐 아침과 한낮으로의 시간 변화, 고민의 어두운 공간에서 아침이슬이 맺힌 동산을 거쳐 묘지가 있는 광야로의 공간 변화를 통해 탁월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특히 미래인 ‘한낮’에 다가올 ‘시련’을 예감하는 부분에서는 단조로 전조되었다가, 고민 끝에 ‘광야’로 나아갈 결단을 선언하는 ‘나 이제 가노라’의 종반의 절정부에서 장조로 되돌아와 화려한 고음의 선율로 가슴 벅찬 결단을 노래하는 등, 가사의 심리 변화와 음악이 잘 결합되어 있다.

또한 대중가요에서 자주 쓰는 영탄의 어미를 거의 쓰지 않고, ‘배운다’, ‘시련일지라’, ‘가노라’ 등, 담담한 서술이거나 선지자적인 어조를 쓰고 있는 점도, 음악 전체에서 흐르는 절제된 감정과 아멘 마침의 화성과 조화를 이룬다.

70년대 유신 정부에서 방송, 판매 금지

1972년 봄 김민기의 음반은 법적 근거 없이 판매가 금지되었으나, 양희은의 음반 등을 통해 이 노래는 계속 판매되었다. 그러나 1973년은 조영남이 음반과 방송 등에서 ‘태양은 묘지 위에’를 ‘태양은 대지 위에’로 바꾸는 등의 수난을 겪었다.

1975년 유신 정부의 긴급 조치 9호에 의해 금지곡에 선정된 것으로 유명하다. 긴급 조치 9호는 약 2천여 곡의 노래들을 사회 통념 위반, 근로 풍토 저하 따위의 이유로 금지곡에 선정했는데, 유일하게 아침 이슬만큼은 금지곡 선정 근거가 없었다.

이후 세간에 알려진 아침 이슬의 금지곡 선정 이유는 '태양이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른다'는 가사가 불순하다라는 이유이다. 왜 하필이면, '불길하게 묘지 위에 떠오르냐?' 그것 때문에 금지곡으로 지정당했다는 것이다. 헌데 이 노래가 처음 발표된 1971년에는 아름다운 노랫말로 '건전가요 서울시문화상'을

가사가 추상적이고 비유적이지만 억압과 해방의 뉘앙스가 느껴지고, 선율도 거룩하고 엄숙하기에 폭압적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던 유신 집권층에서는 본능적으로 거부감과 공포를 느껴 별다른 이유도 제시하지 못하고 금지곡으로 지정했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대중매체와 음반 시장에서 사라졌으나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이 노래는, 이후 구전 등을 통해 대학생과 지식인 사이에서 널리 애창되는 대표적인 민중가요가 되었고, 시위 현장에서도 많이 불려졌다

이렇게 민중가요로 존재방식이 바뀐 이 노래는, 창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수용자들에 의해 그 ‘시련’과 ‘나 이제 가노라’의 선언이 민주화운동의 그것으로 적극적으로 해석되었고, 창작자 김민기는 이 노래만으로도 오랫동안 합법적 활동이 불가능한 불온한 인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이 노래를 불온 시할수록 이 노래의 높은 인기는 계속 유지되었다. 1980년대 초중반, 김민기의 1971년 음반은 중고음반 시장에서 최고가로 거래되었고, 「아침이슬」은 1990년대 초까지 각종 설문조사에서 한국의 대학생과 젊은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로 꼽혔다.

1987년 6월시민항쟁으로 약간의 민주화 조치가 이루어질 시점 이루어진 「아침이슬」의 해금이 민주화 조치의 상징으로 이야기될 정도로, 이 노래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노래가 되었다.

훗날 양희은은 노래를 지은 김민기나 자신은 이 노래가 학생들의 시위에 사용되리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며, 학생들의 민주화 투쟁을 독려하기 위해 만든 노래도 아니라고 밝혔다

독일어 버전 아침 이슬도 나와

김민기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원래 독일의 원작을 번안한 작품인데, 한국에서 이것이 큰 인기를 누리며 2000회까지 공연하게 됐다.

이를 본 독일 원작의 공연팀인 독일 그립스 극장의 단원들이 2004년 김민기의 지하철 1호선 2000회째 공연을 축하하기 위해 직접 내한해 ‘아침이슬’ 독일어 가사 곡을 선물로 건넸다.

원작자 폴커 리트비히가 직접 아침 이슬의 가사를 독어로 번역했고. 원작 공연팀이 한국을 방문해 직접 불렀다.

‘아침이슬’은 우리가 잊을 수 없는 노래, 지금도 불리워지고 있고 어느 노래보다도 민주화를 갈망하고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또 북한 주민 여러분들이 한때 많이 불렀던 노래이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는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한낮에 찌는 더위처럼, 그것을 견뎌야 하는 시련 속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남한처럼 전 세계와 함께 어깨를 겨루는 똑 같은 한 민족의 일원으로서 손을 잡는 그날이 오기를 염원해 봅니다

함께 거친 광야를 헤쳐가면서 지금까지 겪어왔던 설움을 모두 버리고 두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그날을 꿈꾸면서 이 노래가 다시 북한주민 여러분 마음 속에서 되살아 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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