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은 장마당이 아닙니다 (3)

서울-이현주, 문성휘, 박소연 xallsl@rfa.org
201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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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영등포공원에서 열린 '제10회 영등포 여성백일장'에서 참가자들이 나무그늘 아래 앉아 글짓기를 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공원에서 열린 '제10회 영등포 여성백일장'에서 참가자들이 나무그늘 아래 앉아 글짓기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4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9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 시그널 UP&DOWN

소연 씨가 지난달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백일장에 나가서 상을 탔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문 기자의 반응이 격렬했는데요.

INS - 풋... (웃음) 아니! 북한 장마당에서 장사하던 솜씨를 발휘한 거예요?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웃음)

축하를 못해줄지언정 약간 비꼬는 것 같은 문 기자의 말에 소연 씨는 약간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INS -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사람은 글 쓰면 안 됩니까??

/아니... 백일장에서 일등했다면서요!

/백일장이 뭔지는 아세요? 장마당이 아니에요... 글쓰기 대회를 남한에서 그렇게 불러요!

/글짓기 대회입니다.

/몰랐어요! 말도 안 돼... 얼마 전에 탈북자들이 인천 어딘가에서 장마당을 열었거든요. 나는 거기서 장을 탔다는 줄 알고. 백일장이 장마당이 아닙니까? 글쓰기 대회를 왜 백일장이라고 하나... 참 희한한 나라에요...

그러게요. 희한한 나라입니다. 청취자 여러분도 백일장이 장마당이 아니라는 거, 잘 아셨죠? 글짓기 대회에서 소연 씨가 작은 상을 탔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 소연 씨의 백일장과 체제만큼 다른 남과 북의 글쓰기 얘기 해보겠습니다.

진행자 : 원래 글이라는 게 그 나라 사람들의 풍습이나 문화, 생각을 읽을 수 있어야 하는데 글쎄요... 북한 소설은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문성휘 : 북한이 임꺽정이라는 영화를 금지시키지 않았습니까? 북한에서 글 쓰는 사람들은 북한 현실을 역사소설에 담아서 폭로하기를 좋아했고...

진행자 : 현실을 현실대로 지금 쓰지 못하니까요.

문성휘 : 그렇죠. 그러니 현실을 과거라는 역사에 담아내려고 했고 한때 작가들이 역사소설을 엄청 썼는데 다 사장시켰어요. 그리고 작가들한테 되도록 역사소실을 쓰지 못하게 지시를 내려서 지금 북한은 역사물이 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뭐... 임꺽정에서 나오는 노래조차도 못 부르게 몽땅 금지시키지 않았습니까?

진행자 : 사실 북쪽은 검열이 서슬 퍼러니까요...

박소연 : 제가 나올 때가 김정은이 집권하려고 막 나올 때인데 그때 임꺽정을 다 못 보게 했습니다. 우리는 저거 봐라 마음 어진 백성들이 얼마나 한이 났으면, 오죽했으면 칼을 들었겠냐... 임꺽정 내용이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백성들이 들고 일어날까봐 그런다... 그런 얘기들을 했죠. 북한 시장은 남한으로 말하면 인터넷입니다. 거기가면 모든 얘기들을 다 전달받습니다. (웃음) 그러니까 이제는 사람들이 다 알죠. 그냥 더러워서 참는다, 수작을 부리든 말든 우리는 장사해서 살아남는 게 선수다... 그런 얘기들을 하죠. 뭘 보지 말라고 하면 지랄이 났다 또 뭐이 걸린다니...? 이렇게 대응을 합니다.

문성휘 : 그래요... 그리고 글쓰기도 중요하지만 주민들에게 책으로 글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죠. 북한도 80년대 중반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가 들어가서 왜 외국 소설이 없느냐 지적한 뒤로 김정일의 지시로 근대 소설,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책을 많이 출간됐습니다. 그런데 제일 웃기는 건... 북한에서 ‘안네의 일기’를 안 내보낸다는 겁니다.

진행자 : 네, 저도 그 얘기를 들었는데요. 왜 그런 가요? 걸리는 부분이 있었나요?

문성휘 : 그 책은 안네가 숨어서 쓴 일기가 아닙니까?

진행자 : 숨어서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 뭐 이런 이유에서 금지된 것인가요?

문성휘 : 네, 그리고 저항에 대한 의미... 어려움 속에서 사랑을 느끼고 사회에 대한 분노와 억압된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것이 북한으로서는 몹시 불편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진행자 : 아... 정말 그런 계산까지 하는 것인가요?

박소연 : 그렇지만요. 우리가 그 체제하에 그것만 배워왔다고 해서 거기에만 머물지는 않았습니다. 학교 때 제가 제일 많이 보던 소설이 ‘총서 불멸의 역사’예요. 그러다 중국 소설을 보기 시작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황하는 동으로 흐른다’, ‘악수’, ‘씀바귀 꽃’ 책 두께가 이 만큼... 북한책의 두 배가 되는데 그 책을 보는 순간 ‘총서 불멸의 역사’가 촌스러운 거예요. 개인에 대한 사랑, 가정의 파탄... 그 가정은 왜 파탄 되었는가, 그 과정도 굉장히 현실적이었습니다.

북한 소설은 주제를 딱 던지면 벌써 답이 나와 있습니다. 늘 해피엔딩으로 끝나고요. 모든 가정이 불화로 갈라졌다가도 장군님의 사랑 속에 다 한가정이 됩니다. 항상 열매가 좋죠. 근데 중국 소설을 보면 그대로였습니다. 가정은 가정대로 파괴되고 그래도 자기만의 삶을 찾아가는...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는 삶이 어떻게 다 행복하기만해요? 이혼하는 사람도 있고 결혼하고 같이 살면서도 바람을 쓰는 사람도 있고 아이는 길에 울고... 북한도 사람 사는 세상이니 똑같잖습니까? 그런 현실적인 중국 소설의 내용이 공감이 갔습니다.

우리는 그 현실을 몽땅 장군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이런 위태롭던 가정이 하나의 대가정이 됐다.... 이렇게 만드는데 중국 소설은 안 그렇더라고요.

문성휘 : ‘황하는 동쪽으로 흐른다’... 북한에서 단일 작가로 제일 많이 출간된 책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 남쪽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책입니다.

문성휘 : 한국에 와 보니까 진짜 모르더라고요. (웃음) 지어는 북한에서도 많이 읽는 고리키의 ‘어머니’, 오스뜨로프스키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 되었는가’, 남한은 이런 책도 다 공개적으로 출간해서 봅니다. 그런데 이 책은 못 봤네요...

진행자 : 소설이나 시가 나한테 감동을 줄 때는 책 속의 이야기가 내 생활과 밀접해서 공감할 수 있는 때인 것 같습니다. 북한 소설에 현실이 없다면 글쎄요... 재미없을 것 같은데요... (웃음)

문성휘 : 북한에서도 어릴 때 소설을 읽던 사람들은 재미있게 보지만 외국소설을 한번 딱 읽고 나면 그 다음 부터는 북한 소설을 못 읽어요.

진행자 : 그런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몰라도 탈북자들 중에도 탈북 작가라는 이름으로 자기 경험을 수기나 소설로 써서 출판하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문성휘 : 남한에 있는 북한 망명 펜 센터에서도 책을 많이 내고 개별적으로도 책을 많이 쓰는 분들도 있어요.

진행자 : 탈북 작가라는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분들도 있고...

박소연 : 알고 보면 정말 많아요.

진행자 : 하긴, 뭐 남한은 자기가 원하면 자기 돈으로 책을 낼 수도 있고, 책 내기 쉬운 곳 아닙니까?

문성휘 : 집에 앉아서도 제절로도 만들 수가 있죠. (웃음)

진행자 : 남한에서는 많이 팔리는 책을 베스트셀러라고 합니다. ‘베스트’ 최고라는 뜻이고 ‘셀러’ 팔린다는 뜻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는 의미인데 아직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탈북 작가 책은 거의 없습니다.

두 분이 좀 노력해주세요. (웃음)

문성휘 : 한국은 주간 베스트셀러, 이달의 베스트셀러, 올해의 베스트셀러.. 이렇게 나누는데요. 가만히 보면 이날, 올해 이런 베스트셀러는 역사에 남지는 않아요.

진행자 : 그런 책을 남쪽에선 고전이라고 하고요. 장기간 꾸준히 팔리는 책이라고 해서 스테디셀러라고 합니다. 문 기자 말씀대로 진짜 베스트셀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스테디셀러 작가가 되는 게 중요하죠... 그런데 한 가지, 베스트셀러가 안 되고 스테디셀러가 된 책이 많지 않습니다.

문성휘 : 네, 글 쓸 때 무서운 게 그거예요! 한국은 하도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고, 하도 글 쓰는 사람도 많으니까 소설을 써도 내 노력만 들고 휴지장이 되는 게 아닌가... (웃음)

박소연 : 처음엔 무서움 없이 막 썼어요. 문장이 되든 말든... 이제는 남한에 와서 여기 사람들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남한의 글쓰기 원칙을 알게 되니까 글 쓸 때 창발성이 다 안 나오고 참 소심해 집니다...

진행자 : 그런데 그런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과연 베스트셀러가 되는 게 중요할까요? 출판됐는데 사람들이 안 사보는 글은 묻히는 글인가요?

문성휘 : 아뇨... 물론 사장된 책 중에 어느 날인가 우연히 세계적인 반열에 오르는 경우도 있어요.

진행자 : 그런데 중요한건 책은 자료가 된다는 것이랍니다. 책을 출판하면 도서관이나 어디인가에 자료로 남아 있지 않습니까? 보통 북쪽에서 오신 분들이 쓰는 고향의 얘기, 중국에서 고생한 얘기, 힘들었던 탈북 과정... 탈북자만 하는 그 경험들을 기록하는 작업이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더라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박소연 : 그래요. 가치가 있다는 건 동의합니다. 하지만 탈북자들이 이제 한국 내에서 책을 너무 많이 냈어요... 전 탈북자들이 낸 수기를 3페이지 이상 안 봐요. 그냥 딱 나옵니다. 아, 강산에서 헤어졌으니까 이렇게 되겠구나..

진행자 : 소연 씨는 좀 식상하다고 말씀하시는데 각각의 경험들이잖아요. 그리고 저도 어떻게 될지 뻔히 알지만 볼 때마다 울게 되거든요. (웃음)

박소연 : 이 기자는 그 사회에 안 살아봐서 보고 싶은 거예요.

진행자 : 그 어려움이 공감이 되는 면도 있습니다. 그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가 죽거나 다치거나 아이를 두고 떠나야 하는 엄마의 마음이라든가 여자로 당할 수 없는 치욕적인 일들 당하는 아픔... 이런 건 누구나 같이 아파할 수 있지 않습니까?

문성휘 : 사실 북한에서는 그런 짓은 반드시 일제 놈들이나 미국 놈들이 한 것으로 그려야 하고, 인민군이나 일반사람들 속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박소연 : 그런데 참 서로 참 입장이 다른 게... 인터넷에도 탈북수기가 참 많고 책으로도 많이 출간되는데요. 그걸 보는 순간 과거로 돌아가는 심정이라 읽고 싶지가 않아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탈북자들이 탈북과정에 대해 얘기하면서 울고 그러면 전 채널을 돌려요. 돌이켜보고 싶지 않아요...

문성휘 : 저도 그래서 ‘크로싱’이 아주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한번만 딱 보고 더 이상 보지 않아요. 너무 슬프고 사실적이라 두 번 보고 싶지가 않아요. 아... 그리고 소설도 몇 번 써봤는데 다 첫머리밖에 못 썼어요. 써놓고 며칠 있다가 다시 보면 잘못 쓴 것 같아 마음 없어서 버리고...

진행자 : 그러니까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끄집어내며 끝까지 앉아서, 한 권의 책을 쓰신 탈북 작가들을 응원해주세요. 그리고 소연 씨, 문기자도 단편 소설이라도 나오는 날을 기대해도 되겠죠? (웃음)

박소연 : 저는 가끔씩 생각나는 글을 컴퓨터에 저장을 해둬요. 이 책을 발표해서 돈을 벌자는 건 아니고... 엄마는 이렇게 살았다, 이걸 내 자식들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쓰고 있습니다. 책이 되려면 20년은 지나야하겠죠? 제가 일감이 없을 때, 커피숍에 앉아서 우아하게 쓰려고요... (웃음)

진행자 : 소연 씨는 아이들한테 내가 이렇게 살아왔다 얘기해주고 싶으시고, 문 기자님은 어떤 글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문성휘 : 저는 글을 안 남길 겁니다! (웃음)

진행자 : 지금 남아있는 글은 뭡니까?

문성휘 : 나중에 직업이 없을 때는 몰라도 지금은 별로 욕심이 없습니다...

박소연 : 지금은 돈만 벌겠다는 이 얘기네... (웃음)

문성휘 : 아니! 그게 아니고....

남한에서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까지 올랐던 탈북 작가의 책은 내 딸을 100원에 팝니다... 장진성 작가의 시집입니다.

올해만 해도 ‘7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라는 탈북자 이현서 씨의 영문 수기가 세계 최대 온라인 소매 업체 아마존의 자회사, 굿리즈의 올해의 책 후보로 올랐고 1934년생, 올해 81세의 탈북자 강순교 할머니의 책 ‘나의 살던 고향은’이 출간됐습니다. 중국 장춘에서 활동하는 조선족 작가 금희 씨가 낸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의 단편엔 탈북자 여성이 등장하고 남북 작가 공동 소설집 ‘국경을 넘는 그림자’도 나왔습니다.

제목도 작가도 다르지만 어느 글도 재밌게 마냥 웃으며 읽을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글로 옮겨 써야만 한다... 프랑스 철학자의 말이랍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얘기는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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