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원
2019-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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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지난 2000년 8월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장으로 서울을 방문한 어머니 류미영씨와 상봉하고 있는 최인국씨.
사진은 지난 2000년 8월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장으로 서울을 방문한 어머니 류미영씨와 상봉하고 있는 최인국씨.
/연합뉴스

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최근 북한의 ‘우리민족끼리’가 공개한 동영상에 따르면 최덕신, 류미영의 차남 최인국이 북한에 영구 거주하기 위해 한국을 버리고 평양에 들어갔다네요.

그는 평양국제비행장 도착소감에서 ‘민족의 정통성이 살아있는 진정한 조국, 공화국의 품에 안기게 된 지금 저의 심정을 무슨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죠.

이어서 ‘가문이 대대로 안겨 사는 품, 고마운 조국을 따르는 길이 곧 돌아가신 부모님들의 유언을 지켜드리는 길이고, 그것이 자식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이기에 늦게나마 공화국에 영주할 결심을 내리게 되었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유지대로 ‘조국통일위업 실현’에 여생을 바치겠다는 뜻도 밝혔다고 하네요.

글쎄요. 수령절대주의 체제, 민족적 범위에서의 김일성-김정일주의 완성을 통일의 목표로 하는 북한에 가서 북한식 조국통일위업 실현에 여생을 바친다니 혹시 자기 고향을 북한체제화 하겠다는 맹세인가요? 그 반대로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위해, 북한체제 변화를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고 한 뜻은 절대로 아니겠죠.

작고한 그의 부모 최덕신, 류미영은 물론 과거 외교부 장관, 1군단장, 독일 대사, 박정희대통령과의 알력 등으로도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더 각인된 것은 천도교청우당 위원장, 즉, 종교와 더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이해할겁니다.

왜냐면 최덕신 자신이 남한에서 천도교 교령도 지냈고, 북한에 망명해서는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을 지냈으며, 그가 사망한 후 부인 류미영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북한에서 남편의 뒤를 이어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직을 맡았거든요.

종교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혹시 해방시점에 북한 인구의 22.2%가 종교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죠? 천도교 신자가 169만명, 불교 신자가 37만 5천명, 기독교 신자가 20만명, 천주교 신자가 5만 7천명, 총 200만명이 종교인이었습니다. 교회는 3천여 개가 있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북한에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단체들이 명목상 존재하고, 헌법에도 신앙과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다고는 하지만 실제 그 존재를 송두리째 뽑아버린 것이 현재 북한의 현실이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온갖 이색적인 사조와 생활방식을 완전히 뿌리 뽑자, 전 사회를 김일성주의화, 일색화하자 이것이 북한당국이 지난 수십 년간 추진해온 정책입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수령이 최고의 신이고, 최대 권력자고, 오로지 한 평생을 수령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면서 충성해야 하는데 그 자리에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우상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이 가르치는 용서와 사랑이 지배하면 계급투쟁은 어떻게 하며 원수에 대한 증오는 어떻게 심어주겠습니까?

어딘 그뿐인가요? 종교에 관심이 있거나, 탈북 해 종교를 접했거나, 심지어 성경책을 들여오고 소지하는 것조차 정치범으로 취급하고, 온갖 고문을 하며, 가장 잔인하게 처벌하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죠.

북한주민들은 연극 ‘성황당’ 등에 세뇌돼 기독교를 비판할 때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는 기독교 원리를 자주 말합니다. 일종의 조롱하는 유머로 사용하죠.

그런 정치체제에, 그런 나라에 부모의 유지를 받들어 갔다니 그럼 그들과 자신의 종교적 믿음은 완전히 포기하고 갔을까요?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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