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전가”

워싱턴-정영 jungy@rfa.org
201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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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노딜' 책임에 따른 '강제 노역설'이 나왔던 김영철 당 부위원장(붉은 원)이 지난달 3일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 '인민의 나라' 개막공연에 모습을 나타냈다.
'하노이 노딜' 책임에 따른 '강제 노역설'이 나왔던 김영철 당 부위원장(붉은 원)이 지난달 3일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 '인민의 나라' 개막공연에 모습을 나타냈다.
/연합뉴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북한에서 책임전가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책임전가의 사전적 의미는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씌움"이라는 뜻인데, 쉽게 말해서 어떠한 일에 대해 책임자가 스스로 그 책임을 다하지 않고 남에게 전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외부 사회에서는 리더(지도자)의 자질과 능력, 책임 등에 대해 교육을 많이 시킵니다. 리더는 옳은 목표 달성을 위해 조직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중심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책임을 지는 모습을 훌륭한 리더의 덕목 가운데 하나로 꼽습니다.

하지만, 책임을 남에게 미는 행위는 훌륭한 리더라는 평가를 받기 어렵습니다. 특히 하노이 2차 미북정상회담을 맡았던 북한 주역들에 대한 숙청설을 놓고 ‘책임전가’라는 평가가 높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에 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미국 ABC 녹취>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날 때 대미외교를 담당한 북한측 인사들이 등장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 뒤로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과 지금까지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던 장금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도 처음 모습을 보였습니다.

대신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때 대미실무 협상을 맡았던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 김성혜 노동당 통일전선부 책략실장, 통역을 맡았던 신혜영까지 모두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인사 면면을 통해 하노이 회담의 실패 책임을 지고 북한 대미협상 실무팀이 숙청되었다는 외부 언론의 보도가 사실로 간접 확인되었습니다.

지난 2월말 하노이 회담이 실패로 결렬된 후, 협상 실무를 맡았던 김영철, 김혁철 등이 숙청당했다는 보도는 지난 5월 31일 한국 언론에서 보도되었습니다.

남한의 조선일보는 5월 31일자 기사에서 하노이 회담 실패 책임을 지고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혁명화 갔고, 김혁철 대미특별대표는  외무성 간부 4명과 함께 ‘미제 스파이’ 혐의가 적용되어 처형됐다고 보도했습니다.

김혁철과 함께 실무 협상을 담당했던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책략실장은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졌고, 하노이 회담에서 김정은의 통역을 맡았던 신혜영도 결정적 통역 실수로 정치범 수용소에 갇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선일보는 이들의 숙청을 뒤받침할 수 있는 근거로 이날 노동신문에  실린 사설을 게재했습니다. 당시 노동신문은 "앞에서는 수령을 받드는 척하고 뒤에 돌아앉아서는 딴 꿈을 꾸는 동상이몽은 수령에 대한 도덕·의리를 저버린 반당적, 반혁명적 행위"라며 "이런 자들은 혁명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된다"고 질타했습니다.

노동신문에 ‘반당 반혁명, 준엄한 심판’이라는 숙청을 암시하는 듯한 표현이 등장한 것은 2013년 12월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처형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북한의 대미외교라인 숙청설은 미국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협상을 맡았던 북한 관리들에 대한 처형 및 강제노동설에 대한 언론 보도의 정확성 여부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는 이들 처형설과 관련해 미국 정보 당국으로부터 관련 브리핑, 즉 관련 설명을 청취할 예정이었습니다.

유럽을 순방 중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2일 김혁철 등의 숙청설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북한과의 대화에 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며 즉답을 피했습니다.

이처럼 미국 정계에서 숙청대상들에 대해 관심이 높은 것은 이들이 미국의 주요 인사들과 협상 파트너, 즉 회담상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장관의 대화 파트너로, 김혁철 대미특별대표는 스티브 비건 미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카운트 파트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이들이 만일 처형됐다면 김정은 정권의 잔혹한 인권유린 행위가 다시금 국제사회 면전에 드러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북한 매체에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얼굴이 공개되면서 이들에 대한 숙청설이 일달락 되었지만, 여전히 나머지 사람들의 행방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남한의 탈북 지식인연대 김흥광 대표는 북한이 하노이 실무팀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김영철을 등장시켰을 가능성이 높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김흥광: 전국 군무자 예술축전에 김영철이 나왔다 이렇게 보여준 것은 미국을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영철을, 그 미국 협상팀 파트너를 그렇게 죽이고 처벌하고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면 되겠습니까, 그건 상대에 대한 초보적인 예의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김영철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주석단 같은 줄이지만 가장 말석에 앉혔는데, 김영철은 계속 눈물이 나와서 울고 있고, 이런 상황을 보면서 김영철을 억지로 끌어온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북한이 김영철을 급히 공개한 것은 미국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미국이 자신들의 협상파트너들을 숙청한 북한과 대화를 할 수 없다고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취한 급조된 보여주기라고 김대표는 지적했습니다.

김 대표는 북한의 보여주기식 ‘언론 플레이’는 과거 김원홍 국가안전보위상 숙청설이 제기되었을 때도 있었다고 언급했습니다.

김흥광: 이전에 김원홍을 숙청했다고 국제사회가 많이 이야기 하니까, 북한이 김원홍을 어느 열병식 주석단에 세워놓았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제대로 짚어냈습니다. ‘저 얼굴봐라, 얼굴이 완전 반쪽이 되었다, 사람이 얼마나 심적으로 고생이 많았으면 저 정도가 되었을까, 몸이 완전히 절반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김원홍 국가안전보위상은 김정은 권력장악을 위해 맨 앞장에서 칼을 휘둘렀던 이른바 ‘칼잡이’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하지만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장악에서 일등공신였던 김원홍을 ‘용도폐기’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가자, 급기야 그를 2017년 4월 15일 군열병식장에 등장시켰는데 당시 그의 모습도 급조된 연출임을 지울 수 없다고 김대표는 말했습니다.

‘수령제일주의’ 사회인 북한에서 아무리 김원홍, 김영철 등이 고위간부들이라고 해도 수령의 지시나 허가 없이는 어떤 일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종당에 일이 잘못되면 아래 간부들은 모두 책임을 떠안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소위 “수령의 책임은 없고 모두 아래 사람들이 잘못했다”는 식의 책임전가 행위는 지금도 북한에서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수령 무오류’ 수령절대주의 국가인 북한에서만 벌어지는 비극이라고 고위층 탈북인사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김씨 일가를 신격화하고 절대적, 무조건적으로 복종할 것을 규정한 노동당 10대원칙을 헌법 상위의 철칙으로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북한 간부들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실패하면 그 책임을 도맡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맡은 북한 간부들도 될수록 최종 결정은 최고 지도자가 내리도록 밀면서 실무회담을 고의적으로 회피한다는 말도 돌고 있습니다.

앞으로 새로 교체된 북한 협상팀의 고민도 작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면 북한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회담의 성과를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제 앞으로 북한에서 또 몇 명의 희생양이 나올지 알수 없습니다.

남한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는 한 언론매체에 출연해 수령의 책임전가로 인해 아랫간부들이 처벌되는 관행은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태영호: 물론 수령절대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수령이 회담 실패의 책임을 질 수 없지만, 언제나 수령과 인민은 운명의 공동체라고 주장하는 북한에서 일이 잘못되면 밑에 있는 일꾼들만 처벌하는 관행은 없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을 마칩니다. 다음 시간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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